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종 법' 통과로 지원예산 마련됐지만 권역외상센터 공모서 탈락
드라마 속 '해운대 세중병원' 상황과 묘하게 겹쳐

▲ 응급의료기금 TV 공익광고의 한 장면. 이국종 교수는 이 광고에 모델로 출연하고 있다.

‘골든타임’의 악몽이 현실이 돼 버렸다.

삼호주얼리호 석해균 선장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국내 중증외상환자 응급의료체계의 문제점을 꼬집고 국가 차원의 중증외상센터 설립 지원 필요성을 일깨운 아주대병원 이국종 교수가 심각한 외상을 입었다.

이 교수에게 지난 1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권역외상센터’ 지원 대상기관 선정 결과는 석해균 선장의 몸을 파고든 탄환만큼이나 큰 충격을 가했을 것 같다.  

앞서 복지부는 지난 8월 말부터 9월 말까지 한 달간 수도권을 비롯한 전국 5대권역 권역응급의료센터 13곳을 대상으로 '권역외상센터 설치지원 대상기관' 공모를 진행했다.  9월 말 사업계획서 접수를 마감하고 관련 분야 전문가로 평가단을 구성해 중증외상환자의 진료실적 및 성과, 권역외상센터 운영계획 등을 중심으로 평가를 했다. 평가 결과, 가천대길병원을 비롯해 경북대병원, 단국대병원, 목포한국병원, 연세대 원주기독병원 등 5곳이 선정됐다. 

그런데 제1권역(서울, 인천, 경기, 강원)의 선정 결과는 의외였다. 

제1권역의 공모 대상은 아주대병원, 의정부성모병원, 가천대길병원, 원주기독병원 등 4곳이었다. 서울 지역은 이미 국립중앙의료원이 선정된 상태라 공모 대상에서 제외됐다.

공모 대상 4개 병원 중 최종 선정된 곳은 인천의 가천대길병원과 강원의 연세대 원주기독병원 2곳이다.

의료계 안팎에서는 당연히 아주대병원이 권역외상센터로 선정될 것으로 예상했다.  

아주대병원이 오랫동안 외상센터 육성에 많은 공을 들였고, 무엇보다 이 병원에 이국종 교수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권역외상센터 사업이 정부 지원으로 추진된 배경에는 이국종 교수의 공이 컸다.

이 교수는 작년 1월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피랍된 삼호쥬얼리호 선원들을 구출하는 과정에서 총상을 입은 석해균 선장을 치료한 주치의로서 유명세를 탔다.

특히 그는 석 선장을 치료하면서 틈만나면 부실한 중증외상환자 응급의료 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중증외상센터 설립 필요성을 사회적으로 인식시켰다.

그의 이런 노력은 중증외상센터 설립을 촉구하는 여론을 형성했고, 결국 정부와 정치권을 움직였다. 마침내 지난 5월 ‘이국종 법’으로 불리는 응급의료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오는 2016년까지 약 2,000억원의 응급의료기금을 투입해 17개소의 권역외상센터를 설치하는 방안이 확정됐다. 

그간의 상황을 따져볼 때 의료계 안팎에서는 아주대병원이 권역외상센터로 무난히 선정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국종 효과’도 있지만 아주대병원은 2010년 4월 중증외상특성화센터로 지정받아 중증외상환자에 대한 적극적인 치료 시스템을 운영해 왔다. 게다가 지난 10여년 간 이 교수를 중심으로 외상외과를 집중 육성해온 장점도 갖고 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의외였다. 제1권역 중 강원에서는 원주기독병원이, 그리고 인천에서는 길병원이 선정된 것이다. 경기 지역은 의정부성모병원과 아주대병원 2곳 모두 탈락했다.

이국종 교수 "며칠 지나면 또 그냥 잊혀지겠지…"아주대병원 측은 상당히 당혹스러워 하는 분위기다.

이 병원의 한 관계자는 “당혹스럽다. 당연히 될 것으로 생각했다”며 “이국종 교수가 직접 관여했고 병원장이 프리젠테이션을 할 정도로 관심을 갖고 추진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병원의 또 다른 관계자 역시 “당혹스럽다. 현재 (탈락한)원인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있다”며 “정부가 지방부터 우선 배려하려는 정책적 고려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해 평가 결과를 선뜻 납득하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국종 교수는 "지쳤다"는 말로 선정 결과에 대한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지난 1일 늦은 밤 어렵게 연결된 전화통화에서 "오후에 수술을 끝내고 뒤늦게 선정 결과를 들었다. 할 말이 없다. 지쳤다"며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평가 결과를 납득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이 교수는 "그 사안에 대해서는 복지부에 문의하기 바란다"며 "지난 10년간 계속 이랬다. 또 며칠 지나면 잊혀지지 않겠냐"고 애써 담담하게 말했다.  

▲ 드라마 '골든타임'의 한 장면.

그런데 아주대병원과 이 교수가 처한 상황이 얼마 전 종영된 한 방송국의 의학드라마 내용과 겹친다는 점에서 이번 선정 결과가  더 예사롭지 않게 받아들여진다. 

지난 9월 말 종영한 MBC 의학드라마 ‘골든타임’ 속 주요 배경이었던 ‘해운대 세중병원’ 역시 외상센터 육성에 공을 들였지만 정부 지원사업에서 탈락하는 상황이 연출됐다.

극중 세중병원과 최인혁 교수가 처했던 상황이 현실 속 아주대병원과 이국종 교수의 지금 상황과 오버랩된다. 

이 때문에 드라마를 언급하며 아주대병원의 권역외상센터 탈락을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국종 교수가 현재 응급의료기금 TV 공익광고의 모델이란 점이다. 지금도 방영되는 이 공익광고에는 이 교수가 수술하는 모습과 병실에 어린 환자를 돌보는 장면이 나온다. '모든 사람이 기적을 바랄 때 기적을 준비한 사람들이 있습니다'란 홍보 문구와 함께.  길병원, 굵직한 정부 지원사업 대부분 선정…"너무 독식한다" 비난도   한편 이번에 권역외상센터로 선정된 길병원은 정부가 추진하는 주요 지원 사업의 최다 수혜자로 떠올랐다. 

길병원은 현재 권역응급의료센터를 비롯해 기능형 지역 암센터, 소아전용 응급실 모델 구축사업, 응급의료 전용헬기 배치 의료기관, 광역정신보건센터, 신생아집중 치료센터, 중증외상 특성화센터, 권역심뇌혈관센터 등의 정부 지원 기관으로 지정됐다. 

하지만 인천 지역 병원계에서는 길병원이 정부 지원 사업을 독식하고 있다는 불만이 팽배하다.

지난달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 설치지원사업 공고를 놓고는 뒷말도 무성하다.

복지부가 인천 지역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 설치지원 사업 공고시 제시한 자격요건은 ‘대학교병원 중 의료법에 따른 상급종합병원, 심뇌혈관질환 전문병원’이었다. 길병원은 '의료법인 길의료재단' 산하 상급종합병원으로 학교법인의 대학병원이 아닌데도 선정 후보기관에 포함됐다는 자격 논란이 제기됐다.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