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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신약 약가협상 하세월, 환자 목숨보다 뭣이 중한가이은영(한국환자단체연합회 이사)

[라포르시안] ‘기적의 신약’이라고 불러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최초의 만성골수성백혈병 표적 치료제 '글리벡'. 글로벌 제약사 노바티스사는 2001년 4월 20일 식품의약품안전청(현 식약처)에 글리벡 수입품목 허가신청을 한 지 2개월만인 6월 20일 시판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한달 약값 300~600만원하는 고가약 논란으로 건강보험은 2003년 3월 1일이 되어서야 적용되었다. 시판허가 이후 건강보험이 적용되기까지 1년 8개월 동안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가족은 노바티스사와 정부를 상대로 약가인하 및 건강보험 급여화를 위해 목숨을 건 싸움을 벌였다. 고가의 약값을 감당하지 못한 환자들은 글리벡을 복용하지 못해 하늘나라로 떠나야 했다. 환자들은 치료할 약은 있는데 돈이 없어서 치료받지 못하는 참담한 상황에 좌절했고 분노했다.

2001년 글리벡 출시 이후 스프라이셀·타시그나·슈펙트·아이클루시그 등 만성골수성백혈병 표적치료제들이 연달아 출시되었다. 그 덕분에 환자들의 5년 이상 생존율이 거의 90%에 이르렀다. 글리벡이 정상세포는 그대로 두고 암세포만 공격하는 표적항암제라는 특성 때문에 치료효과 뿐만 아니라 부작용 면에서도 획기적인 개선이 이루어져 환자들 삶의 질이 크게 나아졌다.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들은 대부분 3개월마다 혈액검사와 유전자검사로 추적관찰을 하면서 정상적으로 사회활동 그대로 하고 있다. 2010년부터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들 중에서 표적치료제 복용 후 2년을 경과했고, 유전자검사에서 암세포수치가 0.032% 미만으로 5년간 지속된 경우 표적치료제 복용을 중단하는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다. 현재 절반 이상의 환자가 2년 이상 암세포 증가 없이 추적관찰만 하고 있고, 암세포가 증가된 환자도 다시 표적치료제를 복용하면 암세포가 대부분 사라지는 결과를 얻고 있다.

만성골수성백혈병 표적치료제와 같이 장기 생존과 완치에 대한 기대를 갖게 만든 또 하나의 혁신적인 신약이 2015년 3월 20일 국내 식약처에서 시판허가를 받았다. 면역항암제 키투루다(성분명: 펨브롤리주맙)와 옵디보(성분명: 니볼루맙)다. 이때부터 우리나라에서 면역항암제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2018년 10월 1일 제임스 P. 앨리슨 미국 텍사스주립대 면역학과 교수와 혼조 다스쿠(本庶佑) 일본 교토대 의과대 교수가 면역항암제를 개발한 공로로 노벨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하면서 면역항암제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더욱 커졌다. 키투루다와 옵디보 이외 티센트릭(성분명: 아테졸리주맙), 임핀지(성분명: 더발루맙) 등 새로운 면역항암제들이 연이어 출시됐다. 적응증 또한 비소세포폐암·흑색종에서 호지킨림프종·두경부암·신세포암·방광암·위암·식도암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지난 5년 동안 많은 환자들이 면역항암제 치료를 받으면서 일부 환자에게만 암세포가 완전히 사라지거나 크기가 대폭 줄어든 후 다시 자라지 않는 드라마틱한 효과가 있다는 사실과 일부 환자에게는 면역항암제 치료가 암을 오히려 악화시킨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면역항암제 열풍이 한풀 꺾이는 듯 했다. 그러나 면역항암제에 드라마틱한 효과를 보인 환자들 중에서는 면역항암제 복용 2년 후 만성골수성백혈병 표적치료제처럼 치료를 중단했는데도 그 효과가 지속되는 경우가 확인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들 환자가 면역항암제 추가 치료 없이도 장기 생존할 수 있을 가능성에 대해 조심스럽게 이야기 하고 있다. 말기암 환자들이 면역항암제 치료에 열망(熱望)하는 이유는 효과가 있는 환자 상당수가 부작용이 적어 여전히 일상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말기암 환자가 치료 후 효과가 있어서 약 1년 정도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면 우리나라 국민은 의료비를 얼마나 부담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재정당국은 현재 국민 1인당 GDP보다 더 높은 약 5천만원까지 건강보험 재정으로 지출하고 있다. 이 금액이 적정한지에 대해서는 면역항암제 치료 수혜자인 환자와 건강보험료를 지불하는 국민, 건강보험 재정을 관리하는 재정당국의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다. 다만, 재정당국은 적어도 면역항암제의 드라마틱한 효과와 삶의 질 개선을 경험하고 있는 일부 말기암 환자의 생명을 1년 연장하는 약값으로 5천만원 이상 건강보험 재정을 투입하는 것을 탄력적으로 해야 한다.

생명과 직결된 면역항암제를 신속히 건강보험 급여화해 환자를 살리는 것에 재정당국과 글로벌 제약사의 이해가 다를 리는 없다. 그러나 높은 약값을 받으려는 글로벌 제약사와 건강보험 재정을 절약하려는 재정당국은 현재 면역항암제 급여기준 확대를 놓고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대치상태를 이어오고 있다. 지난 4월 29일 열린 암질환심의위원회에서는 면역항암제 ‘옵디보’에 대해 호지킨림프종·두경부암 등 2개 적응증에 대한 급여기준만 수용했고, 신세포암에 대해서는 불수용했다. ‘키투루다’에 대한 비소세포폐암 1차 치료 급여기준 확대도 불수용했다. 다만, 암질환심의위원회는 제약사가 현실적인 재정분담안을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이에 대해 글로벌 제약사는 암질환심의위원회의 이번 결정에 대해 '재정블록킹'이라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말처럼 재정당국과 글로벌 제약사가 서로 약가 힘겨루기를 하는 동안 고액의 면역항암제 약값을 감당하지 못한 말기암 환자들은 생명 연장이나 완치 기회를 잃어버리고 죽어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가치의 중심은 환자의 생명이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을 발표하며 국민에게 “아픈데도 돈이 없어서 치료를 제대로 못 받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

“천하에 생명보다 귀한 것은 없다.” 글로벌 제약사도 신약을 개발하고 시판하는 이유가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라면 재정당국이 수용할 수 있는 재정분담안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더 이상은 재정당국과 글로벌 제약사의 힘겨루기에 환자가 피해보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번 면역항암제 급여기준 확대 이슈를 계기로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 신약의 신속한 건강보험 급여화를 위한 혁신적인 제도 개선을 위한 사회적 논의도 진행되기를 바란다.

이은영은?

2004년 백혈병에 걸린 후 골수이식으로 새 새명을 찾았다. 2007년 백혈병환우회에 합류한 이후 지금까지 줄곧 환자권익보호 및 복지 향상을 위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행동하는 활동가로 현장을 지켜왔다. 한국백혈병환우회 사무처장과 한국환자단체연합회에서 이사를 맡고 있다.

라포르시안  webmaster@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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