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접종 민간의료기관 위탁 첫 시행…백신 수요예측·분배 실패

[라포르시안] #. 서울 신림동의 H종합병원은 요즘 독감백신 무료접종을 받기 위해 찾아오는 노인들로 며칠째 북새통이다. 독감백신 접종을 위해 방문하는 노인만 하루 200~300명에 달하면서 접수창구부터 진료실 앞 공간이 접종 대기자로 계속 붐빈다.

여기만 이런 게 아니다.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한 독감백신 무료예방접종이 시작된 지난 1일부터 많은 의료기관에서 비슷한 풍경이 펼쳐진다.

작년까지 보건소에서만 실시하던 노인 독감백신 무료접종이 올해부터 위탁사업에 참여하는 민간 의료기관으로 확대됐기 때문이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노인 독감백신 무료접종이 시작된 지 12일 만에 접종자 수가 무려 393만명(10월 12일 오후 8시 기준)에 달한다.

접종자 수는 10월 1일 69만명, 2일 89만명에서 휴일이었던 3~4일 이틀간 7만명, 그리고 5일 71만명 등으로 초기 며칠 동안 하루 평균 70~80만명이 접종을 받았다.

이 같은 접종률은 질병관리본부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보건당국은 2015-16절기 접종목표 인원을 502만명으로 정했다가 높은 접종률을 감안해 538만명으로 조정했다. 

독감백신 접종률이 예상치를 훨씬 뛰어넘자 일부 의료기관은 공급된 백신물량이 일찍 소진돼 접종을 하러 온 노인들이 발길을 돌리는 일도 많았다.

예방접종 도우미(nip.cdc.go.kr) 사이트를 통해 확인한 결과, 서울 도봉구의 경우 독감백신 무료접종에 참여하는 위탁 의료기관 중에서 14일 현재 백신 보유량이 10개 미만인 곳부터 200~300개 이상 보유한 곳까지 크게 차이가 났다.

다른 지역에서도 의료기관별로 백신 보유량 편차가 컸다.

이렇다 보니 내원했다가 접종도 받지 못한 채 발길을 돌리면서 의료기관에 불만을 제기하는 일도 심심찮게 빚어지고 있다.

▲ 표 출처: 질병관리본부 예방접종도우미 사이트 화면 갈무리

개원가에서는 질병관리본부에 독감백신 공급을 요청해도 제대로 수급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불만이 잇따르고 있다.

여기에 독감백신 확보 물량이 소진되면 무료접종을 받지 못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는 노인들이 서둘러 보건소나 병원을 찾으면서 백신 품귀 현상을 부추겼다.

이런 문제는 질병관리본부가 독감백신 수요예측에 실패했고, 접종자 급증에 따른 적절한 분배 시스템을 마련하지 못한 채 무료접종 기관만 확대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지난 여름 메르스 사태로 경영손실을 입은 의료기관들이 독감백신 접종으로 조금이나마 수익을 회복하려고 적극 나서면서 백신 분배 문제를 야기한 것으로 파악된다.

인하대 의학전문대학원 황승식 교수(예방의학교실)는 "기본적으로 질병관리본부에서 독감백신 수요예측에 실패한 것이 지금과 같은 상황을 초래한 것 같다"며 "민간의료기관으로 무료접종을 확대하면서 접종목표치를 높였으며 그에 따른 보다 정확한 수요예측과 분배기전을 마련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000명 접종완료" 실적 강조하는 보건당국 더 우려스러운 건 짧은 기간에 접종자가 몰리면서 예방접종시 지켜야 할 예진 절차나 사후관찰 등이 부실하게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작년까지 보건소에서만 실시한 노인 독감백신 무료접종이 지방자치단체의 '접종실적 채우기'로 둔갑해 하루에 공중보건의사 1~2명이 1천명에 가까운 인원을 접종하는 상황이 전개됐다.

그 과정에서 예진과 사후관찰 등이 제대로 이뤄질리 없었다. 접종대상에서 제외해야 할 사람이 접종을 받거나 접종 후 이상반응 발생시 제대로 대처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높았다.

민간 의료기관으로 노인 독감백신 무료접종을 확대했지만 보건당국의 안이한 수요예측, 제한된 백신물량 탓에 선착순식 접종 경쟁이 펼쳐지면서 상황이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병관리본부는 단기간에 높은 접종률을 달성했다는 데 방점을 찍는 것 같다. 관련 보도자료를 통해 '노인 인플루엔자접종 12일차 전국 393만명 접종완료' 등의 접종 실적을 강조했다.  

황승식 교수는 "독감백신 접종 전에 예진과 접종후 이상반응이 나타나는 지 사후관찰을 해야 한다. 한꺼번에 접종자가 몰려 그런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을 경우 백신 부작용 우려를 키우고 백신접종 거부의 명분을 줄 수도 있다"며 "보건당국과 지역의사회 차원에서 백신접종 시기를 분산시키거나 보다 효율적으로 분배할 수 있는 방식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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