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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북리뷰] 독감 대유행의 과학과 정치(2)독감 / 지나 콜라타 / 사이언스북스, 1999(2003역)

[라포르시안]  (1부 '독감 대유행의 과학과 정치(1)'에서 이어짐)4.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유행병은 기원전 431년 아테네에 괴질이라고 합니다. 당대의 사가 투키디데스는 이때의 광경을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겁에 질린 시민들은 의지할 대상을 의학에서 종교로 바꾸어 신전으로 몰려들었다. (...) 많은 이들이 회의에 빠졌다. 어느 순간에든 죽음이 찾아와 가난한 이들이 탐욕스럽게 재산을 가로챈다면 저축을 하거나 검소하게 사는 것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 전통적으로 소중하게 여겨 온 가치들은 폐기되었다. 대신에 "현재의 쾌락과 쾌락을 가져오는 모든 것들이 소중하고 유용한 가치가 되었다. (...) 신들이나 인간의 법에 대한 두려움이 사람들을 속박할 수는 없었다." - 66p. 

당시 괴질의 원인이 무엇인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질병에 의한 죽음이 일상이 되는 시기에 공포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 원형을 찾아볼 수는 있습니다. 2부에서는 유행병이 야기하는 '공포'와 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1부에서 말씀드렸듯이 현재 조류독감이 인체에 감염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매개체는 돼지로 알려져있습니다. 1918년 독감 역시 이러한 기전임이 증명되기 이전부터 이러한 가설은 어느 정도 받아들여졌는데요, 1976년 뉴저지주 딕스 기지에서 독감으로 데이비드 루이스 이등병이 사망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에도 과학자들은 1918년의 독감 바이러스가 돼지의 몸속에 휴면 상태로 있다가 언젠가 다시 인간을 공격할 날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지요. (118p.) 

딕스 기지에서 독감에 걸린 네 명의 감염자 중에서 한 명이 사망하자, 군당국의 의료진들과 공중보건 전문가들은 처음에는 이것이 '하느님의 선물'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918년과 같은 재앙이 닥치는 것을 막을 수 있도록 미리 내보여준 힌트 같은 것으로 여기죠. 엄청난 노력을 한다면 유행시기 이전에 제약회사들이 모든 미국인들에게 새로운 돼지독감 백신을 맞힐 만큼 충분한 백신을 생산할 수 있을지도 몰랐습니다.  

물론 딜레마는 있었습니다. 이것이 '신의 힌트'라고 하더라도, '과연 정말 돼지 독감에 걸린 네 명의 환자가 새로운 대규모 유행병의 첫 번째 신호탄인가?'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만약 신호탄이 아니라면 유례없는 노력 이후에 헛돈만 들인 것으로 드러나 지탄을 받을 것이 뻔했죠. 딜레마에 빠진 보건당국의 관계자들은 셈을 시작합니다. 

"모든 것은 불확실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언론에 뭐라고 말하면 좋을지 고민스러웠다. 일반 대중에게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정보를 너무 오래 감추다가 언론과 국민들로부터 질타를 받게 될까 봐 두려웠다."184  

설상가상으로 이 사실이 언론에 노출되게 되고 미국 전역의 신문은 '최악의 바이러스 가능성'에 대한 기사로 도배됩니다. 이제 교육후생부 장관을 비롯해, 소아마비백신의 두 영웅인 소크와 사빈 등 정부요인과 저명한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대책을 논의하게 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이 가지고 있는 팩트는 한 가지 였습니다. '군 기지 한 곳에서 군인 몇 명이 돼지 독감에 걸렸고 한 명이 독감에 의한 폐렴으로 사망했다.' 여기에서 새로운 대규모 유행병이 시작될 것이라는 어떤 증거도 없었지요. 그들이 가진 딜레마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때맞춰 독감 주사를 맞지 못한 사람들은 무방비 상태로 노출될 것이기 때문에 화를 낼 것이다. 독감 백신을 맞은 후 다른 독감 바이러스에 걸리게 된 사람들은 백신이 효과가 없다고 생각하고 화를 낼 것이다. 전국에서 수백만의 사람들이 화를 낼 것이 분명했다. (...) 반면, 대규모 유행성 독감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게 되면 질병 통제 센터는 '허위 경보'로 예산을 낭비했다고 비난받을 것이었다. 독감 주사를 맞은 사람들부터 현장에서 예방 접종을 실시한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질병 통제 센터를 비난할 것이 분명했다." - 193p.

어떤 선택을 하든 불리한 선택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선택을 해야했지요.  1918년 독감이 다시 돌아올 가능성에 대한 대답은 '모른다'였습니다. 이 대답이 정치 관료의 셈을 보다 간편하게 해결했습니다. 판단의 근거는 바로 유권자의 표였기 때문이죠. 

"(교육후생부 장관인) 매튜스는 만일 1918년 독감이 다시 돌아올 가능성이 "모른다."라면 그것은 "0"보다는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판단했다. 그것은 어떤 행동을 촉구하기에 충분한 근거였다. 그는 말했다. "실제로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을 때 유권자들을 앞에 놓고 '가능성이 너무 낮아서 아무일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겨우 2~5퍼센트 정도의 확률을 가지고 돈을 낭비할 수는 없지 않느냐'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 201p.

▲ 1976년 미국. 돼지독감이 유행하자 백신 접종을 위해 길게 줄을 늘어선 사람들. 사진 출처는 http://nowasmuchasever.wordpress.com/2012/02/05/swine-flu/

이에 포드 대통령은 존재를 증명할 수조차 없는 질병을 위해 "미국의 모든 남성과 여성, 어린이들에게 예방접종을 실시할 백신을 생산하기 위해" 의회에 약 1억 3500만 달러의 예산을 요청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모든 것이 순항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1억 3500만 달러의 예산'을 요구하자 입때껏 입을 다물고 있던 비판자들이 갑자기 수면 위로 올라왔습니다. 예산을 물쓰듯 쓴다는 비판부터, 증거 있냐 내놓으라는 사람들, 백신 부작용은 어쩔거냐는 사람들까지 득달같이 들고 일어났지요. 특히 예방접종 역사 상 미국인 전수를 대상으로 시행되는 최초의 사업이었기 때문에 부작용에 대한 공포는 어마어마했죠.   "전국민이 독감 백신을 맞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가능성만을 따져 볼 때 백신을 맞은 사람들 중에서 수만 명이 병에 걸릴 것이고 그중 일부는 사망할 것이다. 그것은 사실 그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일 뿐이다. 하지만 이들 중에 몇몇이 백신 때문에 병을 얻었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고 주장한다면?" - 218p.

이에 대해서 당시 뉴헤이븐 보건부의 예방의학과장인 한스 H. 노이만 박사는 "예상대로 2억 미국인들이 독감 주사를 맞기 시작한다면 예방 접종을 실시한 지 이틀 내에 2300명이 뇌졸중을 일으키고 7000명이 심장마비를 일으킬 것"이라고 이야기하며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지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씁니다. 

"왜냐고? 이것이 독감 주사가 있든 없든 통계적으로 예상되는 수치이기 때문이다.하지만 정오에 독감 주사를 맞은 사람이 그날 밤 뇌졸중을 일으킨다면 어떻게 이 두 가지를 연관짓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전후 관계 때문에 인과 관계의 혼동이 오게 될 수밖에 없다.(...) 이런일을 통계적 확률이라는 측면에서 객관적으로 보는 것과, 개인이 직접 경험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 219p. ~ 220p.

돼지독감 백신을 접종하든 말든 상관없이 전체인구에서는 사망이 발생하거나 치명적인 질병으로 이환되는 사람들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하필이면 접종을 받은 날이냐 아니냐의 문제이기도 하죠. 저도 이런 경험을 한 적이 몇번 있는데요, 인간은 본능적으로 '선후관계'를 '인과관계'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가끔씩 설명을 해도 말이 잘 통하지 않을 때가 있어서 애를 먹곤 합니다. 어쨌든 그것이 돼지독감 백신에 의한 것이든 아니든 폭발적으로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소수의 진짜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서 보험회사들이 예방접종에 대해서 반대를 하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책임을 질 수 없으니 국가가 손해배상을 하라고 압력을 가하지요.

우연히도 재향군인회관에 괴질이 돌아 백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이런 주장은 급물살을 타게 됩니다. 물론 지금은 이때의 괴질이 돼지독감과는 아무 상관없는 레지오넬라균 때문임이 밝혀졌지만, 아무 것도 알 수 없던 당대에는 공포가 이성을 마비시켰고 의회는 연방정부가 리스크를 떠 않는 손해배상 법안을 가결시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76년 10월 1일 돼지독감 예방접종이 시작되었습니다. 예상대로 며칠 후 사망자들이 발생했고, 역시 예상대로 언론이 득달같이 달려들었습니다. (224p.)

여기에 불을 지피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11월 셋째 주, 미네소타에서 한 의사가 돼지독감 백신 때문에 길렝바레증후군(GBS)이 발생했다는 발언을 하게 됩니다. 그 의사는 의학 강의 테이프에서 독감이 길렝바레증후군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경고를 들었다고 이야기하지요. 언론이 놓칠리 없습니다. '급성 염증성 탈수초성 다발성 신경병증(AIDP)'의 다른 이름인 이 병은 전신적인 급성마비를 동반하는 질환입니다. 예방접종을 맞았는데 온몸이 마비되는 부작용을 앓았다는 것만큼 드라마틱한 기사거리도 잘 없겠지요. 미 전역은 또 다시 공포에 휩싸이게 됩니다. 설상가상으로 이런 공포는 의사의 진단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지요. 컬랜드 박사는 당시의 공포와 의심이 진단에 영향을 끼치는 기전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당신이 신경과 의사인데 특별한 이유 없이 다리에 힘이 없는 환자 두 명이 찾아왔다고 가정해보라. 다리에 힘이 빠지는 데에는 아주 많은 이유가 있다."라고 컬랜드는 말했다. 하지만 돼지 독감 백신과 관련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퍼져 있으면 신경과 의사는 최근에 돼지 독감 주사를 맞았냐고 환자에게 물어볼 것이다. 한 명은 맞았고 한 명은 맞지 않았다고 가정해 보자. 주사를 맞은 환자의 경우 의사는 당장 길랑바레 증후군을 의심할 것이다. 의사는 길랭바레 증후군이 환자의 증상을 설명해 준다고 단정할 가능성이 크다." - 230p. 

즉, 공포라는 배지를 만나게 되면 진단과정에도 편견이 섞이게 되는 것입니다. 강력한 자기암시가 있기 때문에 그에 따라 예정된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이죠. 황당하게도 미네소타의 그 의사가 들었다는 의학테이프를 찾아서 다시 들어본 결과 테이프의 내용이 정반대였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그 강연에서는 어떤 사람이 예방접종을 받은 후 병에 걸리게 되면 설령 그 병이 백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더라도 너무나 쉽게 질병과 백신 사이에 연관이 있는 것으로 오인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길렝바레증후군을 예로 든 것이죠. 해프닝 정도로 끝났어야할 사건이 대중의 공포를 만나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자 질병통제예방센터(CDC)도 돼지독감백신과 길렝바레 증후군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는 발표를 하게 됩니다. 이 역시 자기암시에 의한 예언이 실현된 결과죠. 하지만 당국의 발표는 후에 번복되더라도 죽지 않는 의심을 만들어냅니다.

딕스 기지에서 데이비드 루이스 일병 한 명이 사망한 사례가 보건정책 당국자의 고민을 거치다가 언론에 유포되면서 정치가 상관하게 됩니다. 대규모 건강문제는 정치가 필연적으로 수반되니 이를 탓할 수는 없지만, 시민의 건강권을 중심으로 접근하지 않고 유권자의 표를 중심으로 접근한 까닭에 성급한 결정이 내려집니다. 하지만 이후에 더 거대한 대중공포가 엄습하고 결과적으로 사상 최악의 예방접종 스캔들로 이어집니다. 여기에 더해 백신 부작용에 대한 매우 과장된 알러지 반응을 대중에 심어두게 되지요.

물론 당연히 1976년 당시 돼지독감 접종 직후 길렝바레증후군이 발생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당시 미군 장병 200만 명 중 총 170만명이 백신을 맞고 접종 후에 길렝바레 증후군이 발병한 사례는 육해공군 합쳐 13건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돼지독감 백신을 맞히지 않은 이전 해의 발병 사례는 몇 건이었을까요? 17건이었습니다.

이렇게 선후관계와 인과관계가 혼동되는 사례는 지속되고 있습니다. 2012년 미국의사협회지(JAMA)에 실린 전향적 연구결과에 따르면 캐나다 퀘백주에서 신종플루 백신을 접종받은 440만 명 중에서 25명에서  길렝바레 증후군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는 100만 명 당 2명의 확률이죠. 그렇다면 접종을 받지 않은 나머지 370만 명 중에서는 몇 명에서 길렝바레 증후군이 나타났을까요? 58명이었습니다. (관련논문 : http://www.ncbi.nlm.nih.gov/pubmed/22782419

조류독감의 인체감염 가능성을 혹독하게 보여주었던 홍콩독감 연구의 중심인물이었던 美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수석 바이러스 학자 후쿠다 게이지 박사는 돼지독감 스캔들의 연쇄적인 정치사회적 반응을 두고 다음과 같이 논평합니다. 이렇게 대유행의 가능성을 보수적으로 추정하려는 경향이 있음에도 2009년 신종플루 사태는 우리에게 또다른 교훈을 남겨주었지요. 

 "오늘날 독감 전문가들의 뇌리 속에는 이 분야에 대한 인상을 결정짓는 두 개의 큰 사건이 있습니다. (...) 하나는 1918년 유행성 독감입니다. 전염성 질병 중에서 역사상 동일한 기간 내에 가장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일 것입니다. 거기에 버금가는 질병으로는 14세기 흑사병 정도가 있지요. (...) 두 번째 사건은 돼지 독감 소동이라고 후쿠다는 말했다. "돼지 독감 소동은 1918년 전염병에 대한 일종의 역작용이었습니다. 4000만 명이 돼지 독감 예방접종을 받았고 수백 명이 길랭바레 증후군에 걸렸습니다. 하지만 유행병은 나타나지 않았어요. 이 두 가지 사건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내내 떠나지 않았습니다.새로운 바이러스 균주가 확인 되거나 다시 나타나더라도 대규모 유행병이 발생할 거라 지레짐작하고 당장 총을 빼 드는 일은 삼가야 한다는 것이 1976년이 남긴 교훈입니다."- 246~247p.  

5.

예방접종과 관련하여 조금 더 깊은 논의를 하기 위해 해리 콜린스와 트레버 핀치가 지은 『닥터 골렘』의 한 장을 참고해보겠습니다. 해리 콜린스는 카디프 대학 사회학과 석좌교수이며 과학지식사회학의 이론적 조류를 만든 사회학자입니다. 트레버 핀치는 코넬대학교에서 과학기술학과 사회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콜린스와 함께 기술사회학을 발전시키는데 있어서 주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 두 저자는 현대 과학의 속성을 '골렘'에 비유하여, 골렘 시리즈 3부작을 발간한 바 있는데요, 이중 『골렘』과 『닥터 골렘』은 한국어로 번역되어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지금부터 인용할『닥터 골렘』의 8장 <백신 접종 - 개인과 공동체의 긴장>에서는 예방접종을 둘러싸고개인과 공동체가 어떻게 이익게임을 하는 지를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 출처 :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홈페이지(http://www.niaid.nih.gov/topics/pages/communityimmunity.aspx)

  위의 그림을 한 번 볼까요? 파랑인간은 면역은 없지만 건강한 사람, 노랑인간은 면역도 되었고 건강한 사람, 빨강인간은 면역도 없고 아프며 전염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첫번 째 그림에서는 아무도 해당 전염병에 면역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단 두 명의 전염원에 의해서 거의 모든 집단이 감염되게 됩니다. 두번 째 그림에서는 몇 명은 면역되었지만 유의미한 수가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거의 모든 집단이 감염됩니다. 세번 째 그림에서는 다수의 인구집단이 면역되어서 면역되지 않은 건강인 네 명 중에 한 명 만 전염됩니다. 이것이 바로 집단 면역(herd immunity)입니다. 100% 면역이 생기지 않더라도 일정 인구비율 이상이 면역되면 면역되지 않은 건강인구도 집단면역에 의해서 보호를 받게 되는 것이죠.  

때문에 개인의 선택과 공공선 사이의 긴장이 백신 접종보다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사례를 찾기란 쉽지 않지요. 특히 부모에게 선택권이 거의 전적으로 있는 어린 아이에 대한 백신 접종의 경우가 그 극단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특정한 질병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해당 집단 가운데 높은 비율의 사람들이 백신 접종을 받기만 하면 되며, 이때 그 비율이 꼭 100퍼센트일 필요는 없기 때문이죠. 가령 여러분들께서 개개인이 백신접종 행위를 선호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접종을 받아 '집단면역'을 형성하여 당신이나 당신 가족을 보호해 줄 때까지 그저 기다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이기적인 정책을 펼치는 개인이 많아질수록 감염병이 근절될 가능성은 낮아집니다. 왜냐면 타인이 어떤 선택을 할 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이기적인 정책을 펼치는 개인이 원하는 사항(백신접종 거부)을 요구하는 것과 요구사항을 다소 양보하는 것 중 어느 쪽을 선택했을 때 최대한의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지를 결코 알 수 없게 됩니다. 이는 전적으로 타인이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죠. 전형적으로 "죄수의 딜레마"가 발생하는 상황입니다. (258p.) 물론 여기에는 더 난해한 문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과연 백신이 자폐증이나 길렝바레증후군 같은 부작용을 일으킬 확률이 있기는 있느냐에 관한 문제입니다.  

아나필락시스와 같은 심각한 알러지 반응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특별한 절대적 금기를 두지 않는 WHO 지침을 생각해봅시다. 통계에 근거한 이 지침이 백신의 부작용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역학적으로 측정할 수도 없는 소수에서 그러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없을 수도 있고 있을 수도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근거가 빈약한 개인의 이기적 정책이 집단면역을 훼손할만한 이유가 있을까요? 앞서 돼지독감 백신 사례에서 흔히 우리는 선후관계와 인과관계 간에 상관이 있다고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그러한 의심의 근거가 대체로 희박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렇기에 저자들은 이런 개인적 정책이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결국 (개인의) 이기적인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죄수의 딜레마를 연구해본 사람은 그런 상황이 계속해서 반복되면 논리가 다르게 전개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른바 "반복된 죄수의 딜레마" 상황이다. 즉 시간이 흘러서 딜레마가 반복되면 각각의 죄수들은 상대방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알게 될 것이고, 만약 상대방 죄수가 항상 이기적으로 행동한다면 그런 이기주의가 곧 표준이 되어 장기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불이익이 돌아갈 것이다. 모든 사람이 다른 사람을 배신함으로써 모두가 10년 형을 받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유행병이 확산될 것이다." - 270p. 

물론 조건이 불확실할 때 기술과 관련된 의사결정에 대한 해법은 '예방의 원칙(precautionary principle)'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산업재해의 경우 과학적 조사가 덜 되었거나 불확실한 물질이 위험인자로 강력하게 추정될 때는 그런 물질을 배재하는 것이 일례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Challengig The Chip : 세계 전자산업의 노동권과 환경정의』에 대한 리뷰에서 보다 상세히 기술하겠습니다. 삼성백혈병 반도체 노동자 사건에서 주요한 쟁점이 된 것 역시 이 '예방의 원칙'이기 때문입니다.) 예방의 원칙에 따르면, 어떤 기술의 위험이 완전히 이해되지 못한 경우에는 미리 조심하는 것, 즉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 행동 방침입니다. 하지만 위험성에 대한 연구가 충분히 되어 있고, 위험성을 과장하는 연구사례들이 충분히 논박된 백신의 경우에는 '예방의 원칙'이 지침이 될 수는 없습니다. (266p.) 만약 백신 접종을 중단한다면 전염병이 유행할 것이고, 전염병 유행은 백신접종 부작용의 결과보다 훨씬 더 나쁠 것임은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아래의 인용문을 읽어보시죠. 

"만약 어떤 사람이 전염병의 감소는 백신접종과 아무런 상관도 없고 영양 상태의 호전이나 질병의 정상적 생태변화의 결과라고 굳게 믿는다면, 그 사람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장의 논증을 떠받치는 전제 중 하나를 받아들여 (거의 모든 사람이 이 전제를 받아들이고 있다) 백신 접종이 전염병 유행의 가능성을 줄인다고 믿는다면, 전적으로 개인주의적인 이유에서 자녀에게 백신을 접종하지 않기로 결정한 가족들은 자식을 보호하려 한 예전의 결정이 부분적으로 원인이 되어 손자가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크게 증가했음을 알게 될 것이다. (...) 장기적으로 볼 때 백신 접종의 문제에서는 무임 승차자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 281p. ~ 282p.  두 저자는 "판별력이 부실하면 잘못된, 아마도 백신접종 반대진영으로 치우친 결론에 도달할 가능성이 크다"(284p.)고 언급하면서, 이런 결론에 도달하는 주된 이유가 비이성적 감성에 호소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부작용이라고 주장되는 바, 혹은 실제 부작용으로 고통받는 환아의 사진이나 일화가 주된 전달체인 것이죠. 하지만 그런 사진이 유통되는 중에도 백신 접종이 제거하려는 바로 그 질병에 걸려 고통받는 아이들의 사진이나 일화는 제외됩니다. 즉, 그런 감성적 사진이나 일화들은 병에 걸려 나쁜 결과가 초래되는 사례와 백신접종을 통해 부작용이 나타나는 사례를 비교한 통계치가 없는 상태에서 유포되고 있는 것이지요 (285p.) 때문에 저자들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판별력을 보강할 것을 권합니다.  

"대중은 기성 체제에 반대하는 과학 견해의 비중을 가늠해보고 서로 다른 종류의 과학자들을 분별해내는 법을 알아야만 한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대중은 더 많은 과학이 아니라, 과학에 관해 더 많은 것을 알 필요가 있다. 이는 확실성 대신 판단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해줄 것이다." - 286p. 

물론 과학은 틀릴 수 있습니다. 특히 의학에서는 불확실성이 학문의 요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의학이 단순한 과학이 아닌 '구원'으로서 '의료'라는 성격 또한 가진다는 점 때문에 의사-환자 관계에서 '믿음'이 강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저러해서 어느 정도는 위험하고, 어느 정도는 안전합니다. 선택은 전적으로 환자분의 몫이니 알아서 판단하세요"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환자 역시 이런 의료행태에 익숙하지 않고, 오히려 불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이 관계에서 의료-의학의 불확실성에 근거하여 정확하게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의사의 의무이지만, 전달받는 주체인 환자의 정확한 정보습득도 매우 중요하다 할 수 있겠습니다. 

의료에서 불확실성에 대한 논의는 다음의 리뷰를 참고 바랍니다. [계산맹의 개안을 위해 - <숫자에 속아 위험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 - (1), (2)]  (1) : http://vandalite.blog.me/140200010264   (2) : http://vandalite.blog.me/140200078103 
  

즉, 중요한 것은 '과학은 틀릴 수 있다'는 말이 자동적으로 그 반대의 관점을 옳은 것으로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소독스하지 않은 입장을 제기하는 집단은 언제든 존재하고 이를 무조건 백안시할 일은 아닙니다. 그 존재가 반과학적인 편견으로 빠지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 오히려 바람직하기도 합니다. 아직까지는 반대 관점에 관한 주의깊은 연구가 없는 한 과학의 불확실성이 가장 '덜 불확실한' 불확실성이기 때문이지요. 

앞서 길게 논의한 돼지독감 백신소동과 같이, 건강에 정치가 개입되어 황당한 의사결정으로 진행되고 그것이 다수대중을 공포로 끌고 간 예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전의 권위자들이 틀렸던 사례를 알고 있다는 것이 반대의 관점을 정당화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말과 등치되는 것이 아님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지금까지 과학적 권위자로부터 나온 관점이 틀린 경우는 많았고, 앞으로도 그런 예는 또 발생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과학의 본성이기 때문이죠. 다만 우리는 학자적 견지에서는 불확실성을 가능한 줄여나가고, 시민의 견지에서는 그 불확실성을 해석하여 무엇이 개인과 다수에게 공리가 되는 지를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나가는 것이 중요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현석은?

시골 작은 보건소에서 공중보건의 근무 중. 『여행자의 인문학 노트』 저자. 읽고, 쓰고, 다니는 취미를 언젠가는 업(業)으로 승화시키겠다는 야심찬 미몽을 꾸고 있다.

 

라포르시안  webmaster@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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