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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포스트 코로나’, 지금 무엇을 하는지가 결정한다![시민건강연구소 서리풀 논평] ‘포스트 코로나’ 준비가 급하다

[라포르시안] 한때 ‘뉴노멀’이라는 말이 유행하더니 어느새 잠잠하다. 코로나19 유행이 생각보다 길게 가고 언제 어떻게 끝날지도 불확실하기 때문일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라 불러도 현실감이 생기지 않는 것은 매한가지.

하지만 우리는 이제야말로 포스트 코로나를 준비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준비’가 마땅치 않으면 이행, 전환, 적응, 개혁, 그 어느 말이라도 좋다. 코로나19가 변화 과정이라는 점과 진보의 계기라는 점에 주목하면, 지금이 곧 개인 삶과 사회, 이를 둘러싼 ‘세계’의 새로운 틀과 양식을 찾아내야 할 때다.

다음이 아니라 지금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그 무엇보다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가 포스트 코로나 체제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연관성 정도가 아니라 결정한다. 현실이 과거의 축적 결과이듯이, 미래 또한 오늘 현실이 쌓인 결과물이 아닌가. 현실이 미래에 개입해 벗어날 수 없는 세계를 강요할 것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적극적으로 뭔가 쌓아 가는 것보다 어떤 이유든 무엇을 하지 않는 것, ‘부작위’에 주목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무엇인가에 개입하지 않으면 기존 관계와 체계가 그대로 지속하고, 결국 원하지 않은 어떤 결과를 빚어내지 않는가.

최근의 대표 사례는 서울과 부산의 시장 선거 과정이 아닌가 싶다. 미래 지향보다는 퇴행이라는 평가가 압도하는바, 유권자의 관심과 정치적 의지는 그 말썽 많은 부동산과 신공항 따위에만 쏠린다. 아니, 시민의 욕망을 탓하기 전에 현실 정치와 정치인이 부추기고 앞장서니 포스트 코로나를 고민할 민주공화국의 정치는 없다.

결과도 마찬가지다. 여야 구분 없이, 출마자가 약속하는 세계가 이루어지면 뉴노멀이 아니라 완전히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까. 세계 모든 이들이 관심을 두는 포스트 코로나 체계의 과제와는 거리가 멀다. 예를 들어 기후위기의 도전은 지금 논쟁 중인 부동산과 개발 따위와는 정반대 방향이니 시간은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사태를 탓하자면 일차로 정당과 정치인의 책임이 중하다. 지금으로서는 비관적이지만 그래도 또 부탁한다. 그 허술한 ‘한국형 그린 뉴딜’이라도 좋으니 한국의 거대 도시가 어떻게 포스트 코로나 체제로 전환할지 약간의 실마리라도 제시하기 바란다.

포스트 코로나의 또 한 가지 축, 경제와 산업은 어떤가. 코로나가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세계 경제와 산업, 소득과 일자리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또는 달라져야 하는지 논의가 분분하지만, 한국은 조용하다. 어느새 그린 뉴딜이나 국제적 ‘서플라이 체인’ 정도의 논의도 사라졌다. 준비라면 우리 사회가 어떻게 과거 좋았던 시절로 돌아갈지 그 이상을 묻지 않는다.

여전히 ‘올드 노멀’이 대세인 상황. 즉,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 수출, 대기업, 규제 완화, 제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바이오 신약 등이 포스트 코로나도 장악할 전망이다. 사실 몇십 년째 모양만 조금씩 달라졌지 이들의 지위는 변하지 않았다.

형식적으로 포스트 코로나를 말하지만, 더욱 심해질 소득과 일자리 불평등에는 아무런 구상도 없다. 코로나 위기를 핑계로 일자리가 더 ‘자유’로워지고 소득 구조는 더 불평등해질 때(관련 기사 바로가기, 관련 기사 바로가기 ), 그것이 구조가 되는 포스트 코로나는 결국 새로운 차원에서 고통의 세계다.    

보편적 고용보험이든 기본소득이든 또는 연금 개혁이든, 새로운 세계에서의 경제적 안정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시장 원리 강화와 개인 책임을 토대로 하는 ‘그들만의 개혁’이 아닌, 사람을 살리는 경제 구조를 준비해야 한다. 요구하건대, 적어도 진지한 논의라도 시작해야 할 때다.

국내와 국제 모두 불평등과 부정의가 위세를 떨치는 점도 큰 걱정이다. 코로나 팬데믹을 ‘예외 상태’로 간주하고 불평등과 부정의를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용인하는 것이 더 큰 문제인지도 모른다. 당연하다는 인식을 넘어 수용하는 것, 나아가 포기하고 무력한 것이 포스트 코로나의 질서로 이어지지 않을까 두렵다.

한국의 코로나 상황에서 노인, 장애인, 홈리스, 이주 노동자를 차별하고 배제하는 사태는 코로나 이후 ‘구조적 불평등’으로 확장할 불씨를 품고 있다. 백신 배분에서 나타나는 글로벌 불평등과 부정의, 그리고 대응 과정에서 불거진 백신 민족주의는 이미 구조로 굳어지기 시작했고 길게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코로나 팬데믹과 직접 관련이 있는 한 가지 세부 과제를 덧붙이자면, 보건과 의료는 특히 포스트 코로나 체제의 ‘지체성’을 주목해야 한다. 지금 하거나 되는 일이 거의 그대로 포스트 코로나를 결정할 것인바, 문제는 시간 간격이니, 오래 걸리고 결과도 늦다.

지금 바로 병원 하나를 짓기로 해도 실제 일이 되는 데는 5~6년 이상 걸리고, 의대 입학 정원을 늘려도 실제 전문의가 늘어나는 데는 10년이 넘게 걸리는 법. 올해 예산에서 공공보건의료 강화를 찾을 수 없는 사태는 벌써 몇 년 전부터 그렇게 되게 된 것이다. 한 마디로, 지금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포스트 코로나란 아예 존재할 수 없다!

미래가 중요한 만큼 현재의 실천이 관건이다. 코로나가 끝나기를, 상황이 좀 더 분명해지기를, 어느 정도 회복한 후에... 이런 조건이 있는 한 포스트 코로나는 올드 노멀과 현상의 연장일 뿐이다. 포스트 코로나를 지금으로 당겨와야 하며 그 체제를 미리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 각자가 할 수 있는 ‘현재’ 실천도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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