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뷰] 정략적 발언으로 지역감정까지 들춰내고 언론은 논란 부추겨
혐오와 차별은 방역망 무너뜨릴 수도

[라포르시안] "문재인 정부가 전세기로 데려올 우한 체류 국민을 천안에 격리한다는 소식도 알려졌다. 천안시민은 물론 천안시와도 전혀 협의가 없었다고 한다. 충청도민들은 문재인 정부가 라돈에 이어 우한폐렴까지 도민의 의사를 무시했다고 크게 분노하고 있다." <1월 29일 자유한국당 김성원 대변인 논평>원

"중국인의 국내 입국을 금지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서명한 숫자가 50만명을 훌쩍 넘긴 만큼 불안과 공포가 커져있다. 그러나 대통령은 단순히 우한지역 입국자에 대한 전수조사만 추진하라고 지시하고 있다." <1월 28일 자유한국당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책 TF'  회의 심재철 원내대표 발언>

"상황이 악화되자 부랴부랴 전수조사와 교민철수를 지시한 대통령은 물론이거니와, ‘우한폐렴’이 아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불러달라는 청와대의 한가로운 인식은 더욱 처참하다....무능력과 무책임도 모자라 자국민의 안전보다 중국의 심기를 더욱 걱정하는 정부여당의 태도에 국민들은 불안함과 동시에 분통을 터뜨릴 수밖에 없다." <1월 28일 자유한국당 이창수 대변인 논평>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유행에 따른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미 국내에서 4명의 확진 환자가 발생했다. 호흡기 증상을 보여 조사대상에 포함된 유증상자도 190명에 육박한다.

그러나 감염병 유행의 공포보다 더 심각한 건 따로 있다. 근거없는 '감염병 포비아'를 퍼뜨리는 정치와 언론의 무분별한 선동이다.

특히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발원지인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 교민들을 국내로 이송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한 이후 보인 정치권과 일부 언론의 행태는 감염병 바이러스의 전파보다 더 우려스러운 지경이다.

감염병 유행이라는 국가적인 위기상황 앞에서도 4월 총선을 의식한 듯 쏟아지는 정략적인 발언과 근거없는 주장은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는 물론 해묵은 지역감정을 들쑤셔 정부의 방역망마저 허물지 모른다는 우려를 낳게 한다.

실제로 자유한국당은 우한 교민을 격리수용할 장소 선정을 놓고 지역감정에 불을 지피는 분위기이다.

김성원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지난 29일 논평을 통해 "천안시민은 물론 천안시와도 전혀 협의가 없었다고 한다. 충청도민들은 문재인 정부가 라돈에 이어 우한폐렴까지 도민의 의사를 무시했다고 크게 분노하고 있다"며 짐짓 지역여론을 빙자해 정부를 공격하고 나섰다.

사실 이 문제는 정부가 전세기를 보내 국내로 이송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이후부터 논란의 대상이 될 게 분명한 사안이었다. 하지만 중국 현지의 초기 방역 실패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유행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번졌고, 우한 현지의 의료시설이 더는 환자를 돌볼 수 없는 한계에 처했다는 점을 감안해 정부에서도 갑작스럽게 국내 이송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해당 지역과 충분한 논의를 갖기 힘든 불가피한 상황이란 점을 고려해야 한다.

정부는 우한 교민 격리수용시설을 선정하는 데 있어서 수용 가능성과 운영주체, 인근 의료시설 위치, 공항 접근성 등 나름의 합리적인 기준을 적용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이를 통해 최종적으로 아산에 있는 경찰인재개발원과 진천의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2개소를 지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지역구의 자유한국당 의원 측은 "정부가 여당 의원 지역구는 건드리지 못하고 만만한 야당 의원 지역구로 격리 시설을 옮긴 것 아니냐"는 정략적인 비난을 제기했다. 이런 인식을 드러낸 의원이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을 지냈다는 점도 놀랍다.

정치뿐만 아니라 언론도 감염병에 대한 과잉공포와 혐오, 그리고 차별을 조장하는 데 한몫하고 있다.

일부 보수언론은 우한 교민 국내이송과 격리수용을 놓고 지역감정에 불을 지피고 나섰다. 중앙일보와 조선일보는 해당 지역여론을 전하는 기사를 통해 지역감정을 유발하는 내용을 보도하기에 급급하다.

"인구 65만 도심에 우한교민 수용? 무슨 죄냐" 불안한 천안
“오기만 해라, 출입로 막겠다” 진천·아산 '우한 격리수용' 반발
與의원 지역구 피해 우리한테 보내나"… 아산·진천 野의원들 강력 반발

해당 기사의 댓글에는 해묵은 지역감정을 들먹이는 댓글이 줄을 잇고 있다. 

우한 교민 격리수용시설 선정에 대한 합리적인 대안 제시도 없이 지역여론을 앞세운 논란을 만들어내는 데만 골몰하는 모습이다. 이런 식의 논란은 감염병에 대한 지나친 공포와 혐오를 조장함으로써 바이러스 전파를 차단하기 위한 방역시스템을 약화시킬 뿐이다.

'우한 폐렴' 대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부르면 중국 눈치보기?

자유한국당은 청와대가 '우한 폐렴'이란 용어 대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란 명칭을 사용해야 한다고 당부한 게 중국 눈치보기라는 왜곡된 비난을 제기했고, 일부 언론은 이를 받아적어 논란을 키웠다.

특히 약사 출신이면서 박근혜 정부 때 식품의약품안전처장까지 지냈던 자유한국당 김승희 의원은 지난 28일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중국인 입국 금지 관련 청원이 50만명을 넘었지만 청와대는 묵묵부답이고, 기자단에겐 ‘우한폐렴이라고 하지 말고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라고 해달라’고 했다”며 “국민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하는 정부가 중국 눈치보기에 급급하지 않나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의견을 제기했다.

그러나 중국인 입국금지 조치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 2005년 채택한 국제보건규칙(IHR 2005)에도 어긋나는 것이고, 국가의 국적을 기준으로 입국을 금지하는 것은 국제법상으로 큰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더욱이 입국금지와 같은 조치가 방역에 효과적이라는 근거도 없다.

우한 폐렴이라는 명칭 대신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라는 명칭을 사용해야 하는 건 중국 눈치보기가 아니라 WHO가 마련한 감염병 명칭 가이드라인에 따른 조치이다.

이미지 출처: 세계보건기구(WHO)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이미지 출처: 세계보건기구(WHO)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앞서 WHO는 감염병 명칭으로 인해 환자들과 특정 지역, 동물 등에 부정적인 낙인 효과를 불러오는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2015년 5월 신종 감염병의 이름을 지을 때 참고할 수 있는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발표했다.

이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특정 지명이나 사람의 이름, 동물이나 음식물의 명칭,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치명적인, 대규모 유행' 등과 같은 과도한 공포를 불러올 수 있는 이름은 신종 감염병 명칭에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질병의 이름을 지을 때 '호흡기 질환'처럼 포괄적인 증상이나 주요 대상이 되는 환자나 역학, 환경(소년, 산모, 계절성, 여름, 해안성), 병원체 이름이나 추상적인 이름(알파, 베타 등)을 부여할 것을 제안했다.

실제로 WHO는 이 감염병의 공식 명칭으로 'Novel Coronavirus(2019-nCoV)'를 사용한다. 해외 주요 매체들도 관련 기사를 보도할 때 'new coronavirus', 또는 'coronavirus'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지 않고 '우한 폐렴' 대신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부르는 게 중국 눈치보기라고 지적하는 건 합리적 비판을 넘어선 과도한 비난이다.

무엇보다 질병의 명칭이 해당 질환자들에게 사회적인 낙인 효과를 불러올 경우 방역에 대한 협조를 이끌어내기 어렵고, 또한 적극적인 치료 의지를 꺾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확산을 막기 위해 인적·물적자원을 총동원하고 모든 사회적 역량을 집중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런 식으로 감염병에 대한 지나친 공포와 혐오, 차별을 조장하는 정치와 언론보도는 멈춰야 한다.

감염병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촘촘해야 할 방역망에 큰 구멍을 뚫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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