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내 잇단 폭행 사건에 진료거부권 명문화 요구…복지부는 부정적인 입장

의료계를 중심으로 의사가 진료를 거부할 수 있는 상황을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노환규 회장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의료진이 환자의 진료를 거부할 수 있는 '정당한 이유'에 대해 구체적이면서도 포괄적인 사유를 의료법에 명기할 수 있도록 의료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언급했다.

노 회장의 이 같은 발언은 최근 환자가 의사를 폭행하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현행 의료법 제15조는 '의료인은 진료나 조산 요청을 받으면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의료인이 진료를 거부할 수 있는 정당한 이유가 구체적이지 못하다는 데 있다.

법무법인 엘케이파트너스 이경권 변호사는 "복지부에서는 의료법에 정당한 사유를 명시하지 않고, 유권해석 형태로 규정하고 있는데 그마저도 너무 뻔한 내용이라 큰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복지부가 제시한 진료거부에 대한 정당한 사유는 ▲의사가 부재 중이거나 신병으로 인해 진료할 수 없는 상황인 경우 ▲의사가 타 전문과목 영역 또는 고난도의 진료를 수행할 전문지식 또는 경험이 부족한 경우 ▲환자가 요구하는 검사나 투약을 의사의 의학적 판단과 양심상 받아들일 수 없는 경우 등 7가지 상황이다.

이마저도 최종적인 위법 여부의 판단은 사안별로 법원 판결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의료계가 필요로 하는 것은 의사의 지시를 따르지 않거나 진료실에서 폭력이나 폭언을 일삼는 환자에 대한 진료거부권이다.

충남도의사회 송후빈 회장은 "진료실에서 폭력적인 언행을 하거나 의사의 지시에 따르지 않는 환자에 대해 진료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며 "의료계가 백번 양보하더라도 틀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한의료윤리학회 최보문 회장(가톨릭의대 교수)은 "영국의 경우 응급실 앞에 폭력을 행사한 환자 리스트가 붙어 있다. 이들에 대한 진료 거부를 공고하는 것"이라며 "영국과 우리의 의료시스템이 다르지만 우리나라에도 '좋은 환자(Good patient)' 개념이 도입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의료소비자인 환자들도 폭행이나 폭언을 일삼는 환자에 대한 제재는 필요하다는 반응이다.

전주에 거주하는 소모씨(교수)는 "환자의 폭력을 감수하면서 치료를 해야 한는 의사의 고충을 이해할 수 있다"면서 "환자의 폭력이 의도적이고 과도하다면 규정을 마련해 제재하는 것도 예방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에 사는 박모씨(회사원)는 "폭행을 일삼는 환자에 대한 제재는 필요하지만 관련 규정은 의사와 환자가 동시에 만족할 수 있는 선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한쪽으로 치우치면 사회적 갈등만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복지부는 의사의 진료거부권을 구체화하는 것에 대해 소극적인 입장이다. 

복지부 의료정책과 관계자는 개인적인 의견임을 전제로 "정당한 사유를 유병형별로 구체화할 계획은 아직 없다. 변수가 워낙 많기 때문에 정당한 사유를 정형화하는 일이 쉽지 않다"며 "지금처럼 사안별로 위법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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