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의 시사 교양 프로그램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797회 <세상은 만만하지 않습니다>편 동영상 화면 갈무리.
CBS의 시사 교양 프로그램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797회 <세상은 만만하지 않습니다>편 동영상 화면 갈무리.

[라포르시안] "가난한 사람이 더 쉽게 다치고 죽는다"

아주대 의대 외상외과 이국종 교수가 의료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실을 통해 한국사회의 부조리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비판했다.

지난 7일 CBS의 시사 교양 프로그램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 출연해 '세상은 만만하지 않습니다'라는 제목의 강연을 통해서다. <세바시 797회 바로 가기>

이국종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외상외과 전문의로 응급의료 현장에 출동해 중증외상 환자를 살리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지만 한국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로 인해 환자를 살리기 힘든 현실을 꼬집었다.

이 교수는 "대부분 의사를 생각하면 책상머리에서 오더를 내리고 간호사들이 다 시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현장에 나가보면 의사, 간호사가 뒤섞여 한팀을 이뤄야 해요. 의사가 만약 '나는 의사니까' 하면서 지시만 내리고 뒤에 빠져 있으면 환자는 100% 죽어요"하고 말했다.

우리 사회의 시스템은 지시를 내리는 사람은 많은 반면 힘든 일을 수행하는 사람은 적다고 꼬집었다.  <관련 기사: 가운데 서야 할 사람은 정치인·공무원이 아니라 이국종 교수>

그는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지시를 내릴 사람은 많은데 전통적으로‘노가다’를 뛸 사람은 없다는 겁니다. 이런 일은 남이 해야 하는 거라 생각하죠. 아니면 남이 했다가 자기한테 해가 되면 안 되니까 오만 가지 이유를 대서 이런 일은 하면 안 된다고 하고, 이런 일이 의료계에서만 있는 줄 알았어요. 사회 전반이 바뀌지 않으면 이 문제는 나아지지 않아요"라고 했다.

의미심장한 질문도 던졌다.

"환자가 응급실에 깔려 있으면 안되니까 곧장 수술방 들어가서 뿜어져 올라오는 피를 막아내야 한다. 그러면 뭐라고 할 것 같나?"라고 청중들에게 묻고 아래처럼 5가지 답변을 제시했다.

한 청중이 이 교수가 제시한 5가지 중 '1번'처럼 말했을 것 같다고 답했다. 이 교수는 "1번이라고 생각하신 분, 그런 생각 가지고 있으면 한국에서 사회생활하기 많이 힘들 겁니다. 한국사회 별로 그런 거 없어요"라고 우스갯소리처럼 했다.

이 교수가 이런 우스갯소리를 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는 이명박 정부 때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된 '삼호 주얼리호' 구출작전 당시 총상을 입은 석해균 선장을 갖은 고생끝에 한국으로 후송해 치료했다. 하지만 그 일로 아주대병원은 석 선장 치료비를 받지 못했 수억원의 손실을 입었고, 이 교수도 석 선장을 후송하느라 빌린 에어앰뷸런스의 비용지급 독촉을 받기도 했다.  <관련 기사: 아주대병원, ‘석해균 선장’ 치료비 2억여원 결국 못 받았다 “이국종 교수, 석해균 선장 후송 에어앰뷸런스 비용지급 독촉받았었다”>

뿐만 아니라 중증외상 환자를 살리려는 노력이 자신이 속한 병원에는 오히려 손실이 되는 불합리한 의료시스템 속에서 갖은 맘고생을 했고, 국가 차원의 중증외상센터 설립을 위한 ‘이국종 법(개정 응급의료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정작 자신이 속한 병원은 한 차례 지원대상에서 탈락하는 일도 겪었다.

이날 강연에서 5가지 중 어느 게 정답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가 겪은 일을 생각하면 어느 게 답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가난한 사람이 더 쉽게 다치고 더 쉽게 죽을 수밖에 없는 한국사회 불형평성의 민낯도 적나라하게 들춰냈다.<한겨레21 관련 기사: “이 사람, 살려만 달라” 외침에도 가난이 묻었다

이날 강연에서 아주대병원 중증외상특성화센터 중환자실에서 치료받은 환자 리스트를 보여주며 사회적으로 구조화된 건강불평등의 문제를 언급했다.

'자동차나 오토바이 사고로 다치거나 고층건물 옥상에서 추락하거나 길을 걷다 차에 치인 44세 무직자 이씨. 34세 마트판매원 김씨. 48세 일용직 노동자 이씨. 24세 생산직 노동자 최씨. 53세 생산직 노동자 신씨. 24세 음직점 배달부 주씨……'

이 교수는 "제 중증외상 환자의 일부인데 이 중에서 끗발 날리는 직업이 있습니까? 이걸 본 여러분의 결심은 뭔가요. ‘나는 저런 직업을 가지지 말아야지?’ 그런데 어떡하죠.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인데"라고 말했다. .

한걸음 더 나아가 의료이용에 있어서도 형평성의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지금 김영란법 때문에 의사에게 청탁할 수 없지만 왜 내 핸드폰에는 문자가 수백통이 깔려 있을까요. 한국사회는 다치거나 했을 때 전화해가지고 '나 누군데' 해서 '누구누구 알지' 하는 식으로 압력이 들어가지 않으면 처리가 안된다는 사회적 불신이 있죠. 비참한 겁니다"라고 했다.

그는 "문제는 중증외상환자들 대부분은 노동하시는 분들이 많다는 겁니다. 이런 분들은 다치고 길바닥에서 죽어나가도 사회적으로 여론을 형성하지 못해요. 고관대작들은 아파서 병원에 가면 병원장부터 전화 오고 잘해줍니다.한국사회가 다 그래요. 이런 불합리한 일은 안 당해보신 분은 모를 겁니다. 사회안전망 구성에 문제가 있잖아요. 정의가 아니잖아요"하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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