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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백신 공급 불평등...파멸적인 '도덕적 실패' 피하려면[시민건강연구소 서리풀 논평] 지식재산권은 신성 불가침이 아니다

[라포르시안] 한국도 코로나 백신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모양새다. 접종 속도를 올리기 위해 2차 접종용 비축분을 1차 접종에 앞당겨 사용한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다 (☞관련 기사 바로보기). 어떤 나라는 여름까지 충분한 정도로 접종을 마칠 수 있다는데, 아직 갈 길이 먼 우리로서는 당국과 국민이 모두 초조할 만하다.

작년에 무얼 했느냐며 다시 정부를 책망하는 소리가 나오고, 지금이라도 최선을 다하라는 다그침도 끊이지 않는다. 여론과 전문가의 요구, 이에 대한 정부의 반응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만하지만, 문제는 실용성과 효과가 아닌가. 요구하는 쪽이나 요구를 받는 쪽이나 결과를 장담하지 못하는 듯하다.           

가장 중요한 이유 한 가지는 코로나 백신 확보가 ‘대한민국’의 주권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영역이어서다. 여러 나라 사이에서 백신 확보를 위한 경쟁이 극심한데, 배분 권한은 백신을 만드는 회사와 소재지 국가가 독점한다. 사실, 미국이나 영국 안에서도 정치적 압력이 있으니 그 나라 정부도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하기 어렵다.

그뿐만 아니다. 우리도 백신이 필요하지만, 그 사이 인류가 직면한 고통과 백신의 필요성은 말 그대로 ‘미증유’의 사태다. 지금까지 백신 접종을 마친 사람의 80%는 단 열 개 나라에 속해 있을 뿐, 가난한 나라들은 2023년이 되어야 현대 과학의 성과를 누릴 수 있다는 전망이다 (☞관련 기사 바로보기).

백신이 부족하다니. 이처럼 건조한 숫자가 (세계보건기구가 말한 대로) ‘재앙 수준의 도덕적 실패(catastrophic moral failure)’의 결과라면 (☞관련 기사 바로보기), 이는 당혹을 넘어 분노의 대상이다. 또는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무감각한 우리 자신의 실패라고 할 것인가.

지금 드러나는 이 백신 ‘스캔들’을 왜 도덕적 실패라 부르는가. 한 사회에서 접종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공중보건 시스템과 다른 사회적 기반(예를 들어 운송이나 보관)도 필요하지만, 이번 사태의 시작은 백신 생산과 공급에 있다. 그런데 그 백신 생산과 공급이 바로 ‘도덕적 실패’의 진원지다.

아예 처음 겪는 것도 아닌바, 국제적으로 진작 에이즈 치료제와 신종플루 백신 공급에서 경험한 것이다. 건강과 생명에 직결되는 의약품을 필요한 모든 사람에게 공급하고 또 그럴 수 있어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 이를 실천하는 데 무엇이 가장 어려운 일일까? 바로 약품과 백신에 걸린 지식재산권 문제다.

코로나도 백신이 실용화되기 전부터 국제기구를 중심으로 지식재산권 문제를 논의했지만, 힘 있는 나라와 메이저 제약기업은 꿈쩍도 하지 않은 채 결국 오늘과 같은 사태를 맞았다. 한국에서도 몇 개 공장이 이미 백신을 생산하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생산 부족은 공장, 설비, 기술, 인력의 문제가 아니다. 거의 전적으로 ‘노우 하우’를 포함한 특허 또는 지식재산권을 독점하고 이전하는 문제다(☞관련 기사 바로보기).

미국의 시민단체 국제지식생태계(KEI)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이뤄진 백신 기술이전 계약 70건 이상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기술이전이 시작된 후 초도물량이 공급되기까지는 대개 6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다. 백신 플랫폼의 종류, 제조 단계와도 무관했다. 결국 현재의 백신 부족과 접종 지연, 그로 인한 추가적인 코로나19 확진과 사망은, 지적재산에 기초한 독점권을 절대 포기하지 않으려는 제약 산업과 그를 비호하는 고소득국가들이 만들어 낸, 피할 수 있었던, 인위적인 재난인 셈이다.

미리 준비하지 못한 것은 지난 일이라 치자. 지금이라도 지식재산권(그리고 그 근원으로서의 사유재산의 신성함)의 ‘신화’를 돌파하면 백신 생산을 빠른 속도로 늘릴 수 있고, 결과적으로 세계의 팬데믹 대응은 훨씬 더 쉬워진다. 정확하게는 정부가 대응을 잘하는 과제가 아니라 사람들의 고통을 줄이는 과제다.

백신을 통해 확진자와 사망자를 줄이는 것, 그 숫자 너머에 인류가 겪는 고통을 결정적으로 줄인다는 진실이 있다. 지금 우리를 포함한 인류 모두에게, 그 모든 국민국가와 그 정부에, 이보다 더 중요한 도덕적 의무가 어디에 있나?

늘 비슷한 문제에 봉착하지만, 이 일만큼 국가권력만 할 수 있는 일이 드물다. 당장 백신을 확보하기 어려운 저소득국가는 말할 것도 없지만, 백신 확보 ‘전쟁’을 벌이는 힘 있는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한정된 자원(백신)을 배분하는 게임을 넘어 게임의 법칙을 바꾸는 일에 나서야 한다.       

한국도 예외가 될 수 없다. 한국에는 아스트라 제네카 백신을 생산하는 공장이 있으며, 앞으로 다른 백신을 생산하기로 계약했다는 보도자료도 여럿이다. 하지만, 이런 ‘생산체제’가 한국의 백신 확보와 접종에는 크게 관련이 없다는 사실. 이런 역설이 한국 안에서 코로나 백신에 대한 관점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기대하기는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첫째 과제다. 국내에서 백신 확보에 애를 먹고 있으니, 이게 우리 일이기도 하다는 점, 그리고 기존 구조를 ‘혁신’할 필요성을 조금은 알게 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간접적으로 국가와 정부에 촉구하고 떠미는 일이다. 시민사회단체가 지난 2월 말에 발표한 요구 안 중 몇 가지를 강조한다(☞관련 자료 바로보기).

1) 코로나19 백신의 공급량을 최대로 늘리기 위해 코로나19와 관련된 의료제품의 무역관련 지적재산권 협정(TRIPS)을 일시 유예하자는 제안에 찬성을 요구합니다.

2) 전 세계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국내 기업과 연구기관이 국민의 세금으로 개발한 백신 및 치료제 기술과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도록 WHO의 기술접근 풀(C-TAP)에 참여하겠다는 약속을 요구합니다.

3) 백신 생산을 최대화해야 합니다. 국내 위탁 생산시설의 생산능력을 늘리기 위한 노력에 정부의 지원을 최대한 확대하도록 요구합니다.

[알립니다] 본지에서는 시민건강연구소의 '서리풀 논평'을 매주 게재합니다. 시민건강연구소는 '건강과 보건의료에서 최선, 최고의 대안을 제시하는 싱크탱크' '진보적 연구자와 활동가를 배출하는 연구공동체'를 비전으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시민건강연구소 홈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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