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희(엔젤로보틱스 이사)

[라포르시안] 내년도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이 3.45조 원 넘게 축소되면서 많은 연구자들이 우려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 R&D 예산이 일부 분야별 조정된 일은 있어서도 이번처럼 전체적인 축소를 경험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필자가 최근에 만난 교수들과 연구원들 역시 국가 R&D 예산 축소에 따른 의료기기 연구개발 축소 및 업체 인력 유출을 크게 걱정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많은 산업이 정부 R&D 지원을 받아 발전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의료기기 또한 타 산업처럼 정부 지원을 통해 기초 연구를 수행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기존 제품의 개선 또는 새로운 제품을 상용화해왔다.

국산 의료기기의 모태이자 선구자라 할 수 있는 ‘메디슨’도 정부 연구비로 대학에서 초음파 영상기술을 개발해 국산 초음파진단기 사업화에 성공했고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이렇게 성장한 메디슨은 한국 의료기기산업의 초석이 됐다. 의료기기 불모지에서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고 사업적으로 성공한 데에는 정부의 지속적이고 적절한 R&D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간 의료기기 기업이 정부 R&D 예산에 의존해 신기술·신제품을 개발해 온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정부의 연구개발 예산은 의료기기 기업이 새로운 기술 발굴을 목적으로 대학·연구기관 등과 협력하거나 임상적 검증을 위해 병원과 협업할 때 적극 활용됐다. 물론 기업의 제품개발은 자체 R&D 예산을 통해 수행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기업 규모가 영세한 국내 의료기기산업 특성상 ▲기초 연구 ▲제품개발 ▲임상 검증 등을 정부 지원 없이 자체 예산으로 진행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정부는 의료기기를 미래 성장산업으로 보고 ▲디지털 헬스케어 ▲디지털 치료제 ▲의료 로봇 ▲의료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등에 중장기 계획을 수립해 지속적인 R&D 투자를 해왔다. 특히 이들 제품은 기초 연구에서 제품화를 통해 병원 적용까지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이상 소요되는 만큼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기술 및 제품개발, 임상적 데이터 확보, 임상 데이터 활용 기술 개발과정을 통해 많은 신기술 개발과 함께 연구개발 인력이 양산되고, 이들이 향후 국내 의료기기산업을 이끌어갈 핵심 인재라 할 수 있다. 물론 정부의 R&D 예산 축소가 올해만의 일시적인 현상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단 한 번의 정부 R&D 예산 축소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많은 의료기기 연구개발이 축소되고 신제품 개발 흐름을 끊어 의료기기산업 위축을 불러오지 않을까 우려된다.

많은 의료기기 기업이 새로운 기술 연구에 필요한 예산 부족과 대학원생·연구원 등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 R&D 예산 축소는 장시간 양성해온 연구개발 인력 이탈을 가속화시키는 것은 물론 향후 국내 의료기기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정부의 R&D 예산 축소는 한 해만의 문제가 아니라 향후 10년간 연구개발 연속성을 멈추게 해 의료기기산업 발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중차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정부 R&D 예산은 적은 연구개발비와 정예 개발 인력으로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고 있는 국내 의료기기 제조사의 생존과 국내 의료기기산업 발전을 위해서라도 그대로 유지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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