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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환경의학과 의사들 "삼성의 영업비밀, 노동자 안전·생명보다 앞설 수 없어"작업환경측정보고서 공개 촉구하는 성명 발표

[라포르시안] 작업환경측정보고서는 작업장 내 노동자의 유해물질에 대한 노출정도를 측정하고 평가한 결과를 기재한 자료이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유해화학물질 등을 취급하는 사업장은 6개월에 한번 이상 전문자격을 갖춘 외부기관을 통해 작업환경을 측정하고, 이를 관할 노동관서에 제출하도록 규정해 놓았다.

1986년부터 2014년까지 삼성전자 온양공장에서 근무하다 2014년 8월 백혈병으로 사망한 이모씨의 유족이 그해 10월 고용노동부 천안지청에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의 공개를 청구했다. 천안지청은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가 경영·영업상 비밀에 해당된다고 판단해 유족의 공개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족은 작업환경측정보고서 공개를 위한 행정심판에 이어 법원에 천안지청을 상대로 한 정보비공개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국민권익위원회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2015년 10월 유족의 청구를 기각했다. 대전지방법원도 2017년 3월 유족의 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을 했다.

유족은 대전고등법원에 항소했다. 지난 2월 1일 대전고법 제1행정부는 2007년부터 2014년까지 삼성전자 온양공장 작업환경측정보고서 중 인적사항을 제외한 모든 정보를 공개하도록 판결했다. 

대전고법의 판결 이후 고용노동부는 같은 달 19일 보도자료를 내고 "법원 판결을 참조해 앞으로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를 적극적으로 공개하기로 하고, 이를 위해 안전보건자료 정보공개지침의 개정을 추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법원 판결에 이어 노동부가 정보공개 방침을 밝히자 삼성전자는 법원에 정보부분공개결정 취소 소송의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국민권익위원회에도 노동부에 보관돼 있는 삼성디스플레이 작업환경측정보고서를 공개하지 못하도록 요청하는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권익위 산하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지난달 17일 삼성전자의 반도체공장의 작업환경측정보고서 정보공개에 대한 집행정지를 결정했다. 수원지법 형사3부는 지난달 19일 삼성전자가 중부지방고용노동청 경기지청장 등을 상대로 낸 집행정지 신청에 대해 인용 결정을 내렸다.

산업통상자원부도 지난달 16~17일 이틀 동안 산업기술보호 반도체전문위원회를 열고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작업환경측정보고서의 일부 내용이 국가핵심기술을 포함한 것으로 최종 판정했다. 일부 경제신문 등은 마치 삼성전자 반도체공자의 작업환경측정보고서를 공개와 한국 반도체산업의 운명을 동일시 하며 정보공개 반대 여론 조성에 팔을 걷고 나섰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노동자의 알권리와 건강권에 대한 염려를 찾아보기 힘들다. 온통 삼성의 영업비밀 유출과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저하에 대한 걱정뿐이다.  

"영업비밀, 국가핵심기술이 노동자와 시민 안전권을 침해해선 안돼"

이와 관련해 '일터건강을 지키는 직업환경의학과의사회' 소속 직업환경의학과 전공의와 전문의 116명이 삼성의 작업환경측정보고서 공개를 요구하는 성명을 냈다. <관련 기사: 28년 전 문송면을 대신해 묻는다…“이 나라는 왜 그대로인가”>

이들은 지난 8일자 성명을 통해 "최근 일부 언론에서 고용노동부의 삼성 작업환경측정보고서 공개를 강한 어조로 비판하고 있다. 삼성의 이익을 훼손하고 국가핵심기술을 유출하는 권력 남용이라는 것이 이들의 논조"라며 "그러나 이 사건의 본질은 정반대로, 기업 이윤과 경제 성장이 우리 사회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삼성이 주장하는 것처럼 작업환경측정보고서에 반도체 관련 영업비밀이 포함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직업환경의학과 전공의와 전문의들은 "작업환경측정보고서에서 공정도란 사업장 내 시설의 구획을 굵직하게 그려 넣고 동그라미 네모 등으로 측정위치를 표시하는 것이다. 고유한 생산기술의 비밀이라 할 만한 설비의 모델명이나 숫자, 구체적인 배치와 공정의 흐름, 자동화 수준 등을 알 수 있는 정보는 전혀 들어있지 않다"며 "심지어 노동부가 공개방침을 밝히고 있는 작업환경측정보고서 중 2010년 이후 자료에는 공정도가 아예 들어있지 않다"고 반박했다. 

작업환경측정보고서 내용에 생산기술은 아예 적시되지 않는다는 점도 강조했다. 게다가 많은 기업에서는 이 보고서 전체를 노동자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이들은 "(보고서에는)화학물질의 혼합 비율, 공정 조건이나 운전 방법 등에 대한 정보도 없고, 일부 화학물질의 경우는 제조사가 애초에 그 명칭이나 조성 자체를 영업비밀로 하고 있어 전혀 알 수가 없다"며 "반도체 생산 기술의 눈부신 발전 속도에도 불구하고 수년 전의 작업환경측정보고서가 여전히 영업비밀이라 할 수 있을지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영업비밀 보호에 앞서 더 중요한 것은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권이다.

이들은 "민감한 영업비밀을 다루는 노동자들도 자신이 사용하거나 노출되고 있는 화학물질의 이름, 양, 노출수준, 보호조치에 대해 알 권리가 있다"며 "어떤 공정이나 기술이 해당 기업의 영업비밀이거나 국가핵심기술인가를 가늠하는 일과 그 사업장의 작업환경측정보고서를 공개할 것인가를 판단하는 일은 별개이며, 기밀로 유지할 경우에도 노동자나 시민의 안전보건에 위협이 되지 않음을 기업 스스로 증명하거나, 발생가능한 문제를 예측하고 그 해결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산업재해의 보상을 신청한 노동자가 자신의 질병과 업무의 관련성을 입증하기 위해 과거 어떤 물질에 얼마나 노출되었는지 알 수 있으려면 작업환경측정보고서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삼성이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보고서를 제공하지 않은 탓에 산업재해 판정이 지연돼 왔다.

이들은 "앞으로 사업주가 이러한 방식으로 관련 정보 제공을 거부하거나 지연시킬 경우에는 해당 노동자들의 산업재해를 승인하도록 해 영업비밀 보호를 명분으로 산업재해가 은폐되고 재해 노동자의 치료권이 제한되지 않도록 보호해야 한다"며 "기업의 영업비밀을 보호하고 기업활동을 지원하는 것과 함께 기업활동이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소홀히 하면서 이루어지거나 권리를 침해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것도 정부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직업환경의학과 전공의와 전문의 116명은 ▲작업환경측정보고서 모두 공개 ▲산업안전보건법 및 관련 제도 개선을 통해 영업비밀에 대한 사회적 규제 강화 ▲산업재해신청 노동자에게 업무관련성을 밝히는 입증의 책임을 갖게 하는 현재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 개편 등을 요구했다. 

김상기 기자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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