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서울대병원 의생명연구원에서는 상당히 의미심장한 심포지엄이 열렸다.

 

서울대병원 대외정책실이 주최한 이날 심포지엄의 주제는 ‘한국의 의료, 과연 적정한가?’였다. 심포지엄은 '적정의료의 개념과 이론', 그리고 '실제 임상 현장에서 본 적정의료' 등 2개의 세션으로 나눠 진행됐다.

 

이날 심포지엄이 남다르게 받아들여진 것은 서울대병원의 의료진들이 직접 발표자로 참석해 임상 현장에서 행해지는 과잉진료와 과소진료에 따른 문제점을 상당히 솔직하게 고백했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심포지엄에 앞서 정희원 서울대병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이 자리를 통해 적정진료의 개념이 정리되고 과잉진료 혹은 과소진료가 존재한다면 그 원인을 찾고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되기를 기대한다”며 “의료계에서는 조금 불편한 논의가 될 수도 있겠지만 의료의 질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고 새로운 의료기술이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제는 충분히 논의할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이날 심포지엄의 주제가 가볍지 않음을 예고했다.

 

'불편한 논의'란 말처럼 이날 심포지엄에서 연자로 참석한 서울대병원 의료진들은 듣기에 따라 의료계 내부적으로 논란을 불러올 수 있는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일부 발표자는 자신의 수술사례와 진료비를 직접 인용하며 다른 의료진과 비교할 때 어느 항목에서 어떻게 비용 차이가 발생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할 정도였다.

서울대병원 대장항문외과 박규주 교수는 ‘실제 임상현장에서 본 적정의료 : 이상과 현실’이란 주제로 진행된 두 번째 세션의 첫번째 발표자로 나서 로봇수술이 무분별하게 남발되고 있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박 교수는 “대장암의 경우 복강경 수술이나 로봇수술이 기존의 개복수술에 비해 치료결과가 더 낫다는 근거가 없음에도 일반인에게 표준화된 술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며 ”국내 의료기관에 이미 로봇수술 장비가 총 36대가 도입됐으며, 이를 이용해 연간 6,000여건의 로봇수술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로봇수술이 기존 수술법과 임상적 효과는 비슷하지만 우월한 잇점이 있다고는 판단할 수 없다”며 “일부 불필요한 상황에서도 로봇수술을 시행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로봇수술에 대해 논쟁의 여지가 있음을 언급했다.

 

게다가 주제발표 자료에 ‘로봇수술이 아직은 환자보다 의사 편의를 위한 것’이라는 일간지 기사를 인용하며 공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의료진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과 과잉진료 문제가 무관치 않다는 발언도 등장했다.

‘영상의학검사와 적정 진료’를 주제로 발표한 서울대병원 영상의학과 이활 교수는 "영상의학검사를 많이 낸 의사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병원도 있다“고 말했다.이 교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인용해 “우리나라의 컴퓨터단층촬영(CT) 건수가 2003년부터 2007년 사이에 거의 2배 이상 증가했다”며 “CT나 자기공명영상(MRI)을 많이 찍을수록 그만큼 수가를 받기 때문에 검사 건수를 늘리려는 욕구가 생기게 마련"이라고 말해 영상검사가 남발되고 있는 현실을 지적했다.

 

항생제 오남용 문제도 제기됐다.

 

서울대병원 내과 김남중 교수는 항생제 사용에 있어서 과소진료와 광잉진료의 사례를 들며 “예방적 목적의 항생제 투여일수를 줄여도 수술창상감염의 발생률에 차이가 없다”며 “항생제 과잉처방은 의료비 상승과 부작용을 증가시키고 다제 내성균을 증가시키는 문제가 있다”고 언급했다.

 

적정하지 않은 항생제 사용의 이유로 일선 의료진들의 적정항생제 사용에 대한 지식 부족과 의료진들이 감염병 발생에 대한 의료분쟁 등을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심장질환 분야에서 고가의 심장 영상검사가 남발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서울대병원 내과 김용진 교수는 ‘적정의료 심장질환의 진단’이란 주제발표를 통해 고가의 심장 영상검사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검사의 진단 정확도나 임상적 유용성을 평가하기 위한 다기관 연구과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정확도 100%의 검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하며 심장 영상검사의 정확도와 올바른 사용에 대한 전향적 비용-효과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주제발표 이후 진행된 패널토론에서도 각종 진단법의 임상적 유용성에 대한 연구가 시급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이상무 위원은 “진단법 검사에 대한 임상적 유용성에 대해 양질의 임상연구가 시급하다”며 “진단법의 합리적인 사용을 위해서는 의학적인 것 외에도 사회적, 법적인 합의와 관리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5시간 가까이 진행된 이날 심포지엄에서 제기된 내용들은 임상현장에서 광범위하게 행해지고 있는 과잉진료와 과소진료에 대한 의사사회 내부의  솔직한 '독백'이란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하지만 좀 더 근본적으로 접근하면 의료계의 오랜 화두인 ‘적정수가, 적정진료, 적정부담’의 문제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 의료계가 주장하는 것처럼 저수가를 기저에 깔고 행위별 수가제를 근간으로 한 건강보험제도가 초래한 왜곡된 의료시스템이 ‘박리다매’식의 의료서비스를 양산하고 있다는 오래된 레토릭(rhetoric)의 일부분임을 이날 심포지엄 현장을 지켜본 대부분의 참석자들도 느꼈으리라 여겨진다.결론적으로 이날 심포지엄은 의료계와 정부, 의료소비자들을 향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 셈이다.  "한국에서 적정의료란 과연 무엇인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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