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노조, 대선 앞두고 '주4일제' 공론화 나서
내년 3월 주4일제 노동시간단축 시범사업 제안
이재명·심상정 "주4일제 도입은 의료서비스 개선에도 긍정적"

[라포르시안] 스웨덴의 예테보리에 있는 살그렌스카(Sahlgrenska) 대학병원 묄른달(Mölndal) 분원의 정형외과. 이 곳에는 인력 운영에서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었다.  병원 직원들의 육체적 부담과 스트레스가 높고, 이로 인해 병가가 잦았다. 경영 여력이 없어서 풀타임으로 근무하는 직원이 적고, 그러다 보니 이직률이 높은 편이다. 간호사 채용도 어려워 일부 수술실이 폐쇄되고, 수술이 밀려 대기시간이 길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병원 측은 2015년 정형외과 간호사·간호조무사와 의사 89명을 대상으로 하루 6시간 근무제를 도입했다. 근무시간 단축으로 인한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해 직원 15명을 새로 고용하고, 새로운 직원 고용으로 매월 100만 스웨덴 크로나(한화 약 1억3085만원)가 추가로 지출됐다. 

하루 6시간 주 4일제 도입 이후 간호사와 의사 등 의료진의 업무 만족도와 효율이 증가고, 6시간 근무제 시행 이후, 병가 사용이 현격히 줄어들었다. 특히 다른 병원으로 이송했을만한 환자도 추가로 치료하는 등 기존에 비해 20% 더 많은 수술과 의료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병원은 2017년에 하루 6시간 근무제를 1년 연장했고, 2018년에는 영구적으로 도입했다. 

흔히 의료서비스 분야를 '노동집약적 산업'이라고 한다.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분야인 만큼 높은 전문성을 요구하는 의료인력의 노동력을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노동력이 많이 투입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러나 국내 의료기관을 보면 그렇지 못하다. '최소' 인력으로 '최다'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그런 면에서는 노동집약적이다 못해 노동력을 갈아넣는 수준이다. 만성적인 의료인력 부족 상황에서 '3분 진료'로 대표되는 박리다매식 의료서비스 제공 형태가 굳어졌다.  

2004년부터 주5일제가 단계적으로 도입되고 17년이 지났지만 병원에서는 이런저런 이유로 여전히 느슨하게 지켜진다. 보건의료노조가 올해 복지부와 한 노정합의에서 '의료기관의 주 5일제 정착'이 포함된 것만 봐도 상황이 어떤지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보건의료 분야에 '주4일제 도입'이라는 새로운 아젠다가 던져졌다.   

보건의료노조(위원장 나순자)는 지난가 24일 오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새로운 노동의 미래, 시대전환의 키워드 이제는 주4일제 시대'라는 토론회를 열었다. 

보건의료노조는 올해 산별교섭에서 대정부 교섭 요구안으로 '교대근무제 개선 및 주 4일제 (주32시간제) 단계적 도입'을 제시한 바 있다. 여기에 내년 3월 재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주4일제 도입을 선거판 이슈로 부가시키고 사회적 논의를 이끌어내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서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정책연구원장은 “보건의료노조가 주4일제 투쟁에 앞서 나서는 이유는 워라벨 요구를 넘어 살기 위한, 환자 곁을 지키기 위한 절박한 요구”라며 "특히 사회적으로 많이 거론되는 ‘일자리 나누기’를 넘어 간호사 극한 노동 극복, 시작율 줄이기와 일과 생활의 양립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서 올해 보건복지부와 노정합의를 통해 약속한 간호사 인력확충과 처우개선을 기반으로 내년 3월부터 의료기관 교대제개선 시범사업을 시작하면서 주4일제 노동시간단축 시범사업도 같이 제안할 방침이다. 

주4일제 도입 핵심은 적정인력 도입과 적정근무시간 준수다. 병원 종별로 적정 간호사 배치수준을 준수할 수 있도록 인력을 확충하고, 교대근무에서 공정한 근무표 작성과 예측가능한 근무형태 구성, 적정한 근무일 배치가 가능한 병원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이주호 원장은 "최근 주 4일제 의제가 대선 후보간 공방으로 쟁점화되기 시작했고, 노동계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제기하면서 의제를 주도해나가야 한다"며 "내년 1월 본격적으로 대선 투쟁을 하면서 주4일제 요구를 대선 핵심요구로 확정하고, 동시에 내년도 산별교섭의 임단협 요구안에 주4일제를 핵심요구로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4일제 시행에 있어서 쟁점은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간호사 인력 수급 대책이다. 

이주호 원장은 "노동시간단축이나 간호사대 환자비율 제도화, 교대제 개편 논의 때마다 등장하는 쟁점은 과연 간호사 인력수급이 가능한가"라며 "답은 가능하다, 간호인력을 2008년 이후 간호학과 입학 증원 2배 증원, 연 700여명식 증가 등으로 장기적 양적 공급은 충분하다. 문제는 각 병원에서 간호사 인력 자체가 부족해서 못구하는 것이 아니라 병원이 제시하는 임금 수준과 노동조건에서 구할 수 있는 간호사가 부족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원장은 "간호인력 처우개선을 통한 고용유지정책이 인력확충 이전에 최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하며, 이것이 바로 주4일제 노동시간단축"이라고 강조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은 '주 4일제 실행 사례와 국내 도입 방향 과제'란 발제에서 해외 여러 국가의 주4일제 도입 사례를 소개하며 국내에서 주4일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주4일제 실험 도입 과정에서 인센티브 전략도 병행해 고민해 볼 수 있고, 가칭 노동시간 단축 사업장 고용지원제도 검토 등이 검토될 수 있다"며 "보건의료분야 주4일제 관련 법률에 근거한 지원과 협의를 추진하는 것도 필요하고, 이를 통해 보건의료분야 노사정 이해당사자간 실험 추진과정에서 연구조사, 시범사업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외국의 경험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주4일제 도입) 실험을 시행해보는 것이 필요하고 정부의 일반회계를 이용한 재정지원도 필요하다"며 "주4일제는 감정노동 법제화 과정이나 프리랜서 정규직화 과정을 돌아볼때 정책적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 제공: 보건의료노조
사진 제공: 보건의료노조

"주4일제는 중장기적 과제...노동시간 단축 없는 주4일제는 안돼"

발제에 이어 진행한 지정토론에는 이채은 청년유니온 위원장, 조정훈 시대전환 국회의원, 임상혁 녹색병원장, 조문숙 대한간호협회 부회장(병원간호사회 회장), 박태주 고려대학교 노동문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이 참여했다. 

토론에서는 주4일제 도입에 앞서 보건의료 분야에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주4일제 도입과 이를 위해 근로시간특례업종에서 보건업 제외 등 제반 환경부터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임상혁 녹색병원장은 “가장 중요한 것은 장시간 노동은 노동자의 실수를 유발하게 되고 환자의 안전과 직결된다”며 "노동시간 단축 없는 주4일제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보건의료노조가 앞장서서 막아야 한다"고 했다. 

임 병원장은 "우린 항상 (노동시간 단축에 대해서) 대기업이나 큰 대학병원부터 먼저 하자고 항상 해왔다"며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근무시간 단축이) 가장 필요한 곳, 지방 공공병원이나 중소병원에서 먼저 시행하도록 해야하고 건강보험재정이 아니라 정부의 일반회계로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조문숙 간호협회 부회장은“간호사들에게 존엄한 노동시간은 질좋은 노동의 핵심이지만 주4일제 도입에는 합의가 필요하다”며 "심지어 중소병원에서는 인력이 없다는 이유로 68시간까지 근무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근로시간특례업종 지정 제도부터 우선 폐지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4일제 도입이 시기상조가 아니라 '중장기적 과제’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박태주 고려대학교 노동문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주4일제는 불분명한 표현이고 정규 노동시간을 줄일 것인지, 연장근로 한도를 줄일 것인지, 아니면 장기 휴가 제도를 도입할 것인지 여러 가지 논쟁이 있다”며 "보건의료부문에 고려할 우선 과제는 ‘특례업종 제도를 폐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치권에서도 대선을 앞두고 주4일제 담론의 공론화에 시동이 걸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주4일제를 언급하며 대선 아젠다로 띄었고,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는 주4일제 도입을 핵심 공약으로 제시했다. 

이날 토론회에 서면축사를 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교대근무가 많은 의료현장에서 주4일제 논의는 긍정적인 의미가 있다"며 "주 4일 근무를 통한 노동시간 단축은 보건의료 종사자들의 기본적 권리 보장과 삶의 질 향상은 물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다루는 보건의료 서비스의 개선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는 토론회에 직접 참석해 "최근 코로나19 국면에서 확인되는 것처럼 보건의료 노동자들은 그 어떤 영역보다도 장시간 노동과 교대제, 인력 부족 등으로 어려움을 겪어왔다"며 "국제노동기구도 24시간 서비스를 해야 하는 보건의료 부문에서 존엄한 노동시간 체제를 확립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심 후보는 "국가적인 주4일제 실험을 하는 등 가장 적극적인 나라가 유럽에서 비교적 장시간 노동에 시달려온 아이슬란드라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며 "그 어느 부문보다도 스트레스와 과로에 시달리는 보건의료노동자들이 앞장서서 주4일제를 추진해야 할 정당성이 여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정치권에서 가장 앞서 주4일제를 공론화한 시대전환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도 이날 축사에서 "주4일제는 보건의료 인력과 같이 불규칙 교대 근로자들에게도 충분히 가능한 제도"라며 "스웨덴의 예테보리 병원·요양원의 주4일제 실험, 미국 글레브 요양원의 프로그등 해외사례에서 입증된 바와 같이 보건의료 종사자의 주4일제 도입은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책임지는 보건의료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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