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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단두대 앞에 세운 건 국민 건강과 안전
  • 김상기 편집국 부국장
  • 승인 2014.12.30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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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포르시안]  마침내 '규제 기요틴(guillotine,·단두대)'이 시퍼렇게 날을 세웠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열린 국무회의에서 "규제의 존재 이유를 명확하게 소명하지 못하면 일괄 폐지하는 규제 기요틴을 확대해 규제혁명을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 단두대에 올려 놓고 단칼에 숨을 끊듯 불필요한 규제를 혁파하겠다는 살벌한 의지를 드러냈다. 정부는 한 달 만에 규제 단두대에 올릴 114건의 과제를 가려냈다.

규제 단두대에 올릴 과제 중에는 보건의료와 관련된 내용이 적지 않다. 정부의 규제 개혁 정책이 서비스산업 활성화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보건의료 분야와 관련해 단두대에 오르는 주요 과제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조속 제정 ▲메디텔의 설립기준 및 부대시설 제한 완화 ▲경자구역내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설립요건 규제 완화 ▲의사-환자간 원격진료 규제 개선 ▲디지털 헬스기기 등 융합신제품에 대한 선제적 인증제도 개선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 및 보험적용 확대 ▲의료기관 진료기록 관리‧보관의 편의성 제고 등이다.

이 사안들이 과연 단두대에 올려놓고 처단해야 할 만큼 관련 분야에 해를 끼쳤는지, 혹은 제도개선의 시급성을 요하는지 모르겠다. 기업의 이익이 최우선인 경제단체 관점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보건의료 분야에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의료서비스 수요자인 국민 입장에서는 전혀 다르다. 규제개혁 과제가 실현됐을 경우 과연 어떤 혜택을 누릴 것인가 예측하기 힘들다. 혜택은 고사하고 해를 입지 않을까 걱정만 앞선다. 하나하나 따져보자.

정부가 조속히 제정하겠다고 밝힌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기획재정부 산하에 '서비스산업선진화위원회'를 설치하는 게 골자다. 이 위원회를 통해 교육과 의료 등 서비스산업의 전반적인 정책을 심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기재부 장관이 위원장이 되는 서비스산업선진화위에 사실상 전권을 부여해 규제완화 정책을 원스톱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된다. 가뜩이나 시장과 기업 프렌들리한 기재부 아닌가. 그래서 이 법은 '민영화 법안'으로 불린다. 오히려 국회에 제출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제정안을 단두대에 올려 놓고 '처단'하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닐까 싶다.

메디텔의 설립기준 및 부대시설 제한 완화 과제도 우려를 낳고 있다. 이 과제의 핵심 내용은 외국인 환자를 위한 의료·숙박시설인 메디텔(의료관광호텔) 설립기준을 해외환자 유치실적 연간 1,000명 이상에서 500명으로 완화하고, 부대시설 중 PC방 등 유해하지 않은 일부시설을 허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해외환자 유치는 뒷전이고 국내 환자를 유치하기 위한 용도의 숙박시설이 전국 곳곳에 설치될 우려가 높다. 병원들의 새로운 병상확충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높고 의료법인의 영리자회사가 돈벌이 부대사업을 더 적극적으로 할 수 있게끔 길을 터주자는 의도가 뻔히 보인다.

경제자유구역내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외국영리병원) 설립요건 규제 완화도 우려스럽긴 마찬가지다. 이 과제는 사실상 경자구역 내에 내국인을 대상으로 한 영리병원을 허용하는 방안이다. 규제 완화 내용을 보면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다. 경자구역에 설립되는 외국영리병원의 설립 요건에서 외국의사 면허소지자 비율 10% 이상 기준을 폐지하고, 병원장을 외국의사 면허소지자로 임명하는 규제도 없애겠다고 한다. 병원내 진료관련 의사결정기구의 50% 이상을 외국의사로 구성해야 하는 기준도 '외국의사 1명 이상 포함'으로 낮추자고 한다.  이렇게 되면 이름만 외국영리병원이고 실제로는 내국인을 상대로 한 국내 영리병원과 다를 바 없다.  

의사-환자간 원격진료 규제 개선은 보건복지부가 지난 10월부터 비밀리에 시행하고 있는 시범사업(참여 의료기관과 환자 등을 철저하게 비공개로 하기 때문에) 결과를 근거로 국회에 제출된 의료법 개정안의 통과를 밀어붙이겠다는 거다. 의사-환자간 원격의료는 안전성과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관련법 개정안부터 먼저 제출됐다. 그리고 뒤늦게 시범사업을 실시한 후 안전성과 효과를 확인한 후 이를 법개정에 반영하겠다는 식이다. 비상식적인 방법으로 입법이 추진되고 있다. 원격진료 활성화를 통해 의료취약 계층의 의료이용 접근성을 높인다는 것이 정부의 명분이다. 그러면서 의약품의 원격조제 및 택배 배송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모순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 정책의 목표가 의료취약층이 아니라 u-헬스케어 관련 기업과 산업 활성화에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특히 의료기관 진료기록 관리·보관의 편의성 제고 과제는 황당할 정도다. 의료기관 내에서만 보관할 수 있는 환자 의료정보를 IDC(인터넷데이터센터) 같은 곳에 보관할 수 있도록 하고, 진료정보 공유를 허용하자는 취지다. 벌써부터 진료정보 해킹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개별 의료기관에 분산 보관되고 있는 진료정보가 IDC 등을 통해 통합 관리되다가 해킹으로 유출될 경우 발생할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 사안에 대해 복지부도 지난 5월 부처의견을 통해 "의료정보가 IDC를 통해 통관관리·저장되는 경우 개인정보의 대량 유출 위험성이 높고, 개별 의료기관의 정보가 유출될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제 개선 과제에 포함됐다는 것이 놀랍다.

한의사에게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하는 방안도 섣불리 추진할 게 아니다. 정부는 의료기기별로 유권해석을 통해 한의사가 사용할 수 있는 진단·검사기기를 명확하게 규정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학문적 기초가 서로 다른 한의학과 현대의학의 이원화 체계를 방치하고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하겠다는 것은 의료계와 한의계간 극단적인 갈등만 초래할 뿐이다. 이 정책을 추진할 경우 의약분업에 버금가는 갈등과 혼란이 야기될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기업의 이익 증대가 최우선 목표인 경제단체 건의로 이러한 규제개선이 추진된다는 점이다. 정부가 이번에 규제개선 과제로 꼽은 114건은 대한상공회의소·전국경제인연합회 등 8개 경제단체가 지난달 건의한 153건 중에서 가려낸 거다. 메디텔 설립기준을 낮추고, 원격진료를 허용하고, 진료정보를 의료기관 밖에다 보관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자고 경제단체들이 건의했고, 정부가 이를 받아들였다. 규제개혁의 최종 수혜자가 누가 될지 명확해진다. 결국 단두대에 올려지는 건 불필요한 규제가 아니라 국민의 건강과 안전이다. 정말로 이런 규제개혁을 추진할 건가 묻고 싶다. 그 이후 상황은 돌이킬 수 없다. 국민 건강과 안전을 내팽개치고 루비콘 강을 건너겠다고 작정한 모양이다. 그러니,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김상기 편집국 부국장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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