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병원이 재량권 일탈·남용"...앞선 명예훼손 손배소송서도 "논문 고의로 조작 아니다" 판결

[라포르시안] 지난 2012년 연구논문 조작 논란에 휩싸이며 교수 재임용에서 탈락한 전 서울대병원 교수가 최근 법원으로부터 해고 무효 판결을 받았다.

이보다 앞서 해당 교수는 논문 조작 혐의와 관련한 명예훼손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대법원까지 가는 법정공방 끝에 '논문조작이 아니다'는 판결을 받은 바 있다. 이 때문에 해당 교수를 둘러싼 논문 조작 논란과 재임용 탈락 등 일련의 과정에 다른 배경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제42민사부(재판장 김한성)은 지난 19일 임홍국 전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가 병원을 상대로 제기한 해고무효확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앞서 서울대병원은 임 전 교수를 2010년 9월~2012년 8월까지 임상교수요원으로 임용했고, 이후 임상교수요원운영위원회 심사를 거쳐 2012년 9월~2016년 8월까지 재임용했다. 

그러나 2016년 6월 임상교수요원운영위원회를 통한 재임용 심사에서 '종합평가 점수 합격기준 미달'을 사유로 임 전 교수에 대해 탈락 결정을 내렸다.

임 전 교수가 재임용 심사 결과에 이의를 제기했지만 병원 측은 임상교수운영위원회 출석위원 전원 일치로 불합격을 의결하고 2016년 8월 말로 임용기간이 만료된다고 통지했다.

임 전 교수는 병원의 결정에 불복해 해고무효확인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원고가 재임용 심사기준을 통과했다고 볼 여지가 충분히 있음에도 피고가 이 같은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인사위원회 의결에 따라 원고를 재임용 하지 않기로 한 것은 사회통념상 현저히 타당성을 잃은 것"이라며 "병원의 재임용 거부처분은 재량권의 범위를 일탈하거나 남용한 것으로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서울대병원 인사위원회가 임 전 교수의 재임용 심사에서 '진료실적 부진'을 불합격 결정의 이유로 삼은 건 합리성이 결여됐다고 봤다.

재판부는 "원고의 외래환자, 입원환자, 수술환자 수가 같은 과 소속 다른 교수들에 비해 현저히 낮기는 하지만 원고는 중환자실 전담의로 주간기준으로 5세션 이상을 중환자실에서 할애하고, 중환자실 근무 배치 시간 동안 타 업무를 병행하지 못해 다른 교수들에 비해 진료실적이 저조할 수밖에 없었다"며 "원고와 다른 과 소속 중환자실 전담의들의 진료실적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분과별 차이상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임 전 교수가 재임용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은 '기여도 및 인성' 평가 항목도 객관적인 평가 근거가 미흡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원고에 대한 종합평정 결과를 보면 교육 및 연구 항목에서는 평균 4.0 이상의 평가를 받았으나 진료실적 및 '기여도 및 인성' 평가 항목에서 낮은 평가를 받았다"며 "기여도 및 인성은 객관적인 측정이 어렵고 평가자의 주관과 자의성이 개입될 소지가 크다. 또한 각 폋가항목이 수, 우, 미, 양,가로 분류해 평가되지만 각 등급의 구체적인 세부기준 및 방법에 관해 정해지 바가 없어 객관적 평정의 기준이 미약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런 판단을 근거로 "원고에 대한 재임용 거부처분은 재임용 심사에서 피고가 갖는 재량권의 범위를 일탈하거나 남용한 것으로 무효"라고 인용했다.

논문조작 혐의도 무혐의 판결...서울대병원내 권력다툼 희생자? 

임홍국 전 서울대병원 교수.
임홍국 전 서울대병원 교수.

한편 이보다 앞서 임 전 교수는 자신이 제1저자로 참여한 논문의 연구 데이터를 조작했다는 혐의로 곤욕을 치렀다.

앞서 지난 2010년 미국 흉부외과학회지(The Annals of Thoracic Surgery)에는 국내 4개 병원 의사 11명이 공동으로 참여해 작성한 ‘선천성 수정 대혈관 전위증에 대한 양심실 교정술 장기 결과’라는 논문이 실렸다.

이 논문은 지난 1983년부터 2009년까지 27년간 고전적 수술 기법으로 심장기형수술을 받은 환자 167명을 추적 관찰한 결과를 분석한 것이다. 연구진은 논문을 통해 양심실 교정술을 받은 환자 167명 중 사망자는 19명으로 생존율이 83%에 달했다고 보고했다.

임 전 교수는 이 논문의 제1저자로 참여했다. 그런데 논문이 학술지에 실리고 2년 6개월 뒤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에 해당 논문에 연구부정행위가 있었다는 제보가 접수됐다.

연구부정행위 의혹을 제기한 이는 뜻밖에도 해당 논문의 공저자로 참여한 이 병원 흉부외과 K 모 교수였다.

논문 공저자의 제보에 따라 서울대병원 연구진실성위원회는 1년 6개월 동안 조사 활동을 벌였고, 2013년 12월 "수술 성과를 부풀리기 위해 사망자 수를 축소하는 식으로 논문 작성 과정에서 중요한 데이터가 조작됐다"는 결론을 내렸다.

연구진실위의 조사결과는 공식 발표에 앞서 일부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됐고, 임 전 교수는 연구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임 전 교수는 연구진실위의 조사결과가 사실과 다르고, 조사결과를 공식적으로 발표하기에 앞서 일부 매체에 그 결과를 유포해 비밀유지 의무를 어기는 등 본인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하며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임 전 교수가 제기한 손배소송에서 1심 재판부는 서울대 연구진실위가 내부 규정을 어기고 조사결과를 사전에 유포해 임 전 교수의 명예를 훼손한 것은 물론 연구자료를 고의로 조작했다는 점도 인정하기 어렵다고 보고 위자료 2,000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연구대상 사망자 수가 실제와 달랐지만 임 전 교수가 이를 고의로 조작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당초 임 전 교수가 논문을 준비하면서 취합한 서울대병원의 사망자 수(10명)는 2008년 2월경 취합한 자료이고, 서울대 연구진실위가 논문의 연구윤리 위반 여부를 검증하기 위해 참고한 자료(사망자 수 18명)는 2012년 9월경 취합한 자료였다.

취합된 두 자료간 4년이 넘는 시차가 나는 과정에서 사망자가 추가로 발생했고, 또한 논문 작성 당시에는 유실된 것으로 파악된 일부 기록이 서울대병원의 의무기록 전산화 작업을 통해 등록되면서 사망자 수가 추가로 확인됐던 것이다.

1심 판결 이후 임 전교수와 서울대 양쪽이 모두 항소했고, 2심 재판부 역시 1심 판결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은 다시 대법원까지 갔지만 2016년 12월 대법원도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논문조작 의혹이 무혐의로 결론난 이후 의료계 일각에서는 임 전 교수가 서울대병원내 의사들 간 권력다툼의 희생자가 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임 전 교수는 논문조작 논란이나 재임용 탈락 등 일련의 과정에 석연치 않은 의혹이 있다고 보고 병원 등을 상대로 형사고소를 제기해 진실을 밝히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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