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과장보도 창궐로 혐오와 공포 증폭, 사회적 갈등 유발
"추측성 기사나 과장된 기사 국민들에게 혼란 야기"

[라포르시안]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신종 감염병의 '팬데믹(pandemic)'보다 '인포데믹'(infodemic)'이 사회적으로 끼치는 악영향이 더 크다는 인식이 커졌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를 매개체로 잘못된 정보가 감염병처럼 확산하면서 피로와 공포, 사회적 갈등을 초래하는 걸 목도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언론의 역할이 컸다.

국내 언론은 코로나19 사태 초기부터 근거없는 '감염병 포비아'를 퍼뜨리며 감염병 환자를 향한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는데 앞장섰다. 지난 1월 중국 우한 교민을 국내로 데려와 머무르게 할 격리수용 장소 선정을 놓고 일부 보수매체는 지역감정을 유발하는 내용을 보도하기에 급급했다. <관련 기사: 감염병에 대한 혐오·공포·차별 조장하는 나쁜 정치와 언론>

코로나19 방역 대책에 '비선 전문가그룹'이 관여한다는 터무니없는 의혹 제기는 물론 근거도 불명확한 미국 하원의원의 발언을 앞세워 한국형 코로나 진단키트의 신뢰성 논란을 초래한 보도도 나왔다. <관련 기사: '방역 비선'이라니? 정말 해괴망측한 주장이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발생했던 '의사 사망 오보'도 그대로 재연했다. 갑작스런 감염병 재난 사태를 맞아 수요가 급증하면서 공급부족이 심화되면서 불거진 '마스크 대란' 사태를 과장해 보도하고 대안도 없이 국민의 불안감만을 부추기는 보도도 난무했다. <관련 기사: '메르스 감염 의사 사망' 오보, 코로나19에서 그대로 되풀이한 언론>

왜곡·과장보도가 창궐하면서 신종 감염병에 대한 불안은 증폭됐고, 감염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방역망의 약한 고리를 찾아 흔들었다. 코로나19 사태는 바이러스 재난이 아니라 왜곡·과장보도가 창궐한 '보도 재난'에 다름없다.

뒤늦게 언론계에서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감염병 재난 사태에서 지켜야 할 '보도준칙'을 만들었다.

한국기자협회·방송기자연합회·한국과학기자협회 등 3개 단체는 최근 '감염병 보도준칙'을 제정해 발표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후원으로 지난 3월부터 2개월 가까이 논의를 해 마련했다고 한다.

감염병 보도준칙은 ▲전문 ▲기본 원칙 ▲권고 사항 ▲별첨 ▲부칙 등 5개로 구성했다.

보도준칙 전문은 "감염병이 발생했을 때 정확하고 신속한 정보는 국민의 생명 보호와 안전에 직결되는 만큼 무엇보다 정확한 사실에 근거해 보도해야 한다"며 "추측성 기사나 과장된 기사는 국민들에게 혼란을 야기한다는 점을 명심하고, 감염병을 퇴치하고 피해 확산을 막는데 우리 언론인도 다함께 노력한다"고 강조했다.

감염병 관련 기사를 작성할 때는 반드시 전문가의 자문을 구한 뒤 작성하도록 하고, 과도한 보도 경쟁으로 피해자들의 사생활이 침해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한다는 점도 언급했다.

감염병 보도준칙 중 '기본 원칙'

■  기본 원칙 

1. 감염병 보도의 기본 내용

가. 감염병 보도는 해당 병에 취약한 집단을 알려주고, 예방법 및 행동수칙을 우선적, 반복적으로 제공한다.
나. 감염병 치료에 필요한 의약품이나 장비 등을 갖춘 의료기관, 보건소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다. 감염병 관련 의학적 용어는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전달한다.

2. 신종 감염병의 보도

가. 발생 원인이나 감염 경로 등이 불확실한 신종 감염병의 보도는 현재 의학적으로 밝혀진 것과 밝혀지지 않은 것을 명확하게 구분하여 전달한다.
나. 현재의 불확실한 상황에 대해 의과학 분야 전문가의 의견을 제시하며, 추측, 과장 보도를 하지 않는다.
다. 감염병 발생 최초 보도 시 질병관리본부를 포함한 보건당국에 사실여부를 확인하고 보도하며, 정보원 명기를 원칙으로 한다.

3. 감염 가능성에 대한 보도 

가. 감염 가능성은 전문가의 의견이나 연구결과 등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보도한다.
나. 감염병의 발생률, 증가율, 치명률 등 백분율(%) 보도 시 실제 수치(건, 명)를 함께 전달한다.
다. 감염의 규모를 보도할 때는 지역, 기간, 단위 등을 정확히 전달하고 환자수, 의심환자수, 병원체보유자수(감염인수), 접촉자수 등을 구분해 보도한다.

4. 감염병 연구 결과 보도

가. 감염병의 새로운 연구결과 보도 시 학술지 발행기관이나 발표한 연구자의 관점이 연구기관, 의료계, 제약 회사의 특정 이익과 관련이 있는지, 정부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지지하는지 확인한다.
나. 감염병 관련 연구결과가 전체 연구중의 중간 단계인지, 최종 연구결과물인지 여부를 확인한 후 보도한다. (예: 임상시험 중인 약인지, 임상시험이 끝나고 시판 승인을 받은 약인지 구분해 보도)

5. 감염인에 대한 취재·보도

가. 불확실한 감염병의 경우, 기자를 매개로 한 전파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감염인을 직접 대면 취재하지 않는다.
나. 감염인은 취재만으로도 차별 및 낙인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감염인과 가족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고 사생활을 존중한다.
다. 감염인에 대한 사진이나 영상을 취재·보도에 활용할 경우 본인 동의없이 사용하지 않는다.

6. 의료기관 내 감염 보도

의료기관 내 감염 확산에 대한 취재·보도 시, 치료환경에 대한 불안감 및 혼란을 고려해 원인과 현장 상황에 대해 감염전문가의 자문과 확인이 필요하다.

7. 감염병 보도 시 주의해야 할 표현

가. 기사 제목에 패닉, 대혼란, 대란, 공포, 창궐 등 과장된 표현 사용
“국내 첫 환자 발생한 메르스 ‘치사율 40%’… 중동의 공포 465명 사망!”
“"해외여행 예약 0건"…여행·호텔업계 코로나19 이어 '코리아 포비아' 악몽”

나. 기사 본문에 자극적인 수식어의 사용
“지난 2013년 한국 사회를 혼란에 빠트렸던 ‘살인진드기’ 공포가 또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온 나라에 사상 최악의 전염병 대재앙을 몰고 온 메르스(중동호흡기질환) 의심환자가 또 발생했다.”
“'코로나19'에 박살난 지역경제..."공기업 역할해라"”

다. 오인이 우려되는 다른 감염병과의 비교
“야생진드기 에이즈보다 무섭네...물리면 사망위험 커”
“전파력 메르스 ‘1000배’…홍콩독감 유입 땐 대재앙”

감염병 보도의 기본 내용, 신종 감염병원 보도, 감염 가능성에 대한 보도 등 7개 기본 원칙도 담았다.

신종 감염병 보도 관련해 △발생 원인이나 감염 경로 등이 불확실한 신종 감염병의 보도는 현재 의학적으로 밝혀진 것과 밝혀지지 않은 것을 명확하게 구분해 전달 △현재의 불확실한 상황에 대해 의과학 분야 전문가의 의견을 제시하며, 추측, 과장 보도 하지 않기 △ 감염병 발생 최초 보도 시 질병관리본부를 포함한 보건당국에 사실여부를 확인하고 보도하며, 정보원 명기 원칙 등을 제시했다.

감염병 연구결과 보도 원칙으로는 새로운 연구결과에 있어서 연구자 이해 충돌(Conflict of Interest) 문제가 없는지, 연구결과가 전체 연구에서 어느 정도 단계인지를 확인한 후 보도할 것도 제시했다.

자칫 연구결과 보도가 특정 회사에 대한 일방적인 홍보로 이어지거나 정부 입장을 단편적으로 지지해 여론을 왜곡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하기 위해서다. 

실험실이나 동물실험 단계 치료제나 백신 관련 연구결과물을 놓고 당장이라도 임상현장에 적용될 것처럼 과장보도를 하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초기 단계 연구결과물을 마치 완료된 것처럼 과장하는 식으로 기사의 주목도를 높이는 일이 한국 언론보도에서 일상처럼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감염병 보도 시 기사 제목이나 본문에서 주의해야 할 표현도 제안했다.

감염병 재난 사태에서도 기사 클릭 수를 높이려고 '충격·경악·패닉·이럴수가' 같은 낚시질 제목을 달아 독자의 불안감을 조장하고, 감염병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갖게 하는 '제목장사'도 여전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기사 제목에서 패닉, 대혼란, 대란, 공포, 창궐 등 과장된 표현 사용을 자제하고, 본문에서는 자극적인 수식어 사용 자제를 보도원칙으로 세웠다.

권고 사항으로 감염병 발생시 각 언론사가 특별취재팀을 구성해 감염병에 대한 충분한 사전 교육을 받지 않은 기자들이 무분별하게 현장에 접근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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