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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미의 라뽀&르뽀] 노동건강권 운동에 뛰어든 산업의학전문의
지난 9월 29일 오후,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한노보연)를 방문했다. 직업환경의학(산업의학) 전문의로 7년째 연구소의 상근활동가로 근무하고 있는 공유정옥님을 만나기 위해서이다. 구로역 근방의 낡은 건물 꼭대기에 자리한 연구소는 90년대 초반 운동단체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공유정옥은 삼성반도체노동자 백혈병 문제를 공론화시킨 단체 ‘반올림’과 함께 한 활동을 공로로 인정받아 작년 11월에 공중보건 학회(APHA)에서 수여하는 산업안전보건상 국제부문의 수상자가 되는 영광을 얻기도 하였다. 그러나 공유정옥은 한사코 공을 ‘반올림’에 돌렸다. 이번 인터뷰 역시 공유정옥 개인에 관심의 초점이 맞추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직 끝나지 않은 반도체노동자 산재인정 문제를 조금이라도 더 알리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하였다. 그러나 그 지난한 싸움에 대한 이야기를 제대로 전해 듣기 위해서라도 공유정옥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는 수순은 불가피하다.  

황진미(이하 황) : 고대의대 94학번이라고 들었다. 예과 때 상계동 진료소 활동을 하면서 철거민 싸움을 목격하였고, 학생회 활동을 열심히 하면서 민의련을 만난 것으로 알고 있다. 학생운동도 다 몰락한 94년도에 입학한 의대생이 운동의 길을 가는 건 드문 일이지 않았나.

공유정옥(이하 공) : 아니다. 언제나 싸움은 있어왔고, 그때 의대에도 다양한 운동의 흐름들이 남아있었다. 10대를 정신적으로 암울하게 보낸 나로서는 그때가 세상을 접한 첫 시기였고.

 

황 : 원자력병원 인턴을 거쳐 서울대 보건대학원에서 산업의학 전공의 생활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진로를 선택한 이유는?

 

공 : 일단 모교에 남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고, 원자력병원은 인턴 근무순서와 당직을 인턴들끼리 자율적으로 짜는 병원이라 선택했다. 외과에 학문적으로 끌렸지만, 폐쇄적인 종합병원 생활을 하면서 내가 믿는 가치들을 지킬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산업의학은 굉장히 다양하고 종합적인 분야를 포괄하는 학문이라 끌렸다. 서울대 보건대학원은 의사가 아닌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점이 좋았고, 제대로 대학원 공부를 시켜 논문을 쓰게 한다는 점이 좋았다.

 

황 : 2000년 전공의 파업 때는 인턴이었을 텐데 그때는 어땠나?

 

공 : 일단 1, 2차 파업의 취지를 공감할 수 없었기 때문에 파업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며, 만장일치로 찬성이라는 파업지도부의 발표에 항의하였다. 26명 인턴 중에 2명, 나중에는 3명이 반대해 병원에 남았다. 같이 남은 사람도 나랑 친한 고대 선배였다. 원자력 병원엔 죄다 암환자라서, 산더미 같은 마약처방전을 쓰느라 팔이 빠질 뻔 했다(웃음). 좋은 점도 있었다. 외과 수술 어시스트하면서 손맛을 느꼈달까.

 

황 : 2002년 근골격계 직업병 공동연구단이 꾸려지고, 그것이 전신이 되어 2003년에 이 연구소가 출범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 과정에 처음부터 주도적으로 참여한 것인가?

공 : 아니다. 나는 선배들이 만든 판에 묻어가는 식이었다. 2002년 당시 공동연구단이 <노동강도 강화와 근골격계 직업적 대응>이라는 책을 출간했는데, 굉장히 중요한 성과를 담고 있다. 나는 2005년도에 산업의학 전문의가 된 뒤, 자연스럽게 이 연구소의 상근활동가가 되어 현대자동차 노조 의뢰로 노동강도 평가사업을 실시했는데, 그곳도 2002년도 공동연구단 활동의 성과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황 : 두 연구의 성과는 무엇이었나?

 

공 : IMF 외환위기 이후, 노동자들이 구조조정을 당하면서 셋이 하던 일을 둘이 하는 식으로 노동 강도가 높아졌는데도 고용불안감 때문에 그걸 다 받아들이는 과정과 결과를 확인했다. 비정규직도 허용하게 되고. 노동자들이 일상을 조직하는 현장의 권력을 다 내준 상태에서, 자신이 하는 작업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르면서 한마디로 골병이 드는 지도 모르고, 그걸 다 받아들인 것이다. 우리가 조사한 것은 어떻게 노동 강도가 강화되어 왔는지 노동자 설문조사와 면접조사를 했다. 노동자들은 80%가 근골격계질환이 있을 정도로 과중한 노동을 하고, 휴일에는 잠을 자거나 TV를 보는 게 전부였다. 전체 삶이 다 노동에 매여 있었다. “사는 낙이 뭡니까?” 이런 질문을 받으면 눈물을 비치는 노동자도 있었다. 정규직 노동자니 노동 귀족이라고? 무슨 귀족이 쉬는 날 잠만 자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노동밀도를 낮추고, 휴식시간을 늘려야 하는데, 외환위기 당시의 정리해고나 무급휴직 등의 집단적 기억이 그런 것을 지향하지 못하게 막았다.

 

잠깐 쉬었다가 본격적으로 반도체 노동자의 산재인정 싸움에 관해 물어보았다.

 

황 : 삼성반도체 문제가 불거진 것은 2007년으로 알고 있다. 얼마 전 고(古)황유미씨가 산재로 인정을 받았다고 들었는데 그러면 문제가 일단락 된 것인가?

 

▲ 공유정옥(노동운동가, 산업의학 전문의)

공 : 2007년 3월에 황유미씨가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그전에 유미씨 아버님이 <말>지와 인터뷰했던 것이 4월호에 실리면서 산재 가능성이 알려졌다. 6월에 산재신청을 접수하였고 대책위 준비모임이 9, 10월 경 꾸려졌는데, 우리 연구소는 준비모임부터 결합하였다. 11월에 대책위인 ‘반올림’이 정식으로 발족하였다. 그때까지 알려진 사망자는 황유미씨와 같은 라인에 근무하던 이숙영씨 2명뿐이었지만, 유미씨 아버님이 딸과 같이 근무했던 친구들로부터 건네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6~8명이 더 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하지만 피해자들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회사 측의 회유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아예 전화를 안 받는 식이었다. 대책위는 계속 사안을 알리면서 ‘제보해주십시오’라는 문구를 덧붙였다. 초기 요구는 노동부의 진상조사였다. 그 결과, 2008년 초에 노동부가 건강실태 일제조사에 착수하였다. 

 

황 : 그럼 성과가 있었나?

 

공 : 그런데 그 실태조사라는 것이 13개 반도체 업체를 찾아가서 화학물질을 뭘 쓰는지, 백혈병환자가 있는지, 질문지를 돌린 것이 전부였다. 화학물질을 뭘 쓰는지 결과라도 알고 싶었지만, 영업비밀이라면서 알려주지 않았다. 비공개의 법적근거로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관한 법률’을 들었다. 그런데 법조항을 보면 정보공개가 원칙이나 ‘개인이나 법인의 정당한 이익이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의 경우에 공개하지 아니할 수 있다’고 되어 있고, 그 항의 예외조항으로 ‘사업 활동에 의해 발생하는 위해로부터 사람의 생명, 신체 또는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공개할 필요가 있는 정보’는 제외된다고 나와 있다. 즉 법률상으로도 공개되는 게 맞다. 그런데도 정부는 무조건 법률에 의거해 공개할 수 없다고 버텼다. 그래서 13개 사업장에서 쓰는 화학물질을 사업장 구분 없이 통틀어서 이름만 나열해 공개하라고 해도 그것조차 공개하지 않았다. 또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산하 연구원(산보연)에서 두 가지 역학조사를 실시하였는데, 1년 동안의 림프조혈모세포 발병률을 일반인구군과 비교하는 단면조사와 10년 동안 발병률을 보는 코호트조사에 착수했다. 그것과 별개로 근로복지공단 의뢰로 산보연이 산재 신청을 한 노동자 각각에 대해 개별역학조사를 실시한 것도 있다. 이 중에서 결과가 발표된 것은 산보연의 1년짜리 역학조사 뿐이다. 그것도 50페이지짜리 요약본과 보도 자료만 공개했는데, 결과는 비호지킨 림프종의 발병률은 높고, 백혈병의 발병률은 약간 높지만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다는 애매한 결론이었다.

(이 결과에 대해 ‘반올림’은 즉각 반박성명을 냈는데, 발병률이 높은 라인으로 범위를 좁혀 파악하지 않고 전체 반도체종사노동자를 분모로 발병률을 비교하였기 때문에 연관성이 희석되어 보인다는 점과, 이들이 원래 일반 인구군에 비해 건강상태가 높은 젊은 노동자군이었다는 점, 그리고 비호지킨 림프종과 백혈병은 궁극적으로 동질 질환이라는 점이 간과된 결과이며, 백혈병과의 관계가 마치 없다는 듯 애매하게 결론 맺은 것은 통계장난,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논평하였다.)

 

황 : 예전에 미국 실리콘벨리에서 IBM사에 근무하던 반도체노동자 250명이 소송을 한 적이 있다고 하던데?

 

공 : 맞다. 2000년대 초반 미국의 소송은 회사 측이 발암물질인 줄 알면서도 썼다는 것에 대한 소송이었는데 결국 졌다. 250명의 노동자들에게 산재라는 말은 하지 않은 채, 한명씩 개별합의서를 쓰고 개인적으로 보상하며 끝냈다. 미국은 노조가입률이 0%이다. 노동자들이 거대 자본과 맞서 싸울 조직된 힘이 없다. 이후 공장은 문 닫고 제3세계로 옮겼다.

 

황 : 6월23일에 황유미씨 아버님이 승소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그럼 산재로 인정을 받고 승리한 것 아닌가?

 

공 : 반도체공장과 백혈병의 관계가 알려지면서 수백 명의 익명의 제보자가 있었다. 그중 확실한 6명에 대해 산재신청을 했다가, 한명은 회사가 합의를 봐서 빠지고, 5명이 소송을 진행하였다. 그중 황유미씨와 이숙영씨 두건만 승소하고, 셋은 패소했으니, 부분적인 승리이다. 산재보험을 관장하는 근로복지공단이 산재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하여 승소했으니, 국가기관으로부터 공식적인 인정을 받은 셈이다. 그런데 이정도 승리도 세계최초라고 한다. 전자산업은 국내에만 있는 게 아니다. 대만, 홍콩,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에서도 똑같은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지만, 연관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국제연대가 절실한 상황이다. 이번 승소소식이 알려지자, 전 세계에서 축하메시지를 많이 받았다. 국제 활동가들이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소식’이라며, 판결문을 보내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황 : 그런데 근로복지 공단이 항소를 했다고 들었다.

 

공 : 항소기한을 앞두고 7월 5일에 유족들이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에게 항소하지 말 것을 요구하기 위해 면담을 요청했지만, 만나주지 않자 그 자리에 주저앉아 농성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근로복지공단이 열린 마음으로 검토하고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말하면서, 혹시 항소를 하게 되면 알려주겠다고 답해 농성을 풀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공단은 이미 7월 4일에 항소이유서를 검찰에 제출한 상태였다. 또 공단이 소송에 피고 측 보조참관인으로 삼성을 참여시키도록 한 사실이 2010년 국정감사에서 이미경 의원에 의해 드러났다. 공단은 뒤늦게 올 7월에 삼성을 찾아가서 '행정소송에서 빠져 달라'고 부탁했지만, 삼성이 이를 거부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황유미씨 아버지는 1,600일을 싸워서 승리를 얻은 것이다. 항소를 하게 되면 또 얼마나 시간을 끌지 알 수 없다. 노동자들의 복지서비스를 위한 기관인 근로복지공단이 피해자를 구제하긴커녕, 가뜩이나 힘든 당사자의 삶을 무참히 짓밟고 있다.

 

황 : 반도체니, 삼성이니 하면 고도의 첨단기술 산업이라고 생각했지, 치명적인 산재를 집단적으로 발생시키는 후진적 산업인줄 누가 알았나.

 

공 : 전자산업은 자본집약적 산업이자, 기술집약적 산업이다. 그런데 간과되는 것이 노동집약 산업이자 화학물질집약 산업이라는 점이다. 서울대에서 조사한 보고서를 보면, 라인 한 곳에서 무려 99종의 화합물질이 사용된다. 전 세계 공장의 상황이 똑같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방소도시 출신의 여성노동자들이 발암성이 입증 안 된 수작업 공정에 투입된다. 이들은 공장과 기숙사를 오가며 생활하고, 가족에게 생활비를 부친다. 이들은 원래 젊고 건강하기 때문에 일을 하다 생리가 끊기고 피부가 뒤집어져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계속 일한다. 정규직이라는 자부심과 돈 때문이다. 이들이 같은 라인에 근무한지 몇 년 만에 백혈병이 발생했는데, 모든 정보를 쥐고 있는 쪽에서 환자에게 발암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산재가 아니라고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공정에 발암성이 없다는 입증책임을 기업, 정부, 전문가가 져야 한다.

 

황 : 앞으로 이 싸움을 어떻게 전개할 것인지?

 

▲ 서울 구로역 근처 주택가 옥탑방에 위치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사무실.

공 : 공단이 항소한 것에 대해 다음 주에 노동부 장관에게 항의서한을 전달할 예정이고, 11월에는 국제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반도체 산업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이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에 무관심하다. 나는 <생활의 달인>이라는 TV프로그램을 가장 싫어한다. 노동 강도를 높이는 것에 대한 경각심이 없다. 노동조합도 없는 사업장의 실태는 정말 가관이다. 매년 맨홀 인부의 질식사가 일어나지만 그때마다 새삼스럽게 뉴스에 나오고, 배달노동자는 시간과의 싸움 때문에 사고로 죽어간다. ‘이윤보다 생명이다’라는 슬로건이 절실하다.

 

황 :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은? 공 : 정부와 대기업 삼성에 맞선 반올림의 싸움이 여기까지 온 것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사회적 권리를 포기하지 않은 피해자들의 용기와 이를 지지하는 수많은 분들의 크고 작은 연대 덕분이었다. 서명운동에 참여하는 분들, 후원금이나 치료를 위한 헌혈증을 보내주는 분들, 반올림 카페(cafe.daum.net/samsunglabor)에 들러 지지 글을 남겨주는 분들, 반올림은 바로 그런 힘들을 모으기 위해 애쓰고 있다. 라포르시안 독자들도 함께 해주시길 바란다. 


▲ 황진미(영화평론가, 진단검사의학 전문의)

황진미는?이화의대를 졸업하고, 연세대 보건학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진단검사의학 전문의 자격도 취득했다. 2002년에는 <씨네21>을 통해 영화평론가로 데뷔했다. 현재 <한겨레21>, <시사저널>, <비타민> 등에 영화 관련 글을, <한겨레 훅>에 법정르뽀를 기고하고 있다. 앞으로 '황진미의 라뽀&르뽀'를 통해 보건의료계, 혹은 의료시스템과 관련된 이슈를 진단하는 글을 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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