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행렬 / 이샘물 지음 / 이담북스 펴냄, 2015년

[라포르시안] SNS가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SNS의 분위기를 몰아가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도 있습니다만, 우리 사회의 현안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아보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최근 들어 SNS에서는 이주민들에 대한 부정적 견해가 늘어가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주민들이 간여된 다양한 사건사고가 늘어나면서 생겨난 불안심리가 작용된 것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활동한 진료봉사동아리가 서울 근교에서 조선족 동포들을 대상으로 주말진료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곳의 거리풍경은 마치 중국에 온 것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그만큼 조선족 동포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조선족 동포 이외에도 동남아 각지에서 다양한 이유로 우리나라를 찾아 생활하고 있는 이주민의 숫자는 2014년 말 기준으로 180만명을 육박하고 있다고 합니다.

숫자가 늘어나다 보니 이주민들 사이에서, 혹은 이주민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사건이 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주민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늘어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소위 3D산업의 일자리를 기피하는 경향이 늘어가면서 산업현장의 요구에 따라서 부족한 인력을 외국으로부터 들여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더불어 노동 강도가 높은 농촌의 총각이 결혼기피 상대로 꼽히면서 이들의 짝을 해외에서 구하게 되면서 우리사회에 이주민들이 급격하게 늘기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주 배타적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어쩌면 이주민 수용정책이 다른 나라에 비하여 엄격하게 적용되어 왔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정책적으로는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단일민족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온 탓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가 단일민족이라는 생각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고민해본 적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한반도에 존재했던 고대국가들의 건국신화를 보면 부족 외의 집단과 통합되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가락국의 건국설화에 등장하는 허황후는 인도계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건국신화는 그렇다고 쳐도 고구려의 강역에는 여진과 말갈이 포함되었으며, 고려 때 원나라의 침입에 이은 영향으로 몽고계의 유입이 있었고, 조선조만 해도 여진족이 귀화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우리 선조들은 외국인에 대하여 그리 배타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국제결혼을 통하여 우리나라로 이주한 사람을 중심으로 한 다문화가정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었고, 이러한 인식은 자연스럽게 국내에서 활동하는 외국인들에 대한 처우개선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필자 역시 이주민정책을 긍정적인 시각에서 바라보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주민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생기고 있는 사건사고의 반작용으로 일고 있는 부정적인 시각을 어떻게 볼 것인가 에도 관심을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즉, 우리 사회의 주요한 관심사로 대두되고 있은 이주민에 대한 인식을 바로 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동아일보의 이샘물 기자가 이주민에 대한 다양한 분야를 정리한 <이주 행렬>은 맞춤한 시기에 나왔다고 하겠습니다. <기자로 말할 것>이라는 책을 통하여 만나본 이샘물 기자는 비롯 입사 5년차 기자이지만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젊은이였습니다. 입사 후 정책 사회부에서 보건복지부와 여성가족부를 출입하며 복지 분야를 담당하면서 이주민과 다문화에 관심을 가졌다고 합니다. 내쳐서 이 분야에 관심을 둔 학자, 공무원, 시민단체 활동가, 언론인 등이 모인 ‘이민·다문화포럼’의 회원으로 참여해 공부하고 토론하며 ‘다문화사회’의 미래를 고민하는 활동파이기도 합니다. <이주 행렬>은 그러한 노력의 결실이라고 하겠습니다.

▲ 서울여자대학교 학생들이 제작한 '이주노동자 인권UCC' 중에서 갈무리.

<이주 행렬>에서는 이주가 발생하는 기전과 나라마다 다른 이주민에 대한 시각 차이가 왜 생기는지 등에 관하여 윤리적, 정치적, 경제적 관점 등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이주민 혹은 이주자의 정의를 살펴보면 UN 통계국에서는 자신의 거주국이 아닌 국가에서 최소한 3개월 이상 머문 사람을 이주자라고 규정하는데, 3개월 이상 1년 미만은 단기 이주자, 1년 이상 머물러 새로운 국가가 주요 거주국이 된 경우에는 장기 이주자라고 규정합니다. 그리고 보니 저 역시 2년 가까이 미국에 머물렀던 적이 있으니 한 때는 장기 이주자였던 것입니다. 이번 기회에 당시 제가 이주자로서 어떤 애환을 겪었는지 되돌아보기도 했습니다.

첫 번째 주제는 ‘이주와 노동’입니다. 모든 선진국들이 공통적으로 취하고 있는 이주민에 대한 국경통제가 과연 타당한 가를 논합니다. 물론 모든 이주민들에게 같은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국가가 필요로 하는 기술을 가진 사람은 비교적 쉽게 이주가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의 경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들어가는 것보다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미국 조지타운대학의 제이슨 브레넌 교수는 ‘가진 것은 없지만 더 많은 기회가 있는 선진국에 가서 열심히 일하며 살기를 원하는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된다’라고 지적합니다. 누구도 출생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기 때문에 우연히 선진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많은 것을 즐기게 된 사람들이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났지만 자신의 인생을 바꾸기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의 앞길을 막는 것은 부도덕한 행태라는 것입니다.

자국 안에도 곤궁한 사람들이 많은데 굳이 외국인까지 배려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주장에 대해서는 미국의 조지메이슨대학의 브라이언 캐플란교수의 설명을 인용합니다. 즉, 선진국의 저소득층은 제3세계의 빈곤층에 비하면 생활수준이 훨씬 높고, 자선단체의 도움을 받을 길도 많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영국 옥스퍼드대 국제이주연구소의 하인드 하스박사는 국제적인 이주경향에 대한 다른 시각을 설명합니다. 맨손인 사람들은 이주를 꿈꿀 수조차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절대적으로 죽을 위기에 처한 사람보다는, 더 발전된 나라를 보고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면서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이주는 택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내국인들이 이주자들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이유는, 일자리를 놓고 이주자와 경쟁을 벌여야 한다는 것과 그럼으로써 임금이 하락되는 이중적인 피해를 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점에 대하여는 일자리 상실이 실제보다 부풀려지고 있다면서 고용할 수 있는 노동자가 많아지면 일자리가 더 많아진다는 역설적인 해명을 내놓습니다. 그리고 이주민은 높은 임금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원주민의 임금을 높일 수 있다고 반박합니다.

두 번째 주제는 ‘이주와 복지’입니다. 이주민의 유입에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유입되는 이주민에게도 복지 서비스가 제공되려면 추가적인 재원이 필요하므로 세금부담이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복지를 제한한다는 것도 적절치 않은 노릇입니다. 따라서 이주자에 대한 복지문제를 잘 설계하지 않는다면 또 다른 사회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할 것입니다. 한편 저자는 이주자 역시 벌어들이는 만큼 세부담을 하고 있다고 반대논리를 내놓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이주민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역사가 일천한 까닭에 제대로 된 이주자정책을 충분히 검토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국제결혼이 늘어나면서 결혼이주자와 그 자녀를 대상으로 한 다문화가정 지원사업이 먼저 시행되었던 것입니다. 결국 이주민들에 대한 지원범위가 일반 국민들이 누리는 복지의 수준을 넘어서는 경우도 있어서 부정적 여론이 조성되었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 EBS 지식채널e '사람들이 왔다' 중에서 갈무리

세 번째 주제는 ‘이주와 국가경쟁력’입니다. 고급 기술을 가진 이주자는 어느 국가에서도 환영을 받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고급 기술을 가진 사람이 빠져나가는 ‘두뇌유출’을 부정적 시각에서 바라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선진국에서 취업의 기회를 얻은 이주자들은 벌어들인 수입의 일부를 가족들을 위하여 고국으로 송금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두뇌유출과 국부의 창출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선진국에서 보다 높은 수준의 기술을 습득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고, 본국의 성장전망이 높아지면 이를 활용하기 위하여 귀국할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습니다. 저출산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하고 있는 우리사회의 경우 이주정책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 될 것이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이주자의 숫자와 출산율 사이의 관계에 대하여 다양한 이론들이 제시되고 있어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용이하지 않은 형편입니다. 사실 젊은 층이 출산을 기피하는 현상을 빠르게 개선하지 않는다면 국가적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경고의 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적정인구를 유지하기 위하여 이주정책 카드를 활용하는 것보다는 국민들의 인식을 개선하는 쪽에 무게를 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네 번째 주제는 ‘이주와 정치’입니다. 이주자가 늘게 되면 자연스럽게 이주민과 원주민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기 마련입니다. 중동의 난민사태에도 불구하고 유럽사회가 이를 외면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주민의 증가에 대한 불안감 때문일 것입니다. 간헐적으로 일어나는 이주민과 원주민 사이의 무력충돌은 물론 이주민들이 정부를 대상으로 다양한 요구를 쏟아냄으로써 갈등을 빚기도 합니다.

이주민에 대한 정책은 때로 국가 사이의 외교문제로 비화되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국가 사이의 긴장관계가 높아지기라도 하면 국가안보 차원에서 이주민 정책이 다루어지기도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나치 독일이 아리안족의 우월성을 지키기 위하여 유대인을 비롯하여 열등인종으로 분류한 흑인, 집시 등은 물론 공산주의자, 장애인, 동성애자 등을 포함하여 600여만 명을 학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미국 역시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미국 내 거주하는 일본계 미국인 12만 명을 12개의 수용소에 격리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미국 정부는 일본이 적국이라는 이유로 이미 미국 시민권을 가졌고, 심지어는 미국에서 태어난 일본인들까지도 격리조치를 취하였다는 것입니다.

문화 측면에서도 이주자가 많아지면 출신국 별로 집단을 이루는 경향이 있습니다.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만날 수 있는 차이나타운이 대표적인 예가 될 것입니다. 강남 서래마을에는 프랑스 사람들이 많이 살고, 이촌동에는 일본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습니다. 이처럼 같은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밀집해서 살게 되면 그 지역에서는 한국 고유의 문화는 사라지는 반면 이국의 문화가 자리를 잡게 될 것을 우려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주민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우리 고유의 문화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이주를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어떠한 문화도 고립된 상태에서는 오히려 퇴보하고 결국은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다른 문화와의 접촉을 통하여 새로운 형태로 발전해나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한반도는 아시아대륙의 끝에 위치하여 대륙의 문명이 모여드는 용광로의 역할을 했습니다. 다양한 문명이 흘러들어 새롭게 해석되고 발전적 형태로 재창조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문화를 인정하고 이주민 고유의 문화를 지킬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이 주거국 문화에 잘 녹아들 수 있도록 통합의 묘를 살리는 정책도 필요할 것입니다.

저자는 이미 다문화사회로 진입한 한국의 미래는 이주민에 대한 바른 정책이 수립되어 실행되는데 달려 있다고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이주민이나 원주민이 동등하게 대우를 받는 그런 사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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