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 지원프로그램 필요성 커져…“정부 지원책은 암환자 생존율에만 초점"

▲ 암환자와 보호자를 위한 문화쉼터 프로그램. 사진 출처 : 세브란스병원 홈페이지

암환자 보호자의 간병에 따른 신체·정신·경제적 영향을 평가할 수 있는 도구가 개발되면서 국내 암환자 보호자 지원프로그램 마련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국립암센터는 최근 990명의 암환자 가족 및 보호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를 바탕으로 ‘한국어판 간병 반응 평가도구’(이하, CRA-K)를 개발했다.

이 평가도구는 ▲일과 방해 ▲가족의 지지부족 ▲건강문제 ▲재정문제 등 4가지 부정적인 영역과 ▲간병인의 자존감 등 1개 긍정적인 영역을 포함해 전체 24개 문항으로 구성됐다.

평가도구 개발을 위한 연구에 직접 참여한 국립암센터 암정책지원과 박종혁 과장은 “그동안 환자 가족의 경제적 문제를 비롯해 직접 간병을 하는 보호자의 신체·정신적 건강문제 등 간병 부담을 측정할 수 있는 도구가 없었다”며 “CRA-K를 통해 암환자 보호자의 내적 자존감까지 형상화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CRA-K를 이용할 경우 암환자 간병이 보호자에게 미치는 부정적·긍정적 영향을 동시에 평가할 수 있다고 한다.

연구팀에서 제공한 하위분석 결과에 따르면 ‘일과 방해’ 영역의 경우 간암(3.36), 배우자(3.25) 3년 이상의 간병기간(3.18) 등에서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가족의 지지부족’ 항목의 경우 양성종양(3.0), 배우자(2.36), 3년 이상의 간병기간(2.35)의 결과를 보였고 ‘건강문제’는 폐암(2.86), 3년 이상의 간병기간(2.79)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긍정적인 영향을 나타내는 ‘간병인의 자존감’ 영역에서는 대장암과 자궁암(3.54), 부모(3.57), 1년 미만의 간병기간(3.54) 등이 비슷한 경향을 보였다. 

연구진은 암환자 간호를 통한 보호자의 긍정적인 영향에 주목하며 지원프로그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실제로 암환자 보호자의 정신적 건강문제 발생 위험은 심각한 수준이다.

국립암센터가 2011년 암환자 및 보호자 990쌍을 대상으로 불안 및 우울증상, 자살충동과 자살 시도에 대한 설문을 실시한 결과, 82.2%는 우울증상을 보였고 38.1%는 불안 증세를 느꼈다.

또 암환자 보호자 중 17.7%는 1년 동안 자살 충동을 느꼈고 2.8%는 자살 시도를 했다.

박 과장은 “암환자 보호자 중 불안 또는 우울 증상을 느끼는 사람은 자살 고위험군”이라며 “암환자 보호자는 실직, 사회적 접촉 및 지지 감소, 낮은 삶의 질이 불안 및 우울 증상으로 인해 자살 충동과 자살 시도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에서는 암환자의 생존율에만 초첨을 맞추고 있는 실정”이라며 “암 생존자의 관리 정책과 함께 보호자도 관리할 수 있는 사업을 정책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암환자 보호자가 간병을 통해 질병 인지, 건강 관리에 대한 동기부여 및 실천 등 긍정적인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반대로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적 문제 등을 유발하기 때문에 암환자 보호자를 위한 정책적 대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환자단체도 암환자와 보호자의 건강관리 프로그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암 생존자 비율이 높아지면서 환자를 간병했던 보호자에 대한 건강관리 프로그램이 필요하지만 정작 국가 차원의 프로그램 마련은 미흡한 실정”이라며 “환자 보호자가 간병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로 우울증 증세를 많이 보이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심리상담 프로그램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암환자 보호자를 위한 국가차원의 건강관리 프로그램은 전무한 실정이다.

보건복지부 질병정책과 관계자는 “암환자 보호자에 대한 지원프로그램은 따로 없다”며 “간병으로 인한 부담률 등을 연구하고 있지만 아직 지원프로그램을 구축하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에서는 암환자 보호자의 건강관리를 위해 다양한 기관에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미국 암 지원 단체인 CancerCare는 홈페이지를 통해 가족이 암 진단을 받았을 때 필요한 정보와 자기관리법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전화 및 온라인 카운슬링 서비스도 지원한다. 미국의학회(AMA)는 간병인 자가 평가 툴을 제공한다.

다나파버암연구소와 브리검여성병원 암센터는 전화를 통해 자신보다 먼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의 조언을 받을 수 있도록 일대일 프로그램이나 자신과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른 보호자를 연결해주는 가족 연결 프로그램 등 자체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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