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의 후진국형 간호인력 개편안에 반대"…간호대 학생들, 간호협회 미온적 태도에 불만

보건복지부의 간호인력 개편안 철회를 요구하며 간호사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국민건강권 수호를 위한 간호사 모임’은 지난 18일 오후 7시 서울역 광장에서 복지부의 간호인력 개편안 철회를 요구하며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이날 촛불문화제에는 간호학과 교수, 현직 간호사, 간호학과 학생 등 7,000여명(경찰 추산 3,000명)이 참여했다.

간호사 모임 김소선 공동대표(세브란스 간호부원장)는 “전국의 간호사, 간호대 학생, 간호대학 교수 및 가족이 모여 환자 안전을 위협하고 국민건강권에 악영향을 미치는 복지부의 간호인력 개편안의 문제를 알리고자 한다”고 촛불문화제를 개최 이유를 설명했다.

김 대표는 “우리는 순진하게도 복지부의 정책에 따라 지난 5년간 간호를 전공하는 학생 수를 늘려왔고 간호대학을 2015년까지 4년제로 일원화하기로 했다”며 “이런 상황에 갑자기 복지부가 간호인력을 개편하겠다며 2년제 대학에서 1급 간호실무인력을 양성하겠다는 것이 웬 말이냐”고 지적했다.

그는 “중소병원을 비롯한 의료기관의 간호인력 부족과 간호사 처우 개선 문제는 새로운 간호보조인력을 만들어 투입해서 해결될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며 “복지부의 후진국형 간호인력 개편안을 반대하기 위해 촛불을 들고 맞서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직 간호사들의 발언도 이어졌다.

중소병원에서 근무하는 한 간호사는 현장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평택굿모닝병원에서 근무하는 이 간호사는 “중소병원은 간호사의 근무여건이 열악해 항상 간호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다”며 “그로 인해 간호사 한 명이 담당해야 할 업무가 늘어나 간호보조인력이 해야 할 일까지 맡고 있어 환자의 의료적 요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을 통해 간호조무사를 간호사로 승격시키고 이들에게 간호 업무를 맡기는 것은 환자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서울아산병원에서 6년째 근무하고 있다는 한 간호사는 “간호학과에서 4년을 공부하고 6년째 현장에서 일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다”며 “의료의 질은 단순히 1~2년간 간호교육을 받는다고 해서 가능한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환자를 간호해본 경험이 쌓였다고 해서 전문지식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며 “간호조무사가 경력이 쌓였다고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간호사가 된다는 발상은 진정으로 환자를 위한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간호학과에 재학 중인 학생들의 발언도 이어졌다.

울산대 간호학과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은 “복지부가 간호인력 개편안을 추진하기 전에 간호인력이 부족한 원인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며 “왜 전체 간호인력의 57%인 12만명만이 현직에서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는지 원인을 조사하는 것부터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2년제 양성과정을 통해 배출한 사람들이 과연 간호인력으로써 자격이 있을지 의문이다”며 “복지부는 간호인력 확보를 위해 무엇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인지, 간호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확실한 방안은 무엇인지부터 고민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특히 간호대 학생들은 대한간호협회의 미온적인 대응과 불통행정에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촛불문화제에서 만난 경희대 간호대학교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은 “간호단독법이 간호계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간호협회 차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공청회 등을 통한 설명을 제대로 해주지 않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세대원주캠퍼스 간호학과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은 “협회는 정책을 추진할 때 학생들을 끌어안아야 하는 존재로 보지 않는 것 같다”며 “정책 추진에 앞서 학생들과의 면담이나 공청회가 필요한데 협회는 무조건 호응하고 지지해주기만을 원한다. 협회는 매번 우리의 의견을 무시하고 묵살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날 촛불문화제에서는 간호인력 개편안 철회를 지지하는 시민단체의 발언도 있었다.

건강세상네트워크 조경애 고문은 “솔직히 시민단체에서는 그동안 간호인력 개편안이 의료인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복지부가 추진하는 정책으로만 알고 있었을 뿐 관심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하지만 최근 환자의 건강과 안전, 의료의 질을 저하시키는 정책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고백했다.

조 고문은 “환자와 시민, 의료인이 반대하는 정책을 왜 강행하려는지 모르겠다”며 “복지부는 국민과 간호사를 우롱하고 무시하는 정책을 중단하고 의료기관에 더 많은 간호인력을 배치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직무유기로 고발하겠다”고 말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 우석균 정책실장<사진>은 “우리나라 병상당 간호인력의 수는 OECD 평균의 25%이고 스웨덴과 비교했을 때는 1/8에 불과해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의 근속년수가 고작 2.7년 밖에 안 되는 것”이라며 “정부가 나서서 간호인력을 확대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도 모자랄 판에 간호인력 개편안으로 실무간호인력을 양성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간협 "간호인력 개편안 대안으로 '간호단독법' 제정 추진"한편 간호협회는 복지부가 제시한 간호인력 개편안을 놓고 간호계의 반발이 거세지자 대안적 방안으로 '간호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간협은 지난 1일부터 '간호법 제정 100만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간협에 따르면 이달 18일 현재까지 간호법 제정에 서명한 간호사는 총 10만861명에 달한다.

간협 백찬기 홍보국장은 지난 18일 기자와 통화에서 “간호계에서는 40여년 동안 개정이 이뤄지지 않은 의료법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높다”며 “이런 상황에서 실질적으로 간호사의 권익을 높일 수 있도록 간호단독법을 제정해 간호사와 간호조무사의 업무를 명확하게 구분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 국장은 “허울뿐인 간호인력 배치기준을 강화시켜 의료기관이 간호사 법정 인력기준을 지키게끔 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 간호단독법 제정이 필요하고, 복지부의 간호인력 개편안의 대안으로 추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간호사 모임 측은 간호단독법 제정에 부정적인 입장이다.간호사 모임은 “간호대학 4년제 학제 일원화를 간협의 가장 큰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며 “하지만 아직도 4년제 간호대학으로 전환하지 않은 3년제 대학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한 채 또 다른 학제인 2년제 실무간호인력 양성을 검토하며 간호법을 만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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