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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기관인증까지 받은 대학병원서 항암제 투약오류를…빈크리스틴 척수강 투여로 또 환자 사망…"병원 환자 안전장치에 치명적 결함"
'환자안전법' 제정 필요성에 힘 실려
▲ 항암제 시타라빈<사진 왼쪽>과 빈크리스틴
지난 16일 인천에 위치한 가천의대 길병원에서 림프암 2기 진단을 받은 40대 초반의 여성이 '빈크리스틴' 항암제를 정맥이 아닌 척수강에 맞고 13일만에 사망하는 의료사고가 발생했다. 

병원 측도 이 환자의 사망이 항암제를 놨던 전공의의 과실 때문이란 점을 인정하고 있다. 지난 2010년 백혈병을 앓던 정종현 군이 경북대병원에서 빈크리스틴 투약 오류로 목숨을 잃은데 이어 동일한 의료사고가 또 다시 발생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급성 림프모구성 백혈병 환자에게는 빈크리스틴과 시타라빈이라는 항암제를 함께 투여하는 경우가 많은데, 빈크리스틴은 정맥에 시타라빈은 척수강에 투여해야 한다.

두 항암제가 다른 신체 부위로 투약되면 환자에게 치명적인 부작용을 초래한다.

하지만 두 항암제가 이름도 다르고 라벨도 달라 웬만해서는 헛갈릴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고려대안암병원 김열홍 교수(혈액종양내과)는 “빈크리스틴과 시타라빈은 여러 단계의 안전장치가 작동해 다른 부위에 투약하는 실수가 발생하기는 어렵다”며 “우리 병원에서는 전공의가 투약을 한다 해도 스텝이 먼저 확인하고, 항암전문약사가 주사액 제조 과정에서 재확인한다. 마지막으로 항암전문간호사가 항암제 투여 직전에 확인하기 때문에 투약사고가 일어날래야 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병원마다 투약오류를 걸러낼 수 있는 안전장치가 다르다면, 안전장치가 있다해도 그것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 구조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한국환자단체연합은 지난 23일 성명서를 내고 “정종현군이나 강미옥씨의 빈크리스틴 투약오류 사망사고는 단 한건이라도 발생하면 안 되는 매우 중요한 적신호 사건(Sentinel event)”이라며 “이런 사건은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다. 해당 병원의 환자안전 관리체계에 뭔가 심각한 구조적 결함이 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의료기관평가인증원의 철저한 사후조사를 통해 의료기관평가 재인증 작업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자단체연합은 “의료기관평가인증원은 신속히 사건 확인 후 수시조사를 나가야 한다. 인증기준 6장(약물관리 중 투약 및 모니터링)에 따라 약물투여 관련 규정 등의 기준을 제대로 지켰는지 확인하고 심각한 기준 위반이 확인되면 인증을 취소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의료기관평가인증원은 빈크린스틴 투약오류에 따른 의료사고 발생 직후 보건복지부와 길병원에 각각 협조공문을 발송했다.

길병원의 투약 및 모니터링 시스템을 점검하고, 재발 방지대책을 받겠다는 것이다. 

인증원 인증사업실 관계자는 “전공의가 실수를 인정했다면 분명 휴먼에러인데 병원 차원에서 이런 실수가 일어난 원인을 분석하고 추후 재발을 방지할 수 있는 대책을 내놓을 것을 측에 주문했다”며 “만약 재발방지 대책이 부실하거나 개인 문책 정도로 끝난다면 복지부와 현지조사를 나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의료기관인증 평가 실효성 문제 제기돼문제는 복지부와 인증원의 대처가 사후약방문에 그칠 수 있다는 점이다.

환제단체연합 안기종 대표는 “의료기관평가인증의 핵심은 기본적으로 투약 등 절차가 있냐를 확인하는 것”이라며 “그런데 인증원은 평가업무만 한다. 통지 후 점검이 끝나고나면 다시 이전 상태로 돌아갈 있기 때문에 수시점검과 불시점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인증원이 병원으로부터 받은 투약 및 모니터링 시스템의 문제점과 재발방지 대책을 전문가 논의를 거쳐 병원들이 공유할 수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인증원은 피인증기관인 병원의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병원이 의료사고를 인정하는 자료는 상당히 민감한 정보인데다 법정 소송에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증원 인증사업실 관계자는 “미국처럼 적신호사건이 발생하면 인증기관에 보고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의료사고를 막을 수 있다”며 “하지만 병원의 정보보호가 전혀 이뤄지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꼬집었다.

미국의 경우 전체 50개 주 중 27개주에서 의료기관이 의무적으로 주정부에 환자안전사고에 관한 오류를 보고하고 있으며, 이에 따른 원인 분석과 경험 공유를 철저히 실행하고 있다.

빈크리스틴과 시타라빈의 경우 구분이 쉽도록 라벨링을 다르게 하고 주사액이 주입되는 속도를 차별화하는 방식으로 용기를 바꿔 오류 발생을 최소화하는 사후 조치가 신속하게 이뤄진다.   

울산의대 이상일 교수는 “외국 보고에 따르면 입원환자 10명 중 1명은 경미한 수준 이상의 환자안전사고를 경험하고 있다”며 “이런 종류의 사고를 줄이기 위해 제도적 기반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또한 병원의 자발적인 오류보고를 이끌어내기 위해 그들을 위한 법적보호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환자단체를 중심으로 병원의 시설, 인력, 의약품 등의 기준을 명시하고 이를 지키지 않았을 경우 처벌 조항을 담은 ‘환자안전법’을 만들자는 목소리가 높다.

이미 환자단체연합은 지난 8월 20일 ‘환자안전법 추진위원회’를 결성한 이후 전문가 간담회를 수시로 열어 왔으며, 동시에 환자안전법 제정을 위한 국민청원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상일 교수는 “환자안전사고 발생 시 유사한 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해 현황(오류)을 파악하고 원인을 분석하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는 게 우선돼야 한다”며 “환자안전에 대한 제도적 기반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환자안전법 제정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서의규 기자  sunsu@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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