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영수(의료기기산업혁신연구회 산업이사)

[라포르시안] 의료기기법이 제정·시행된 지 상당 시간이 경과했지만 허가에 소요되는 심사 기간은 갈수록 길어지고 난이도 또한 높아지고 있다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외부적 요인은 의료기기 품목 수가 늘어나고 안전성·유효성에 따른 국제 기준이 갈수록 까다로워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기술 발달로 각종 융·복합 첨단 의료기기와 인공지능(AI)을 탑재한 제품도 증가하다 보니 심사 또한 점점 고도화될 수밖에 없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 때문에 업무 분산과 전문 민간 심사기관을 지정하며 인허가 업무 집중화를 꾀했다. 뿐만 아니라 민간 심사기관, 한국의료기기안전정보원, 각 지역 지방청,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심사부, 본청 첨단허가담당관으로 인허가 관련 기관을 분업화해 집중과 선택을 시도했다.

이 같은 분업화 논란은 차지하더라도 지금과 같이 5개 기관이 협업하는 것이 과연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한 심사 질을 높였는지’, ‘인허가에 따른 업계 부담이 줄었는지’에 대한 개략적인 평가를 해보면 상당히 독특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의료기기업계 입장에서 1등급은 신고로 전환하고 2등급은 민간 심사기관에 그리고 3등급·4등급은 심사부에 검토받아 허가나 인증을 받을 수 있지만 가장 두드러진 것은 전체 비용이 증가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이견은 크지 않다. 당연히 민간 심사기관에 위임하다 보니 비용 상승은 감내해야 했던 것이고 업계 또한 바라던 바였으며, 외국에 비해 아직도 국내 인허가 심사료는 상당히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높아진 시험기준을 적용하다 보니 인허가 수수료보다는 시험검사 비용이 증가해 이에 대한 부담을 호소하는 제조사들이 늘고 있다.

크게 보면 심사의 민간 이양과 다원화 전략의 추진 배경에는 심사 소요 기한이 줄어들고 심사자 입장에서 기관별 전문화를 통해 안전한 제품을 검토함으로써 국민 안전을 지키고자 한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몇 가지 개선점이 보인다. 대표적인 문제가 과연 늘어난 인원만큼 효과적인 인허가 심사업무가 이뤄지고 있느냐는 것이다.

현재 식약처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조직도를 보면 의료기기안전국 인원은 총 97명이다. 이 가운데 정규직은 48명으로 비정규직 49명에 비해 그 비율이 절반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의료기기심사부는 전체 95명 중 정규직이 52명으로 비정규직 43명과 비교해 54.7%의 비율을 보이고 있다. 과별로 정책과를 제외하면 정규직 6명에서 8명의 인원으로 의료기기 정책·허가 업무를 수행하고, 연간 약 7천 건의 인허가를 담당하는 형태로 그 업무강도가 상당히 높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업무강도가 높을 때 절대적으로 인원이 부족한지 아니면 업무 효율화가 문제인지 평가가 필요하며, 해당 결과에 따라 업무를 조정할지 아니면 인원을 늘릴지 그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업무 효율화와 관련해 전문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말하기 어렵지만 관련 업계에 오래 종사하며 체감한 바로는 인원 증가가 심사 시간을 줄였는가에 대한 답은 확실히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외국 사례 가운데 공무원 인원에 관해 연구한 영국 경제학자 시릴 노스코트 파킨슨 박사가 1955년 이코노미스트에 게재한 ‘파킨슨의 법칙’ 중 ‘업무 배증의 법칙’을 살펴보자. 그는 공무원이 같은 일을 여러 사람이 나눠서 할 때나 혼자 할 때나 그 결과는 같다고 주장했다. 파킨슨의 법칙을 현재 식약처 심사업무에 적용하기에는 의료기기에 대한 범위와 품목이 넓어지고 심사 기준 또한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정확히 부합하지는 않는다. 

물론 만성적인 GMP 인증 적체, 심사 기한 증가, 각종 보완에 따른 업계 부담의 이면에는 지금까지 식약처 조직 확대와 인원 증가 등 실질적인 지원이 이뤄지지 못한 점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중복 심사 논란과 업무에 관한 책임과 권한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분명 개선할 점이 있어 보인다. 

민원인 입장에서 본다면 제도 개선은 결과로 나타나야 한다. 업무개선과 제도개혁이 됐다면 체감할 수 있는 변화가 있어야 하지만 갈수록 인허가 비용이 증가하고 심사는 지연되며 각종 요구서류 또한 많아지고 있는 현실이다. 인원으로 할 수 없다면 과감한 업무개선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국민 안전을 위한 노력 역시 행정력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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