[시민건강연구소] 막막한 시대, 무엇에 그리고 무엇으로 힘을 낼 것인가?

[라포르시안] “20세기는 홉스봄의 한 세기”라는 말을 들었던 영국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85세에 펴낸 회고록을 마무리하면서 “정치 권력과 제국, 제도가 얼마나 가변적인가를 저절로” 배웠고 “이런 유행 저런 유행이 오고 가는 것을 지켜보았다”라고 말한다(<미완의 시대>, 민음사 펴냄). 

그의 역사 기술과 관점에 동의하든 아니든 이제 그 자신이 역사다. ‘홉스봄의 세기’(회고록에 포함된 ‘옮긴이의 말’에 포함된 표현)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장기’ 20세기를 대표한 역사가라 할 수 있다. 그 자신은 그가 배운 것을 개인적 감상으로 표현했지만, 우리는 그것이 객관적인 것, 역사이자 시간에 관한 것이라 여긴다. 

새해 벽두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역사가를 떠올린 것은 그의 권고대로 조금 ‘떨어져서’ 오늘을 보자는 취지다. 물론, 그에 기대서 새삼 역사관까지 들먹일 필요는 없을 터, 여러 가지 익숙한 새해 맞이용 결심을 되풀이하고 싶지도 않다. 역사보다는 오히려 ‘시간’을 단초로 삼는다.

‘새해’라는 생각의 틀은 몸부터 시작해 오롯이 시간이 체화된 결과물이다. 무엇 하나 또렷이 보이지 않고 온 사방이 막힌, 아무 희망의 근거도 찾을 수 없다는 한탄 또한 시간에 관해 말하는 것과 같다. 최근 몇 년 으레 단골 소재인 저출산이나 기후 위기, 돌봄, 불평등은 저절로 분노가 치미는 ‘정동’의 문제이되, 날이 갈수록 더 답답한, 그래서 더욱 시간의 문제이다.

그리하여, 2024년 새해에는 시간을 다시, 고쳐 감각하자고 제안한다. 역사가 될 시간은 가변적이고 개방적이며, 결정되어 있지 않다. 이런저런 유행은 쌓이고 연결되지만, 지속하거나 축적되지 못한다. 쪼개지고 흩어지지만 큰 흐름을 이루고 결국은 어느 곳엔가에 이른다. 

미시적 인과관계와 법칙성을 벗어난 우연은 한편으로 해방의 씨앗이다. ‘과학적으로’ 아무 희망의 근거가 없을 때, 역사의 우연성을 빼고 무엇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을까. 막막하고 답답한 때, 우연과 우발이 희망과 해방의 역설적 근거가 된다. 

우리는 이 막막한 시기에 그 가변적이고 우연한 시간을 생각하며 개인과 사회를 살리는 운동을 되살리자고 제안한다. 새로운 시간 감각과 리듬으로, 당연하게도 윤리와 도덕, 성찰과 각성, 개인보다는 공동체, 연대와 협력, 공통의 노력과 실천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첫째, 공부하기. 작년 마무리 논평에 쓴 것과 같다(☞관련 자료: 바로가기).

‘사회적인 것’에 관한 공부라 한정해도, 무슨 제도 교육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개인과 사회를 옥죄는 현상과 문제를 이해하고 그 너머를 구상하는 일, 무엇이 걸림돌인지 찾아내고 힘을 모으는 방법을 궁리하는 것을 우리의 공부라고 해야 한다.             

둘째, 협력적 성찰.

공부 또한 중요한 성찰의 방법이지만, 그보다 대화와 토론, 공동의 실천 경험과 반성이 협력적 성찰의 요체가 아닌가 한다. 구조화된 각 개인, ‘장(필드)’과 아비투스에 매인 각자가 해방의 실마리를 발견하는 방법은 성찰을 빼고는 구하기 어렵다. 

셋째, 돌봄 노동. 우리는 조안 트론토의 다음과 같은 돌봄 정의에 공감한다. 돌봄은 “우리가 가능한 한 세상에서 잘살 수 있도록, 이 ‘세상’을 유지하고 지속하며 고쳐나가는 모든 종(種) 활동”으로 볼 수 있다(Caring Democracy, p.19; 한글 번역은 <돌봄 민주주의>, 67쪽). 

이때 “세상은 우리의 몸, 자아, 환경을 모두 포함하며, 이들은 복합적이고 생명을 유지하는 그물망으로 엮여있다.” 이런 돌봄은 어쩔 수 없이 인간 종의 모든 노동을 포함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의미에서 돌봄 노동은 정의와 윤리의 실천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다시, 에릭 홈스봄의 회고이자 권고로 되돌아간다. 그의 공부, 성찰, 돌봄 노동의 시간과 그 결과물, 중요한 ‘메타 지식’이라 믿는다.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더라도 아직은 무기를 놓지 말자. 사회 불의는 여전히 규탄하고 맞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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