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서 중소 병·의원 근무환경 개선 토론회 열려
"중소 병·의원은 근기법 등 법률 위반 백화점"
적정한 표준 임금⋅노동조건 기준 가이드라인 마련해야

[라포르시안] 중소 병·의원에서 근로기준법 준수는 고사하고 최소한의 노동인권에 대한 인식조차 부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열악한 노동환경 때문에 중소 병의원의 인력난이 심화되는 것은 물론 비전없는 열악한 일자리라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중소 병의원 쇠퇴와 소멸로 인한 의료사각지대 발생을 막으려면 근무환경 개선과 복지 향상을 위한 정부 차원 제도개선 추진이 시급해 보인다. 

지난 28일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중소 병원·의원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더불어민주당 정춘숙·우원식 의원, 정의당 강은미·이은주 의원, 보건의료노조, 5개 직종협회(대한물리치료사협회, 대한방사선사협회, 대한임상병리사협회, 대한작업치료사협회, 대한치과위생사협회)가 공동으로 주최했다. 

보건의료노조와 5개 직종협회는 지난 8월 25일부터 9월 7일까지 중소 병·의원 노동자 노동환경 실태를 조사하고 그 결과를 이날 토론회에서 공개했다. 

총 5,044명이 참가한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8월 18일부터 의무 설치해야 하는 휴게실를 설치하지 않닸다는 응답이 20명~30명 미만 의료기관 35.5%, 30명 이상~300명 미만 의료기관이 26.6%에 달했다. 면허·자격 이외의 부당 업무 지시를 경험했다는 비율이 39%였고, 직장내 폭언(25.1%), 직장내 괴롭힘(18%), 환자·보호자 폭언폭행(47.5%), 환자·보호자 성희롱(17%)을 경험했다는 비율도 높았다. 

불임난임휴가(29.5%),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29.4%), 태아검진시간(32.5%), 수유시간(19.3%), 생리휴가(16.5%) 등 모성보호 관련법을 보장하는 않는 중소 병·의원 비율도 높았다.  

토론 발제를 맡은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중소 병원·의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낮은 임금 문제도 심각하지만 1주일에 평균 5.5일 출근하고 있고 노동시간은 43시간이며, 퇴근 후나 휴일에도 업무 관련 SNS 업무 지시를 6.3회씩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위원 발표에 따르면 중소 병‧의원 노동자는 일을 하면서 부당대우나 불이익을 경험(44.4%)하는 것은 물론 면허․자격 이외 부당 업무 지시 경험(39%)도 겪고 있었다. 장기 근속자의 계약 해지·해고 등 구조조정도 10명 중 4명(39%)이 겪었고, 코로나19 시기 인력 감축·구조조정도 20.4%에 달했다. 

중소 병‧의원 사업장 노동자들의 직장생활 만족도는 100점 만점에 평균 38.5점에 그쳤고, 성별 임금 격차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실제로 이번 실태조사에서 파악된 부당대우 사례를 보면  근로기준법이나 노동인권에 대한 인식 자체가 부재하는 중소 병⋅의원도 적지 않음을 보여준다. 

#. 병원장의 방청소, 밥, 설거지, 딸 선물포장 등 개인적인 업무지시를 하고 있습니다. 채용공고에는 치과 경력직 뽑으면서 진료실근무가 아니라는 이유로 경력인정을 안 해주고, 면접시 고지했던 월급과 출근 후 근로계약서상의 월급액수가 다르며 본 병원 소속이 아닌 용역소속임을 출근 후 알려주었습니다. 이 같은 사실은 근무 전에알려주는 게 타당한데 일을 지키지 않으며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한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은 없습니다 (모 치과병원 소속 치과위생사)

#. 저는 물리치료사로 취직을 했는데 빨래나 병원 곳곳의 쓰레기를 수거해서 쓰레기장까지 버리는 것도 강요합니다. 치료실에 2명이 일하는 데 쉴 때 알바를 구하지 않으면 쉬고 싶은 날엔 쉬지도 못합니다. 연차는 쉬고 싶은 날, 쉬어야하는 날에 쓰는거 아닌가요?(한 일반의원 소속 물리치료사)

#. 퇴근시간 직전에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된다며 남아서 예배드리기를 강요하고, 5일 중 4일을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기독교 기반으로 한 의료재단이 많은데, 직원에게도 강요를 하고, 이런 갑질을 하려고 했으면 채용할때부터 기독교 직원만 받던지 미리 고지를 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양병원 소속 작업치료사)

김종진 연구위원은 “국회 및 보건복지부가 나서서 의료기관이 법을 준수하도록 정기적 조사와 모니터링을 해야 하고 ‘중소 병·의원 표준 임금제’ 도입 및 사회적협약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나영명 보건의료노조 기획실장은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중소 병·의원은 법률 위반의 백화점”이라며 “보건복지부 장관이 보건의료인력지원법에 따라 근무환경과 복지 등에 관한 제대로 된 실태조사부터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지난 7월 7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방사선사, 물리치료사, 임상병리사 등 의료기사 직종의 임금 수준은 의사 대비 5분의 1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나 적정한 표준임금 가이드라인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 기획실장은 “중소 병·의원의 법 위반과 열악한 근무환경을 그대로 방치해 두거나 정부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국회와 정당이 나서서 의료현장 실태조사, 현장 답사, 간담회를 진행해야 한다”며한 ▲중소 병원⋅의원 근무 환경 개선을 위한 종합계획 수립과 지원 ▲근로기준법에 따른 근로감독과 자율개선 지원 사업 ▲적정한 표준 임금⋅노동조건 기준 가이드라인 마련 ▲모든 보건의료노동자에게 적용되는 노동기본권 협약 체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소병원‧의원 기초고용 질서 준수 및 사업주 조치 사항(2022). 표 출처: 보건의료노조
중소병원‧의원 기초고용 질서 준수 및 사업주 조치 사항(2022). 표 출처: 보건의료노조

발제에 이어 진행한 패널토론에서 각 직종협회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중소 병·의원 노동조건이 열악한 수준이라는 데 동의했다. 

윤여용 작업치료사협회 정책이사는 “복지부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작업치료사의 평균임금은 3,086만원으로 21개 직종 중 20위로 가장 낮은 직군이 됐다”며 “작업치료사들이 병원을 떠나지 않도록 요양병원, 재활병원 등에‘의료기관 적정임금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정책이사는 작업치료사는 주40간을 일해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인력기준에 상근자로 인정이 되기 때문에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를 활용하지 못하고 개인 연차를 사용하고 있는 실태를 설명하며 조속한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김은희 치과위생사협회 홍보이사는 “2022년 현재 치과위생사 면허자는 10만명에 달하며 여성이 99%이고,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근무자는 30대 이하가 82%에 달하지만 낮은 임금, 모성보호 제도 미시행, 아파도 쉴 수 없고 연차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는 열악한 노동환경에 놓여 있다”고 전했다. 

김 홍보이사는 “실태조사결과 치과위생사는 아파도 나와서 일한 경험이 77.6%에 달했고, 유급제도가 있다는 응답은 15.9%에 불과했다”며 “30인 미만 중소 병원⋅의원을 대상으로 철저한 근로감독 실시가 필요하고 5인 미만 의료기관에 대해서는 특례를 두어 근로기준법령을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출산휴가나 육아휴직 중인 인력을 고용하고 있는 의료기관에 장려금을 지원하고 관련 비용을 지원하는 제도 도입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정부에서 근무 환경이 열악한 5인 미만 의료기관에 대한 구체적인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노푸른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법무법인 위민) 변호사는 “근무 환경이 열악한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구체적인 지원책을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이나 하위 시행령에 규정하거나 보건의료인력 종합계획이 조속히 마련되어야 한다”며 "아울러 표준임금 가이드라인과 생활임금제를 도입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했다. 

복지부는 이날 토론회에서 나온 의견을 수렴해 제도개선을 위한 종합계획을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임대식 복지부 의료자원정책과장은 "제기된 문제들은 여러 과에 걸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만큼 의견을 전달할 예정이고, 현장의 의견을 반영해 종합계획을 수립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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