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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뷰] 전공노·임신순번제 방치하는 '병원 잔혹사'만성적 인력부족·과잉노동 그늘에 갇힌 젊은 의사들과 간호사
병원 경영진 욕심·무책임한 정책이 빚어낸 폐해

‘전공노, 펠노예’

의사들 사이에 일종의 은어처럼 통용되는 말이다. 전공노는 ‘전공의노예’란 의미이고, 펠노예는 ‘펠로우노예’란 뜻이 담긴 자조 섞인 표현이다.  전공의와 펠로우(임상강사)는 주로 수련병원급 중대형병원에 소속된 20대 후반부터 30대 중후반 사이의 비교적 젊은 의사들이다. 이들이 어쩌다가 노예로 불리게 된 것일까.

전공노와 펠노예는 수련병원의 도제식 교육시스템과 만성적인 인력부족 현상, 병원의 탐욕과 무책임한 의료정책이 빚어낸 합작품이다. 이들은 의료현장에서 주당 100시간이 넘는 살인적인 근무시간에 시달리고 있다. 별다른 보수 없이 무급으로 근무하는 정말로 노예같은 임상강사도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에 따르면 수련병원 전공의 가운데 50% 이상이 주당 100시간 이상 근무를 하면서 기본적인 식사, 수면 시간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당직업무 외에도 환자 주치의로서 휴일에도 근무를 하는 ‘임의당직’도 서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근무강도에 비해 턱없이 낮은 임금을 받고 있다. 지난해 대전협이 68개 회원 병원의 내과 레지던트 3년차를 기준으로 ‘2010년도 근로소득 원천징수영수증’을 조사한 결과, 3년차의 평균 연봉은 약 3,700만원으로 조사됐다. 가장 높은 연봉을 받는 병원은 5,456만원, 가장 낮은 연봉을 받는 병원은 2,633만원으로 급여 수준의 양극화도 심각했다.

이정도 연봉 수준도 대전협 등의 지속적인 문제제기로 많이 인상된 것이다. 대전협이 지난 2003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153개 수련병원 중 중소규모 병원의 전공의 평균연봉은 2,000만원 이하인 것으로 조사됐다. 오죽했으면 지난 2006년 치러진 대한의사협회 회장 선거에 출마한 한 후보가 ‘전공의 평균연봉을 3600만원으로 상향 조정’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을까 싶다.

전공의는 그 신분도 애매하다. 수련을 받는 피교육자 신분이면서 분명 병원에 소속돼 급여를 받고 일하는 노동자다. 피교육생으로서 교육도 받지만 규정된 업무도 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병원들 입장에서는 때론 교육자란 지위를 앞세워, 때론 사용자란 신분을 내세워 이들을 압박하고 편리하게 부린다. 전공의들이 수련병원을 상대로 제기한 퇴직금 청구소송은 이런 모순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법리적으로 전공의가 근로자란 해석이 내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병원들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퇴직금 지급을 거부하는 일도 잦았다.

그나마 전공의들의 열악한 근무환경과 낮은 처우는 널리 알려졌지만 펠로우로 불리는 임상강사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채 속으로 곪아터지고 있다. 주요 대형병원마다 무급으로 근무하는 임상강사가 적지 않고, 급여를 받더라도 비슷한 경력의 봉직의와 비교하면 많아야 절반, 혹은 1/3 수준에 불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무는 외래진료부터 입원환잔 진료, 학생과 레지던트 교육, 진료과 업무, 그리고 기타 잡일까지 모두 처리해야 한다. 정작 가장 중요한 연구나 논문작성을 위한 시간은 없다. 이렇게 해도 교수신분을 획득한다는 보장도 없고, 언제 잘릴지 모르는 처지다. 그런데 임상강사는 본인의 선택에 의한 것으로, 병원과의 관계에서 철저하게 ‘을’의 입장인 탓에 이런 문제를 외부로 드러내지 못한다.

이들이 만약 노동자 신분으로 근로기준법에 따른 법정근로시간을 지키며 ‘준법진료’를 한다면 어떤 상황이 펼쳐질까. 전공의와 임상강사의 살인적 근로시간과 저임금에 의존하는 병원들 입장에서는 아마도 엄청난 진료혼란과 경영상의 부담이 초래될 것은 자명하다. 전국 단위의 의사노조 설립을 추진하는 대한의사협회 노환규 회장이 "(의사노조 설립시)의사들이 준법진료만 해도 협상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언급한 것도 이런 사정을 꿰뚫고 한 말이다.

전공의·간호사,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과로사·자살도 잇따라 전공의와 임상강사뿐만 아니라 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와 의료기사 등의 사정도 열악하긴 마찬가지다. 전국보건의료노조가 지난 3~4월 한달 간 조합원 2만12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보건의료 노동자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46.6시간이며, 직종별로는 간호사가 48.13시간으로 가장 많았다.

보건의료 노동자의 주당 노동시간은 2005년 45.1시간에서 2009년 46.2시간, 2011년 46.6시간, 2012년 46.6시간으로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지난 2004년 주 40시간제가 도입된 이후 우리나라 전체 노동자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감소하는 것과 달리 보건의료 노동자의 노동시간은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만성적인 인력난에 시달리는 지방 중소병원으로 가면 사정은 더욱 열악해진다. 한 달에 10회 가까이 야간 근무를 하거나 간호사 1명이 30명 가까운 환자를 돌봐야 한다. 심지어 일부 의료기관은 간호사가 임신할 경우 발생하는 인력공백을 우려해 임신순번제까지 강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연한 결과지만 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등 의료인력 가운데 과도한 업무로 수면장애, 방광염, 소화불량, 근골격계 질환 등을 앓는 이가 적지 않은 실정이다. 오죽했으면 여가시간 활용 1순위로 ‘잠자기’를 꼽았을까 싶다.

인력부족으로 인한 고강도 업무에 시달리는 의사와 간호사 등의 근무상황은 의료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린다. 늘 피곤한 상태에서 업무 집중력이 떨어지다 보니 잘못된 판단을 내리거나 엉뚱한 처치를 내릴 가능성이 높고 이는 심각한 의료사고를 초래할 수 있다. 밖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실제 의료현장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병원 내에서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다가 과로사 하거나 심지어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으로 자살하는 전공의와 간호사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병원간 환자유치 경쟁과 대형병원의 몸집 부풀리기 경쟁이 심화되면서 업무강도는 갈수록 세지고 있어 전공의와 간호사 등 의료인력의 근무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병원은 대표적인 노동집약적 서비스 산업이다. 아무리 첨단 의료기기가 등장하고, 의료정보화가 이뤄져도 결국은 의료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는 단 한 번도 이 문제에 진지하게 접근한 적이 없다. 의사단체나 병원 노조가 해마다 이 문제를 지적하고 있지만 소귀에 경 읽기다. 양적인 성장과 건강보험 재정 절감에만 관심을 갖는 병원 경영자의 욕심과 정부의 근시안적 정책은 이런 문제를 짐짓 못 본 척 한다.

외국의 사례를 굳이 들먹일 필요도 없지만 어쩔 수 없다. 다른 나라에서는 정부가 적정 의료인력을 유지하고 적정 근무시간을 유지할 수 있도록 재정적 지원을 한다. 미국의 경우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에서 연간 수조원의 전공의 수련교육 비용을 지원한다. 이를 기반으로 병원들은 추가 인력을 고용하고, 전공의들이 적정 근무시간이란 지극히 당연한 기본권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려고 한다. 일본은 의대 졸업 후 2년간의 임상 수련과정에 드는 비용의 100%를 국가에서 부담한다. 캐나다의 경우도 전공의 임금을 지방정부의 재정에서 대부분 지원한다. 국가의료체계인 영국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우리는 지난 2003년부터 외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등 전공의 지원 기피과에 한해 수련보조수당이란 명목으로 월 50만원씩 지원하는 것이 전부다. 그것도 국공립병원에 한해서다. 그마저도 예산이 부족해 미지급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부족한 간호인력 확충을 위해 입원병상 당 근무하는 간호사 수를 따져 등급에 따라 입원료에 대한 가산해주는 ‘간호관리료 차등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입원료 가산에 따른 인센티브보다 인력 충원에 따른 인건비 부담이 더 높다보니 인력확충 효과는 미미한 실정이다. 인력확충을 위한 적극적인 지원보다는 병원의 상황에 따라 선별적으로 재정지원을 하다 보니 그 효과 역시 미미하고 상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의료기관이 적정 보건의료 인력을 유지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환자를 위해서다. 적정 인력이 유지될 때 환자들에게 적정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그만큼 병원은 노동집약적 구조이기 때문이다. 진짜 문제는 병원내 종사자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인한 잔혹사가 자칫 환자들의 잔혹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의료현장 어느 곳에선 고된 업무에 지친 전공의, 혹은 간호사에 의한 의료사고가 발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조만간 국회에서 ‘보건의료인력지원특별법’이 입법 발의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 특별법(안)에는 보건의료인력 지원에 대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를 명시하고, 보건의료인력 지원에 필요한 재정지원, 보건의료 인력지원 업무를 전담하는 '보건의료인력원' 설치 규정 등을 담길 예정이다. 의료계는 물론 환자, 건강보험 가입자 모두가 특별법 제정에 관심을 갖고 입법이 실현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다. 병원 잔혹사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는.  

김상기 기자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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