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안 브리핑]

[라포르시안] 대한민국의 복제전문가 황우석의 비리를 폭로한 내부고발자가, 그 스캔들과 관련된 자신의 역할, 그리고 그로 인해 감내해야 했던 고통에 관해 입을 열었다.

오랫동안 황우석 사단의 핵심인물이었던 유영준은 지난 8년 동안 침묵을 지켜 왔다. 그러나 2013년 12월의 블로그 포스팅과 이어진 Nature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과학계의 최대 사기사건 중 하나`를 파헤치게 된 수사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그 동안 지지와 야유를 한몸에 받아옴으로써, 한국 사회가 `추락한 영웅의 유산`을 놓고 아직도 분열되어 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황우석 스캔들의 본질은, 개인의 성공을 위해 타인의 희생과 생명을 남용했다는 것"이라고 유영준은 말했다. 그는 현재 국립 강원대학교 병리학과에 재직 중이다.

2004년 황우석은 "인간 배아를 복제하여, 그로부터 줄기세포를 만들었다"고 주장함으로써, 새로운 질병 치료법의 가능성을 여는 듯했다. 그러나 2006년 그는 논문조작 사실을 인정했고, 그 이후 - 사기 혐의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 복귀를 시도함으로써 논란을 일으켰다(Nature 505, 468?471; 2014).

유영준은 2002년 서울대학교 내에 있는 황우석의 연구실에 합류하며, 그 해에 인간배아 복제와 줄기세포 생성을 담당하는 연구팀을 이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성과물의 하나로, 2004년 거대한 팡파르를 울렸던 논문(W. S. Hwang et al. Science 303, 1669?1674; 2004)의 첫 원고를 작성했다. 황우석이 영화를 누리며 희희낙락하는 동안, 유영준은 언론플레이를 좋아하는 황우석의 태도에 대해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그는 또한 "인간복제의 임상적 이용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느꼈다. 2004년 4월, 그는 연구실을 떠나 곧바로 원자력병원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다음 해, 황우석 사단은 휘황찬란한 후속작품을 내놓으며 인간 복제배아 줄기세포의 임상적용이 임박했음을 시사했지만(W. S. Hwang et al. Science 308, 1777?1783; 2005), 유영준은 의심을 거둘 수 없었다. "핵심 연구인력이 황우석의 곁을 떠난 상태에서, 그렇게 짧은 기간 동안 11개의 배아줄기세포를 쏟아내다니... 나는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있었어요. 그건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었어요"라고 그는 술회했다.

다음으로, 그는 황우석이 열 살짜리 척수손상 어린이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준비 중이라는 뉴스를 들었다. 황우석이 그 환자에게 다시 걷게 해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는 말까지... 그 환자와 면식이 있었던 유영준은, 임상시험이 환자의 건강을 해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무서웠어요. 모든 일을 중단시키고 싶었어요"라고 그는 말했다.

증거부족과 신분노출을 우려한 유영준은 대학 당국이나 경찰과 접촉하는 것을 꺼렸다. 그 대신 그가 택한 방법은 언론에 제보하는 것이었다. 그는 2005년 6월 문화방송(MBC)에 이메일을 보내, 탐사보도를 권유했다. MBC의 PD들은 처음에는 황우석의 명성에 주눅이 들었지만, 유영준과 함께 취재에 착수하기로 결정했다. 첫 번째 프로그램의 주제는 "황우석이 비윤리적 방법으로 난자 기증자들을 모집했다"는 것이었다.

2005년 11월 22일 방영된 첫 방송은 황우석을 압박하여 고백을 이끌어 내는 성과를 거뒀다. 그러자 황우석을 두둔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연구와 관련된 사기행각을 다뤘던 두 번째 프로그램은 스폰서들의 협찬 중단으로 연기되었고, PD들은 법적·물리적 위협에 직면했다. 그러나 의혹은 눈덩이처럼 커져 갔다. BRIC의 웹사이트에 논문의 오류를 지적하는 글들이 올라오자, 서울대학교 측은 조사에 착수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12월 15일 두 번째 방송이 나갈 때쯤, 황우석의 운명은 결정된 상태였다.

첫 번째 방송이 전파를 탄 직후 유영준의 신분은 노출되었고, 그가 가장 우려했던 일이 터지고 말았다. 황우석의 지지자들은 호전적이었다. 그들은 유영준의 블로그를 해킹하고, 그는 물론 그의 직장 상사와 아내에게 협박 메일을 보냈다. (그의 아내 역시 황우석의 전 연구원이었다.) 2005년 12월 6일, 압박에 견디지 못한 유영준은 병원을 떠났다. 그 후 6개월 동안 유영준은 아내, 생후 8개월의 딸과 함께 도피생활에 들어갔다. 눈물도 많이 흘렸다. 생계가 막막했던 그는 2007년, 고려대학교의 임상연구원으로 채용되면서 처음으로 봉급을 받았다.

2013년 12월 23일, 유영준은 BRIC 사이트에 실명으로 글을 올려, 자신을 지지해 준 분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약 8,000명이 그 글을 봤고, 그의 심정에 공감하는 댓글이 수십 개 달렸다. 그러나 한 지방신문이 그 이야기를 다루면서, 분위기는 돌변했다. 다음 아고라라는 유명 사이트에 올라온 1,000개의 댓글 중, 90%는 부정적 내용이었다. 댓글을 단 사람들은 "사소한 진실 하나를 폭로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줄기세포 사업을 뒤처지게 만들었다"고 비난했다. 다른 사람들은 "개인의 오만방자함이 국가의 이익을 심각하게 훼손시켰다. 그 바람에 줄기세포 프로젝트가 통째로 다른 나라에 넘어갔다"고 말했다.

유영준은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일말의 후회도 없으며, 황우석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과학에 대한 신뢰를 버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2011년 생명윤리 및 안전 분야의 PhD 과정을 마치고, 현재 서울대학교에서 동물 생식생물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절차를 밟고 있다.

"유영준의 사례는 내부고발의 위험부담이 얼마나 큰지를 짐작케 해 준다. 더욱이 신분이 낮은 연구자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고 EMBO(European Molecular Biology Organization)의 출판 책임자인 베른드 풀버러는 말했다. "황우석 사태는 많은 과학잡지들에게 `논문조작을 좀 더 철저히 감시하라`는 경종을 울렸다. 그러나 건설적인 내부고발(constructive whistle-blowing)을 공식적으로 보호하거나 격려하는 분위기는 아직 형성되지 않은 듯하다"고 그는 덧붙였다.

출처 : http://www.nature.com/news/whistle-blower-breaks-his-silence-1.14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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