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인데 벌써 온열질환자 발생 증가세…“심각한 공중보건 문제로 적극적인 에너지복지정책 필요”

[라포르시안] #. 어깨를 걸듯 다닥다닥 붙은 쪽방은 미로처럼 복잡한 골몰길을 통해야 한다. 1~2평의 좁은 공간에 들어온 여름 한낮의 열기는 밤이 되도 빠져 나가지 못한다. 선풍기를 켜 놓으면 방안에서 맴도는 열기 때문에 오히려 온도가 올라갈 지경이다. 쪽방 거주자들에게 여름의 폭염은 그 자체로 위협적이다. 낮에 모인 열을 밤까지 담고 있는 쪽방이란 공간은 흉기가 된다.

때 이른 무더위가 찾아오면서 벌써부터 열사병과 열탈진 등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7월 초부터 본격적인 여름 무더위가 시작되면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자가 급증할 것으로 우려된다.

더위를 꺾을 냉방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에너지 빈곤층'을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부의 대책은 구체적이지 못하고 부실하다. 폭염으로 인한 건강위험의 실태 파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후변화로 폭염일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고, 해마다 이런 일이 반복된다는 점에서 심각한 공중보건 문제로 인식할 필요가 있지만 정부의 대책은 아직 거기까지 미치지 못한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는 지난 15일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면서 온열질환에 따른 건강관리 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온열질환은 열 때문에 발생하는 응급질환으로, 뜨거운 환경에 장시간 노출되면 두통, 어지러움, 근육경련, 피로감, 의식저하를 겪게 된다. 온열질환 상태에서 그대로 방치할 경우 열사병으로 발전해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다. 지난해 온열질환으로 11명이 사망했다.

복지부가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응급의료 데이터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매년 평균 1,128명의 온열질환자가 내원하고 이중 240명이 입원(21%), 96명은 중환자(8.5%)로 나타났다.

온열질환자는 7월 하순부터 8월 초 무렵 절정에 다다르다가 이후부터 무더위가 한풀 꺾이면서 급감하는 추세를 보였다. 

질병관리본부가 5월 23일부터 '온열질환 감시체계'를 운영한 결과, 이달 11일까지 3주 동안 총 65명의 온열질환자가 신고됐다. 이 중 실외에서 54명(83.1%)이 발생해 실내보다 4.9배 더 많았다.

지난 5년 간 온열질환감시 결과에 따르면 실외 발생이 평균 80%였고, 이중 실외작업장에서 26.9%, 논·밭에서 17.4% 발생했다.

온열질환에서 소아와 노인은 고위험군이다. 최근 5년간 온열질환자 통계에서 인구 100만명당 환자수는 평균 22명이었다. 6세 이하는 41명, 65세 이상은 39명으로 2배 가까이 더 높았다.

기후변화로 인해 연간 폭염일수(최고기온 33.0℃이상인 날의 일수)가 계속 길어지고 있지만 정부의 대책은 안일하다. 폭염에 따른 건강관리 대책은 대부분 개별기업이나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듯하다.

복지부는 "야외활동으로 인한 온열질환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폭염이 집중되는 낮 시간대(12∼17시)에는 장시간 야외활동을 자제하고, 불가피하게 논·밭 혹은 건설업 등 야외근로 작업을 해야 하는 경우 자주 시원한 장소에서 휴식하며, 갈증을 느끼지 않더라도 수분을 평소보다 많이 섭취해야한다"고 당부했다.

집에서 발생한 온열질환자 최근 5년간 300명 넘어무엇보다 저소득층, 특히 냉방장치를 가동하기 힘든 '에너지 빈곤층'을 위한 폭염대응 대책이 절실이다.

에너지 빈곤층이란 난방과 보온을 위한 적절한 에너지 사용에 있어서 제한을 받는 계층으로, 일반적으로 영국의 '주택난방 및 에너지절약법(Warm Homes and Conservation Act, 2000)'에서 제시한 기준에 따라 에너지 빈곤 여부를 가른다.

영국은 겨울철 거실온도를 21℃, 거실 이외의 온도 18℃를 유지하기 위해 지출하는 에너지 구매비용이 소득의 10%를 넘는 가구를 에너지 빈곤층으로 규정하고 있다. 에너지 빈곤층의 경우 비용부담 때문에 겨울철 추위나 여름철 무더위에 냉난방 장치 가동이 힘들다.

실제로 빈공층의 상당수가 폭염에 무방비 상태인 것으로 조사됐다. 

전국 246개 환경·소비자·여성단체 전문 NGO 네트워크인 에너지시민연대가 작년에 발표한 '2015년 여름철 빈곤층 에너지 주거환경 실태조사(3차년도)'에 따르면 조사대상 160명 중 60%에 달하는 인원이 어지럼증 등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에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대상 전체 가구가 거주하는 건물의 건축년도를 보면 1990년 전에 지어진 노후건물이 83%에 달했고, 가구 내 실내온도는 평균 27.8도로 나타났다.

찜통더위를 극복하기 위한 주냉방시설로는 선풍기가 86%로 가장 많았고, 에어컨이라고 응답한 가구는 8%에 불과했다.

조사대상 중 60%가 폭염으로 인한 대표적인 온열질환인 어지럼증을 호소했으며, 41%가 두통을 앓았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14%는 폭염으로 인해 호흡곤란을 앓는 등 위험수위까지 경험했고, 높은 기온을 견디지 못하고 실신한 경험이 있는 경우도 6%에 달했다.

복지부에서 작성한 2011년부터 2015년까지 발생장소별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감시체계 결과를 보면 발생장소가 '집'인 경우가 305명에 달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실제 온열질환자 수는 정부 통계치보다 훨씬 많을 것"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정부가 폭염에 적절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복지부는 7~8월에 노숙인이나 쪽방 거주자들이 폭염으로 인한 건강피해를 피할 수 있도록 노숙인 종합지원센터, 쪽방상담소를 중심으로 '무더위쉼터'를 운영한다. 그러나 무더위쉼터가 필요한 이들은 이런 정보를 몰라 이용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각 지자체가 운영하는 머더위쉼터 정보나 위치도 대부분 인터넷을 접속해서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노숙인이나 쪽방에 거주하는 노인층한테는 무용지물이다.

복지부는 작년 겨울(12~2월)부터 에너지 취약가구에 최소한의 난방을 보장하기 위해 전자카드 형태의 에너지 바우처(이용권)를 제공하는 제도를 시행했지만 여름철 폭염에 대비한 에너지 바우처는 아직 없다.

국내에서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자 발생 등의 건강영향이 과소평가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대한의사협회 국민건강보호위원회는 보건 당국이 폭염에 취약한 환자군인 만성질환자를 통계에서 제외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발생하는 온열질환자 수는 정부 통계치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했다.

고혈압, 당뇨병, 심장질환이 있는 환자들의 경우 폭염으로 인해 기저질환이 악화돼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부분은 통계에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국립기상연구소에 따르면 폭염일수가 가장 길었던 1994년의 경우 폭염으로 인한 초과사망자가 3,000명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에너지 빈본층이 폭염에 따른 온열질환 발생에 대응할 수 있도록 주거환경 개선과 의료지원, 적절한 정보전달체계 확립이 시급하다.

에너지시민연대는 "고혈압과 당뇨 등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고령의 독거노인이 폭염에 무방비상태로 방치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에너지빈곤층 노인들은 각종 질환으로 거동이 불편하고, 컴퓨터 및 휴대전화 이용이 불편한 만큼 찾아가는 서비스를 운영하는 등의 적극적인 기후에너지복지정책이 시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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