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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코드 블루’인데 아무도 달려오질 않는다
  • 김상기 편집부국장
  • 승인 2014.11.12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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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포르시안] 가수 신해철씨가 서울의 한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사망한 사건을 놓고 억측과 해석이 무성하다. 그가 유명 연예인이었기에 대중의 높은 관심과 호들갑스러울 만큼 요란한 언론의 반응도 이해가 된다. 다만 대중과 언론의 모든 관심이 그가 죽음에 이른 원인과 수술한 병원의 과실 여부에 집중돼 있다는 점은 아쉽다.

이 시점에서 조금 다른 이야기를 꺼낼까 한다. 신해철씨가 살아생전에 자신의 건강과 생명을 맡겼던 이 나라 의료시스템에 관한 이야기다. 경찰 조사와 언론보도를 통해 확인된 바로는 S병원에 가기 전 집에서 가까운 대학병원 응급실을 먼저 방문했다고 한다. 그 곳에서 검사까지 받았다. 하지만 대기환자가 많아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되자 결국 S병원으로 갔다는 것이다.

만일 그가 먼저 찾아간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수술을 받았다면 살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드러내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부질없는 생각이다. 신해철씨는 자신에게 찾아온 고통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해소하고 싶었고(누구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S병원을 선택했다. 운명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운명으로 치부하기에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가 처음 찾아갔던 대학병원 응급실이 그렇게 수많은 대기환자로 넘쳐나는 상황에 대해서. 우리나라 대학병원 응급실은 늘 그렇게 환자들로 붐빈다. 밤낮이 없다. 주말에는 더 심하다.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에 따르면 2012년 한 해 동안 전국 593개 응급의료기관 및 기타 응급실을 이용한 전체 이용자 수는 총 1,024만명에 달한다.

문제는 응급실을 찾는 환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비응급환자란 점이다. 대한응급의학회 등은 응급실 내원 환자 중 비응급환자 비율이 70~80%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실제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응급실 내원 환자 중 응급증상이 아닌 사례로 방문해 병원에 지급한 응급의료관리료가 연간 1,3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그만큼 비응급증상임에도 응급실을 찾는 사람이 많다는 반증이다.

응급증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왜 응급실을 찾는가. 비응급 환자들이 응급실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야간이나 휴일에 몸이 아플 때 응급실 외에 이용할 수 있는 의료기관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또 일부 환자들은 응급실을 찾으면 빨리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비응급 환자로 붐비는 탓에 응급실이 제 역할을 못한다.

신해철씨의 경우 대학병원의 검사 소견(마비성 장폐색)과 정황으로 볼 때 응급의료법상 규정한 외과적 응급증상(혹은 응급증상에 준하는)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 찾아간 대학병원 응급실이 그렇게 붐비지만 않았더라면 검사를 받고 좀 더 빨리 수술을 받을 수도 있었다. 그러면 상황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그가 찾아간 곳은 환자가 많은 대학병원이고, 게다가 응급실이었다. 그곳은 그의 고통을 덜어 줄 수 있는 가장 적절한 공간이면서 또한 지금의 의료환경에서는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공간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지금 대한민국 의료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전달체계는 난마처럼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다. 의료인과 병원, 의료장비 등의 의료자원 배치는 엉망진창이다. 의료체계가 시스템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의료기관부터 의료인력, 의료장비 등의 의료자원이 환자를 중심에 놓고 상호 보완하면서 유기적으로 작동하지 못한다. 모래알처럼 제각각, '각자도생(各自圖生)'에 매진한다.

이러니 의료정보가 부족한 환자들은 아프면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른다. 인터넷을 검색하고, 지인에게 물어본다. 급하면 대학병원 응급실로 달려간다. 응급실은 늘 붐빈다. 신해철씨도 그곳에 있었다. 응급실마냥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환자 쏠림이 너무 심하다. KTX를 타고 수도권 대형병원을 찾는 환자가 연간 수백만명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수도권 의료기관을 이용한 지방 환자는 270만명이다. 이들이 수도권 병원에서 지불한 진료비만 2조5,000억원에 달한다.

수도권 일부 대형병원 쏠림 현상은 심각한 지경이다. 수천 병상을 운영하는 '빅5' 병원은 하루 평균 외래환자가 1만명에 육박한다. 암과 같은 중증질환부터 감기를 앓는 환자까지 모두 큰 병원만 찾는다. 이러고도 부족한지 여기저기 병원을 새로 짓고, 건물을 증축해 병상을 늘린다. 그렇게 커진 병원을 또 환자로 채우기 위해 난리다. 대학병원장은 교수들에게 학회 참석보다 진료가 더 중요하다는 신호를 보낸다. 병원이 커진만큼 부족한 의료인력을 메우기 위해 전공의들을 쉴 새 없이 부린다. 참다못한 전공의들이 반발한다. 수련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을 하고, 집단사표를 내겠다고 압박한다. 

대형병원들의 몸집 불리기에 1차-2차-3차 의료기관으로 이어지는 의료전달체계는 사라졌다. 의료전달체계의 중간 역할을 해야 할 중소병원과 종합병원은 오래 전에 허리가 꺾였다. 대형병원에 환자를 뺏긴 동네의원은 성형수술이나 피부미용, 비만 같은 비급여 진료로 자꾸 내몰린다. 지방 병원들도 난리다.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환자가 빠져나가고, 수입은 줄고, 의사와 간호사 구하기는 힘들고, 그러다보니 또 환자가 줄고 수입은 줄어드는 악순환 구조에 빠졌다. 산부인과 분만실과 흉부외과 수술실, 응급실 뿐만 아니라 요즘은 내과와 소아청소년과 입원병상 운영조차 힘들다고 한다. 지역 의료체계에서 필수의료가 다 무너지고 있다.

우리나라 의료시스템 전체가 위독한 상태다. 벌써 오래 전부터 '코드 블루(Code Blue)'를 외치고 있는데 누구 하나 달려오질 않는다. 대형병원 몇 개가 무너져야 위기를 인식할 것이란 말도 나온다. 중소병원이 사라지고, 의료전달체계의 게이트키퍼 역할을 해야 할 동네의원이 사라지고 성형과 피부미용, 비만처럼 돈되는 의료행위에만 혈안이 된 의원만 남게될 지 모른다. 공룡처럼 커진 대형병원과 성형수술과 피부미용을 하는 병의원이 몰린 '강남 3구'는 한국의료의 미래를 보여주는 축소판이다. 더 두고 보기 힘들다. 이제는 복도와 계단을 다급하게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려야 한다. 

김상기 편집부국장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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