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 / 지나 콜라타 / 사이언스북스, 1999(2003역)

[라포르시안] 

1. 

실제로 피해규모가 계절성 독감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까닭도 있겠지만, 한때 공포의 도가니탕을 팔팔 끓였던 신종플루나 조류독감이 불과 몇 년만에 철 되면 찾아오는 것으로 인식되는 듯합니다. 인류의 탄생과 함께 인류를 꾸준히 괴롭혀온 이 바이러스성 질환의 파괴력에 대한 집단망각은 흥미롭습니다. 독감은 결코 만만한 질병이 아님에도 철되면 찾아왔다 철지나면 물러가는 속성 때문인지 사람들의 기억에 크게 남아 있는 편이 아닙니다. 

독감의 원인균인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A,B,C 등의 타입으로 분류되고 아형은 바이러스가 보유하고 있는 단백질 정보에 따라 헤마글루티딘(H)과 뉴라미니데이즈(N)로 구분됩니다. (이외에도 알려진 다른 단백질 정보가 9개 더 있지만 주로 H,N으로 구분을 합니다.) 바이러스는 특성 상 변이를 잘하고, 현재까지의 독감백신은 아형이 변하면 약효가 제한되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WHO에서 올해 유행할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H형과 N형 예측해서 백신을 배포한다고 해도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들이 집단항명(?)을 해서 N형에서 변이를 일으킬 경우 지역적 유행을, 그보다 영향력이 큰 H형에서 변이를 일으킬 경우 지구적 유행을 일으키게 됩니다. 변이를 일으켜 이환율이 높아진다고 해서 치명률이 높아지는 것은 전혀 아니지만, 몇 십년에 한 번씩 독감의 이환율과 치명률이 동시에 높아지는 경우가 생기곤 합니다. 특히나 정보교류의 속도가 전지구적인 현대사회에서는 치명률 그 자체보다도 '공포'가 공포를 낳는 양상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공포에 대한 예감도 몇 번 거치다 보니 면역이 된 것인지, 다른 아형이 발견됐다는 이야기가 나와도 예전보다 사람들이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이 책의 저자인 지나 콜라타(Gina Kolata) 역시 그런 생각을 했나봅니다. 책의 원제는 『FLU : The Story of the Great influenza Pandemic of 1918 abd the Search for Virus』인데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흔히 스페인 독감으로 불리는 1918년 독감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문제의식 역시 '어떻게 사람들은 이런 독감의 기억을 그리고 쉽게 잊을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독감'이라고 이야기하는 1918년 독감의 모습은 어땠을까요? 그 후덜덜한 민낯을 보기 위해 본문 속으로 들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전염병은 그해 9월에 시작되었고 전염병이 지나갔을 때에는 50만 이상의 미국인이 목숨을 잃었다. 질병은 지구상의 구석구석까지 손길을 뻗쳤다. 일부 에스키모 마을은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서사모아 인들의 20퍼센트가 사라졌다." - 27p. 

"다음은 그가 데번스 기지에서 본 광경이다. "... 군복을 입은 수백명의 건장한 군인들이 열 명씩, 스무 명씩 떼를 지어 병원으로 들이 닥쳤다. 병상이 다 차고 난 뒤에도 환자들은 계속 들어왔다. 그들의 얼굴은 곧 검붉은 색으로 변했다. 심한 기침에는 피 섞인 가래가 함께 나왔다. 아침이면 죽은 시체들이 시체 보관소 부근에 장작 단처럼 쌓였다. 이것이 내 기억 세포 속에 각인된 1918년 가을 데번스 기지 사단 병원의 광경이다. 그 일은 인간의 생명을 파괴함에 있어서 인간의 어떤 발명품도 치명적인 독감 바이러스에 미치지 못함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 - 41p. ~42p.

"독감이 필라델피아에 도착한 지 한 달 안에, 거의 1만 10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이 질병으로 사망했다. 1918년 10월 10일에는 하루에 759명이 세상을 떠났다. (...) 장의사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고 가격을 6배나 올려 받아 잇속을 차리는 자들도 있었다. 묘지 관리인들이 매장 비용 15달러를 받고도 유족들에게 직접 무덤을 파게 한다는 민원이 들끓었다." - 46p.  

▲ 1918년 독감 대유행 당시 美해군 자료사진(출처 : http://dartmed.dartmouth.edu/winter06/html/cold_comfort.php )

 1918년 독감의 치명률은 약 5%로 계절성 독감이 0.01%~1%대 인 것을 생각해보면 어머어마한 수준이었죠. 게다가 H형의 대변이로 인해 전지구적 유행이 돌았으니 사망자수가 흑사병을 능가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습니다. '스페인 독감'으로 흔히 알려진 까닭에 먼나라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조선에서도 '무오년독감'이라고 하여 740여명이 감염되어 14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또한 '스페인 독감'이라고 잘못 알려지게 된 것도 1918년 당시에 제1차 세계대전의 무풍지대였던 스페인에서 보도검열이 없었기 때문에 독감 사망에 관한 뉴스가 외부로 널리 알려질 수 있었던 것에 기원합니다.  

여기서 하나의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세계대전 와중에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죽기는 마찬가지였기에 독감으로 인한 죽음이 무시될 수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또한 당시에는 바이러스의 존재를 확인하기 전이었고, 바이러스의 유전물질이자 파괴력의 본질인 DNA와 RNA는 발견되지도 않았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전세계적으로 많게는 1억명 가까운 생명을 앗아간 질병이 쉽사리 잊혀지게 된 것은 의아한 일이죠. 시간이 많이 지났기 때문에 잊혀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1919년 겨울부터 1918년 독감에 대한 이야기 자체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저자는 그 이유를 역사학자 알프레드 크로스비(Alfred W. Crosby)의 가설을 인용하여 추정해봅니다. 

"하지만 1918년 독감은 신문과 잡지, 교과서, 그리고 사회의 집단기억에서 깨끗이 지워졌다. (...) 왜 그랬을 까라는 물음에 크로스비는 전세계에 집단 기억 상실을 불러일으킨 몇 가지 복합적인 요인들을 제시했다. 첫째, 이 전염병은 너무나 끔찍했고 전쟁의 공포와 함께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기 때문에 끔찍했던 1918년이 지나가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일에 대해 생각하거나 글을 쓰는 것조차 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 게다가 이 전염병은 딱히 눈에 띄는 극적인 사건을 일으키지 않았다. 어느 세계적인 지도자의 목숨을 앗아 가지도 않았으며 인류의 목숨을 지속적으로 위협할 시대를 예고하지도 않았다. 끊임없이 그 질병을 상기시키게 만들, 부상당해 불구가 되거나 얼굴에 흉터가 생긴 생존자를 남기지도 않았다. " - 85p. ~86p. 

즉, 너무 끔찍했기 때문에 잊혀졌을 가능성과 죽지 않는다면 상기시킬만한 흔적이 없었기에 교훈이 될만한 이야기거리가 없었기 때문에 역사의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을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이렇게 전사회가 집단적으로 질병의 공포를 망각하는 현상이 비단 '1918년 독감'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일례로, 1800년대 초반 콜레라가 대유행했을 때도 마찬가지 현상이 나타난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유럽에서 콜레라가 한창일 때는 이것이 '하느님의 분노'이며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신앙으로 귀의하라는 계시'라고 여기며 대규모 전도의 발판으로 삼을 정도로 무시무시했습니다. 감염자의 절반이 사망했으니까요. 하지만 대유행 이후 불과 1년만에 콜레라에 대한 주제는 신문과 잡지에서 아예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이후 로베르트 코흐가 콜레라의 원인균을 발견한 이후 콜레라는 정복가능한 질병 리스트에 올라갔고, 점점 역사 속으로 잊혀졌습니다. 

역사학자들은 콜레라 대유행에 대한 망각 역시 비슷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첫째로 사람들은 그 무시무시한 전염병이 거대한 사회적 붕괴를 초래할까 봐 걱정했습니다. 또한 콜레라 역시 죽지 않으면 원상태로 회복되었기 때문에 "뚜렷한 '교훈'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유행성 콜레라가 유럽에 끼친 영향은 "공중위생 연구자들의 노력에 박차를 가한 정도였다(76p.)"라고 서술하고 있지요. 존 스노(John Snow)가 영국의 콜레라 대유행을 계기로 연구한 것이 현대 역학의 기틀이 된 점을 생각해보면 지나치게 과소평가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집단 망각이라는 틀에서는 곱씹어볼만한 대목인 것 같습니다.  2. 

1918년 독감의 원인이 완벽하게 규명된 것은 아니지만 - 더군다나 1918년으로 돌아갈 수 없으니 사실상 완벽한 규명이 불가능하지만 - 이에 대한 학설은 어느 정도 정립된 편입니다. 이 학설은 인체감염성 조류독감(AI)이 한창 유행이던 2009년에 이미 언론을 통해 많이 알려진 바 있지요. 즉, 주요한 전구 바이러스는 조류독감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이며 이 바이러스가 돼지에 옮아가 돼지의 체내에서 돌연변이를 일으켜 인간에게 감염이 가능한 바이러스가 만들어진다는 것이 이제는 정설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원래 조류독감은 인간에게 전염되지 않고, 돼지독감은 인간에게 전염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돼지는 조류가 걸리는 독감에도 걸릴 수 있기 때문에 돼지의 몸 안에서 서로 다른 아형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만나 인체에 감염가능한 아형을 만들어낸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무척 간단하지만, 사실 이 책은 바로 이 가설을 세우게 된 계기부터 가설을 검증해나가는 과정이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특히나 스웨덴 출신으로 미국에서 병리학전문의가 된 요한 V. 훌틴이 아이오와 의과대학 유학시절인 1951년에 알레스카 영구동토로 떠나 1918년 당시의 독감 사망자 시신을 발굴하여 조직을 부검하는 대목은 이 책의 하이라이트입니다. 자신의 가설을 가로채려는 미국 정부의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기동력을 발휘해 바로 알레스카로 향하는 모습은 학자 이전에 북유럽의 모험가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PCR 같은 유전자 검사기법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지요.  하지만 1918년 독감 사망자의 시신을 발견한 공로가 인정되어 아이오와 의과대학은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외국인의 편입을 인정하고 훌틴은 졸업 이후 미국에서 의사 생활을 시작합니다. 자본주의 의료의 최전선인 미국답게 병리학전문의임에도 개원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하지만 그는 지속적으로 '1918년 독감' 연구의 추이를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50여년이 지나 일흔 둘이 된 훌틴은 두 번째이자 마지막이 될 기회를 발견합니다.

▲ 1918년 ‘스페인 독감’ 유행 당시 환자를 격리 수용한 임시병동 모습.

바이러스학자 제프리 토벤버거(Jeffery Taubenberger)는 1997년, 『사이언스Science』 지에 1918년 독감의 가설을 미군 자료보관소에 있던 미군 사망자의 파라핀 표본으로 일차적 증명한 후 확증할 수 있는 영구동토의 1918년 독감 사망자 시신을 찾고 있었습니다. 저널을 읽은 훌틴은 토벤버거에게 '미친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이미 시신을 찾은 적이 있다며 편지를 보냈지요. 1951년의 경험에 트라우마가 있던 훌틴은 토벤버거에게 내가 시신을 다시 찾으러 가겠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합니다. 언론이 달려들고, 정부가 관계되면 꼬이기만 할 뿐이라고 생각하는, 복지국가에서 도피한 자유주의자의 결벽증 아닌 결벽증 때문이었죠. 때문에 훌틴이 토벤버거에게 물은 질문은 딱 하나였습니다.  

  "자네가 내 표본을 받아주겠나." 

이미 영국팀과 영구동토에 보관된 시신을 발굴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던 토벤버거는 그 일이 얼마나 많은 행정절차를 요구하며, 그와 더불어 막대한 금액과 시간을 소모하는 일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토벤버거가 훌틴에게 언제 떠날 수 있는 지를 물었을 때, 그가 들은 대답으로 인해 기겁을 하게 되죠. 

 "이번 주에는 곤란하고 아마 다음 주에는 떠날 수 있을 것 같네." (이상 336p.~337p.)  훌틴의 재발굴이 비교적 최근의 일이긴 하지만 최근 몇 년 간 더욱 엄격해진 과학윤리의 기준으로 봤을 때 훌틴의 무대포식 발굴을 두고 모범적인 일이라고 할 수만은 없습니다. 하지만 덕분에 토벤버거는 완벽한 표본을 얻게되고 세상은 마침내 1918년 독감 대유행의 원인 바이러스가 무엇이었는지를 확증할 수 있었고, 어떤 기전으로 사람에게 전염되었는지에 대해서 강력한 학설을 제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3. 

물론 여전히 남아 있는 의문은 있습니다. 그 중에서 핵심적인 것은 "왜 1918년 독감은 그토록 치명적이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이제는 인플루엔자 분야에서 세계적 석학으로 인정받게 된 토벤버거가 몇 가지 가설을 제시합니다.

1) 전구체 단백질이 허파 세포 이외의 세포 효소에 의해 쪼개질 수 있도록 헤마글루티닌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일어났으리라는 것입니다. 헤마글루티닌(H) 단백질은 독감 바이러스가 사람의 폐에서만 특이적으로 증식하는 원인입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세포에 감염되면 바이러스를 둘러싸고 있는 헤마글루티닌 단백질의 커다란 전구체를 만듭니다. 이때 전구체는 숙주 세포 내의 효소에 의해 둘로 나뉘어야 한다. 그리고 이 효소는 인간의 폐 속에만 존재하기 때문에 독감 바이러스는 폐세포 속에서만 증식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런데 '폐세포 이외의 다른 곳에서도 쪼개질 수 있다면 치명적인 전신적인 증상을 일으키지 않았을까'가 첫번째 가설이었습니다. 하지만 실험결과 이 가설은 기각됩니다. (390p.)   2) 다음으로 뉴라미니데이즈(N) 유전자의 돌연변이 때문에 바이러스가 허파 밖 다른 신체 기관으로 퍼져 나올 수 있었다는 가설을 생각합니다. 생쥐의 뇌에 독감바이러스를 반복적으로 직접 주사하자 결국에는 뉴라미니데이즈 유전자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치명적인 뇌염을 일으키게 된 것이죠. 하지만 자연상태에서 이런 돌연변이가 많은 개체 속에서 발생되리라고 생각하기 어렵게 때문에 역시 이 가설도 기각됩니다. 

3) 다음 단계에서는 면역체계를 통한 가설을 세워봅니다. NS1 단백질이 빠진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로 실험을 하던 팔리스, 사스트르, 무스터 박사 팀은 이 단백질이 결핍되면 백혈구에서 생성되어 주로 바이러스를 방어하는 면역물질인 인터페론(interferon)의 작용에 저항하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팔리스 박사 등은 NS1이 돌연변이를 일으킨다면 인터페론의 항 바이러스 작용를 무력화시킬 수 있고, 이는 치명적인 병독성을 나타낼 수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제안합니다. 

하지만 토벤버거는 팔리스의 가설에 결함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1918년 독감에서 NS1 유전자가 정말로 인터페론의 역할을 방해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면 왜 미래에 등장한 바이러스들은 그러한 '긍정적인' 변화를 배제하는 쪽으로 돌연변이를 일으켰을까?"(393p.) 물론 돌연변이가 '선호성'이나 '방향성'을 가지고 일어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토벤버거의 이와 같은 의문에 전제가 잘못되지 않았나 생각하지만 덕분에 토벤버거는 1918년 독감의 치명적 위력에 대한 새로운 가설을 제시할 수 있었습니다.

3-1) 첫 번째는, 독감 바이러스가 젊은 사람들이 이전에 접해 본 적이 없는 전혀 새로운 바이러스였고 따라서 젊은 이들은 항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토벤버거는 이후 소강 상태를 보이고 더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발견되지 않은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1918년 독감의 원인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사람을 죽이는 능력이 너무나 뛰어난 1918년 독감은 독감 바이러스들에서도 가장 먼 가장자리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이 바이러스에 어떤 돌연변이가 일어나든 덜 치명적인 쪽으로 이동하게 될 것"이라고 말이죠. (394~395)

3-2) 다음으로 1918년에 살았던 사람들이 1918년 독감에 대해 특이한 면역 반응을 보였다는 가설입니다. 1918년 이전에도 독감 대유행은 당연히 있었는데요 토벤버거가 주목하는 시기는 1918년 대유행 전에 있었던 1890년 독감대유행이었습니다. 만약에 1890년 독감 대유행으로 인해 사람들의 몸안에 형성되었던 항체가 1918년 바이러스를 지나치게 격렬하게 공격했다면 독감 바이러스가 아니라 면역 체계 자체가 죽음을 가져올 수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가설은 토벤버거 스스로도 가능성이 낮다고 이야기하지요.

토벤버거가 마지막에 제시한 가설들은 안타깝게도 1918년으로 돌아가지 않는 이상 증명하기 어려운 것들입니다. 때문에 "왜 1918년 독감은 그토록 치명적이었을까?"에 대한 확실한 대답은 앞으로도 미제로 남을 가능성이 큽니다. 결국 결론은 '아직까지 확실한 것은 없다'가 되버립니다. 하지만 그 여정에서 의학과 과학은 혹독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결코 적지 않은 것을 거두어들였습니다. 이렇게 '왜 사람들은 수천만 명에서 1억의 목숨을 불과 몇 달 만에 앗아간 1918년의 독감에 대해 기억하지 않는 것일까?' 과학 저널리스트의 간단한 의문에서 시작한 책은 다음과 같은 말로 마무리됩니다.

"우리가 독감에 대해 점점 오만해지는 동안, 이 흔해 빠진 질병 뒤에 숨은 새로운 전염병이 지금 이 순간에도 파괴력을 모으고 있을 지도 모른다. 다음에 찾아올 대규모 유행병에서 살아남기 위해 과거에 대한 더 나은 이해로 무장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 398p.

1999년에 원서가 출판되었고 2003년에 사이언스북스에서 번역판이 나왔는데, 2009년에 거짓말처럼 - 제약산업과 미디어에 의해 다소 과장된 공포였다는 것이 중론이지만 - 신종플루가 유행했습니다. 아마 당해에 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찾아보지 않았을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라고 쓰고 네이버에서 이 책에 대한 책정보를 찾아봤는데 아니나 다를까 12편의 리뷰 중 9편이 2009, 2010년에 작성됐네요. 『여행자의 인문학 노트』는 다가오는 여름 휴가철에 판매량이 급증하리라 '기도'해봅니다.) '온고지신'은 최신 이론이 모든 것을 주도하는 듯한 과학의 영역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고사성어입니다. 과학사를 공부하고 전통적으로 유효하다고 판단되는 약초나 기술에서 과학적 해법을 찾는 것이 현재의 과학을 이루는 근간이 되기도 하니까요. 

이 리뷰의 제목을 다시 보시면 "독감 대유행의 과학과 정치"입니다. 그럼 이제 '정치'가 남은 것이죠? '온고지신'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과학만큼이나 독감 대유행이 남긴 정치적 교훈 역시 사회에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때문에 2부에서는 강력한 전염병의 대유행에 대한 트라우마가 정책의사결정에 어두움을 드리운 예를 살펴보고, 이어서 해리 콜린스와 트레버 핀치가 쓴 『닥터 골렘』과 연관하여 독감에서 의사-환자-정부 간의 사회학적 관계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인 백신접종에 대해서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다음 편에 계속

이현석은?시골 작은 보건소에서 공중보건의 근무 중. 『여행자의 인문학 노트』 저자. 읽고, 쓰고, 다니는 취미를 언젠가는 업(業)으로 승화시키겠다는 야심찬 미몽을 꾸고 있다.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