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자본에 중소 의료법인 병원 종속당할 우려 높아” 의사협회도 반대하는 법안

[라포르시안]  의료법인의 영리자회사 설립 허용에 이어 의료법인간 인수·합병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 상임위를 통과했다.   의료법인 인수합병 허용은 박근혜 정부가 2013년 말 발표한 제4차 투자활성화 대책에 포함된 장책과제 중 하나로, '의료민영화'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지금까지 의료영리화 반대 기조를 천명해 왔던 더불어민주당 측에서 이 법안 처리를 적극 저지하지 않은 것도 큰 의문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지난 29일 전체회의를 열고 의료법인의 해산 사유에 ‘다른 의료법인과 합병한 때’를 추가해 의료법인 인수·합병의 근거를 마련한 의료법 개정안(수정안, 새누리당 이명수 의원 대표발의)을 의결했다. . 개정안은 다른 의료법인과 합병해 소멸한 때를 해산 사유로 명시하고 합병 시 사전에 복지부 장관과 협의를 거쳐 합병허가 여부를 결정하도록 했다.

이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이명수 의원은 "의료법상 의료법인 간 인수․합병 규정이 없어,경영상태가 건전하지 못한 의료기관도 파산 시까지 운영할 수밖에 없으며, 이로 인해 의료서비스 질 저하 및 경영악순환으로 인한 지역 내 의료제공에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며 "의료법인 합병절차를 통해 의료자원 활용의 효율성이 증대하고 건전한 의료기관의 운영과 원활한 의료공급을 도모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의료법인 간 인수·합병 허용을 그렇게 간단히 볼 사안이 아니라는 점이다.  현행 의료법에서 의료법인 병원은 인수·합병·매각이 불가능하고, 해산 시 병원 재산을 국가나 지자체에 귀속시키도록 돼 있다. 대신 의료법인에는 각종 세금 면제와 경감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의료법인은 그 성격을 비영리법인으로 규정하고, 이익을 출연자에게 배당하지 않고 고유목적사업에 재투자해야 한다 이런 규정을 적용하는 이유는 1970년대 의료법인제도 도입 배경과 무관치 않다.

당시 의료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민간의료기관의 공공성을 제고하고 지역간 의료불균형 해소정책의 일환으로 세제 혜택 등의 유인책을 앞세워 의료취약지약에 의료법인 병원 설립을 활성화를 모색했다. 의료공공성 강화와 의료기관의 지역적 편중을 해소하기 위해 일종의 특수 공익법인인 의료법인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출처: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연구소의 '의료법인의 영리자법인 설립 허용 정책의 쟁점' 보고서 중에서.

그러나 1980년대 이후부터 전국적으로 민간병원이 급증하고 수도권을 중심으로 대형병원이 잇따라 설립되면서 지방을 중심으로 설립된 중소 의료법인 병원은 점차 경쟁력을 잃고 뒤쳐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최근 들어서는 중소 의료법인 병원의 경영난이 심해지고 도산율이 높아지면서 퇴출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졌다.  

병원계는 경영난에 직면한 의료법인 병원도 퇴출구조가 없다보니 경영난으로 정상적인 운영이 힘든 상황에서 병원경영을 계속 유지하면서 부실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퇴출 구조를 만들어 줘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보건복지부도 "의료법인간 합병에 관한 규정이 전혀 없어 경영상태가 좋지 못한 병원이 파산직전까지 운영되는 악순환을 겪는 문제가 있었다. 의료법인 합병절차 마련으로 의료자원 활용의 효율성이 증대될 것"이라고 주장하며 인수합병 허용 추진을 시도했지만 거센 반대 여론에 밀려 실현되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 2013년 발표한 정부의 제4차 투자활성화대책에 의료법인 영리자회사와 인수합병 허용 방안이 포함됐다. 새누리당 이명수 의원이 1년 뒤 의료법인 인수합병을 허용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사실 의료법인 인수·합병 허용은 워낙 반대여론이 높고 부작용 우려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법안 처리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았는데 19대 마지막 임시국회에서 느닷없이 다뤄진 셈이다.

"의료법인 인수합병 허용시 영리자회사와 맞물려 영리병원체인 가능해져"앞서부터 진보적 보건의료 관련 단체는 물론 대한의사협회에서도 인수·합병 허용에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등은 의료법인 합병허용이 병원 상업화와 재벌체인병원을 양산하는 정책이라며 강한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실제로 병원계에서는 의료법인 매각시 이사장의 지분가치를 인정해주고, 투자액의 일부를 돌려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의료법인 병원을 사고파는 매물, 혹은 투자대상 상품으로 허용하자는 주장이나 마찬가지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의료법인 인수·합병 허용은 병원의 매각을 실질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조치이며 의료법인간 신설합병 또는 인수합병이 허용되면 병원의 가격이 책정되게 되고 이에 따라 의료법인의 투자자본은 회수가능한 자산으로 취급된다"며 "여기에 의료법인 자회사로 영리법인이 설립되면 자회사를 통한 투자자의 자산회수가 여러 방법으로 가능해진다"고 우려했다.

특히 의료법인 영리자회사 설립을 통해 부대사업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한 데 이어 의료법인 간 인수·합병까지 허용되면 영리병원체인 설립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의료법인간 인수합병 또는 신설합병으로 체인형 병원을 설립하고 영리자회사를 통해 이 병원체인에 의료기기공급 및 임대, 의료용구 임대·판매 등의 영리사업을 하게되면 영리자회사가 지주회사가 되는 영리병원체인이 가능해진다"고 봤다.

2014년 12월 29일, 전국보건의료노조와 의료민영화저지를 위한 범국본은 여의도 새누리당 앞에서‘의료기관 인수합병, 영리병원 규제완화 등 의료민영화 정책’추진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한의사협회는 이명수 의원의 의료법 개정안이 제출되자 2015년 1월 국회에 반대의견을 제출했다. 의협은 이 의견서를 통해 "의료법인간 인수합병을 허용할 경우 대자본에 의한 의료법인의 대형화 경쟁 촉발 및 거대자본에 중소 의료법인이 종속당할 우려가 매우 높다"며 "의료서비스의 질 저하와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현상을 심화시키고, 일차의료기관의 경영위기를 더욱 가속화시킬 것이 자명하다"고 지적했다. 

의료법인 인수·합병 허용시 가장 우려되는 문제는 국민의료비 부담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이다. 인수·합병 시장에 매물처럼 병원이 나올 경우 상품 가치를 높이기 위해 수익추구를 위한 과잉진료로 내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NIHCM(National Institute for Health Care Management)재단에서 2009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병원간 인수합병이 병원비를 최소 5%에서 최대 50% 이상 상승시킨 반면 의료 질은 비슷하거나 오히려 떨어뜨리는 것으로 분석됐다.

가장 이상한 건 이렇게 우려가 높은 법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의료영리화 반대기조를 천명해온 야당의 적극적인 반대가 없었다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20대 총선을 계기로 더불어민주당의 정책 기조에 변화가 온 거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은 "의료법인 인수합병을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은 워낙 부작용이 많고 반대여론도 높은 법안이라서 설마 이걸 다룰까 싶었다"며 "더불어민주당이 이 법안의 처리 과정에서 별다른 반대가 없었다는 것을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다. 복지위 소속 더민주 의원실에서는 이 법안의 내용을 잘 몰랐다고 하는 데 말이 안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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