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 건강보험 흑자 17조 외부 위탁투자 활성화 검토…시민단체 “국민 의료비 부담 완화에 사용해야”

송언석 기획재정부 차관이 3월 29일 서울시 서초구 반포 더 팔래스 호텔에서 열린‘사회보험 재정 건전화 정책협의회’1차 회의를 주재하며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기획재정부

[라포르시안]  정부가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등 7대 사회보험의 재정건전화를 위한 방안 중 하나로 해외·대체투자 등의 방식을 통해 적극적으로 자산운용을 하거나, 적립금이 늘어난 사회보험의 경우 투자기간을 늘리는 자산 운용전략을 검토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는 정부의 이런 방침이 국민건강보험의 기본 원리와 근간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다며 강력한 우려를 표명했다.

앞서 기획재정부는 지난 29일 7대 사회보험 이사장이 참석한 가운데 ‘사회보험 재정건전화 정책협의회’를 열고 재정건전화 추진 방안을 논의했다.

정부는 "7대 사회보험 적립금의 안정적 수익을 위해 더욱 적극적인 자산운용시스템을 마련한다"며 "7대 사회보험의 자산운용 현황 실태를 오는 5월까지 정밀 진단해 개선 권고안을 마련하고, 이를 토대로 투자 상품, 만기구조 다변화 등 투자전략 개선과 외부 위탁 활성화 등 자산운용체계 정비 방안을 수립해 실행한다"고 밝혔다.

건강보험 재정의 누적적립금을 부동산 투자나 사회간접자본(SOC) 등에 투자하는 대체투자를 활성화 하겠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서 '의료민영화저지와 무상의료실현을 위한 운동본부', '의료민영화·영리화 저지와 의료 공공성 강화를 위한 범국민운동본부'는 31일 기자회견을 열고 "건강보험 투자운용을 거론하는 것은 국고지원 축소를 위한 꼼수이며, 건강보험 흑자는 국민들을 위해 쓰여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 단체는 "건강보험 누적흑자 17조원은 박근혜 정부 의료정책 실패의 산물로, 4대중증질환 100% 보장 같은 자신의 공약조차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서민들은 높은 본인부담금으로 아파도 병원 이용을 자제해 흑자가 매년 수조 원씩 발생했다"며 "(건강보험)흑자의 올바른 접근은 잘못된 의료정책을 교정하고, 국민들의 의료비를 인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건강보험 흑자로 금용상품 등에 투자를 하겠다는 것은 후안무치한 발상이라고 비난했다.

이들 단체는 "건강보험은 재정의 대부분을 가입자가 내는 사회보험으로, 2014년 기준으로도 가입자가 부담하는 보험료 비율은 87%이고, 정부는 국고에서 고작 13%만을 부담했다"며 "정부의 일방적인 발표 내용만 보면 건강보험 재정이 거의 전적으로 국고지원으로 운영되는 것 같은 착시현상을 일으킬 정도다. 건강보험의 주인인 국민들을 객체화 시키고 기존의 형식적 절차조차 무시하는 행위는 건강보험에 대한 비민주적 폭거"라고 비난했다.

의료민영화저지와 무상의료실현을 위한 운동본부 등의 단체가 31일 오전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 홀에서 정부의 건강보험 흑자 투자운용 방침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 제공: 보건의료단체연합

무엇보다 건강보험 재정이 1년 단위의 단기 재정운영을 하는 사회보험임에도 이를 투자해서 적립금을 더욱 늘리겠다는 것은 국고지원 축소 계획을 굳히려는 시도라는 의구심을 제기했다. <관련 기사: 대한민국, 전국민 의료보장 국가 맞긴 맞나?>

이들 단체는 "정부의 계획은 건강보험을 민간보험처럼 금융상품화 하려는 시도로, 자산운영을 해서 재정의 일정 부분을 감당하라는 식의 논리 자체가 천박하다"며 "정부는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지원 축소를 획책하지 말고, 국고지원을 확대해 상병수당 도입과 전면 의료비상한제 도입 등의 보장성 강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특히 건강보험 누적적립금을 다른 용도로 전용할 수 없게끔 관련법에 명시돼 있음에도 대체투차 활성화를 검토하겠다는 것은 반헌법적 행위라고 비난했다.

실제로 현행 국민간강보험법 제38조에는 준비금(누적흑자)은 ‘부족한 보험급여 비용에 충당하거나 지출할 현금이 부족할 때 외에는 사용할 수 없’다고 규정해 놓았다.

이들 단체는 "건강보험 적립금의 전용은 법률로도 금지되어 있음에도 아예 법률까지 어겨가며 이를 투자운용 운운한 것이 황당할 따름"이라며 "이는 법률조차 확인하지 않는 무지의 산물이거나, 법률은 가볍게 어기겠다는 막가파 식 발상으로 보인다. 이번 경우에도 법률을 어겨가며 투자계획을 강행한다면 스스로 반(反)헌법 정부임을 자인하는 꼴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건강보험공단이 나서 7대 사회보험 재정건전화 방안을 거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무상의료 운동본부 등은 "건보공단 이사장은 정부정책에 들러리나 설 게 아니라 비민주적이며 불법적인 기재부의 요구에 제대로 반대 입장을 조속히 밝히는 게 옳다"며 "공단은 전체 가입자의 대변인으로서 건강보험 흑자를 조속히 의료비 인하에 쓰는 계획을 발표하고 기재부의 잘못된 요구에 저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국민건강보험노조도 31일 성명을 내고 건강보험 적립금의 외부위탁운용 활성화 방안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공단노조는 "건강보험 재정이 많이 적립되어 우려된다면 건강보험 적용 확대 및 보장율 강화에 사용해야 한다"며 "그러지 않으려면 차라리 국민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 보험료를 인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기재부가 건강보험 적립금 17조원을 운용수익률 저조 운운 하면서 민간기관에 위탁 운용하겠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며 "건강보험 적립금이 소위 기재부가 말하는 운용(투자) 명목으로 묶이는 순간 건강보험 적용확대나 보장율 향상은 영원히 물건너 간다"고 우려했다.

그동안 정부가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건강보험 국고지원금의 정산도 촉구했다.

노조는 "기재부는 건강보험 적립금에 눈독 들이지 말고 지난 9년간 보험료 예상수입액을 적게 추계해 국고지원금을 과소지원한 12조3,099억원부터 해결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라고 일침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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