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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터뷰] "왕진 다니는 의사가 꿈이었는데 지금도 변함없어"김현집(서울척병원 명예원장, 신경외과 전문의)

[라포르시안] 김현집 서울척병원 명예원장은 분당서울대학교병원 뇌신경센터장을 거쳐 척추센터장까지 역임하며 척추 명의로 유명하다. 지난 수십 년간 목디스크 치료의 권위자로 인정받으며 척추질환 환자 치료를 활발히 이어왔다. 의사들이 가족들의 척추 치료를 맡기고 싶어하는 명의로 주저없이 그를 꼽는다.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정년퇴임 후 지난해 7월 서울척병원 명예원장으로 자리를 옮겨 환자 치료를 이어가고 있는 김현집 명예원장을 만났다. 

- 정년 후 서울척병원 명예원장으로 옮긴 이유가 궁금하다.

“분당서울대병원은 서울대 의대를 입학한 이후부터 50년 넘게 동고동락한 곳이다. 정년을 맞고 7년 더 근무했다. 서울척병원으로 옮긴 이유는 평생을 걸쳐 경험한 환자 진료와 소통 방식을 젊은 후배 의사들과 공유하고 싶어서다. 지금은 매주 화·수·목 컨퍼런스에서 환자 진료 경험들을 후배들과 공유하고 있다. 컨퍼런스에 참석하는 후배 의사들의 출석률이 예전보다 높아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 서울척병원에서 직접 진료를 보고 있나.

“일주일에 외래 진료는 오전에 두 타임을 본다. 물론 수술도 함께 병행하고 있으며, 환자 만족도는 좋은 편이다.”

- 신경외과를 선택한 계기가 궁금하다.

“인생을 사는데 있어서 사소한 것이 진로를 많이 바꾼다. 의과대학 본과 1학년 때 가장 좋은 성적이 신경세부학이었다. 또한 당시 취미활동으로 야구를 했는데, 신경외과 선배들이 많았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신경외과 의사가 된 것 같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신경외과 전문 교수들이 많지 않았다. 지금은 분야별로 전문의가 분업화 돼 있지만, 당시에는 분업화가 이뤄지지 않아 뇌종양 등 이것저것 다 봤다. 그러다 점점 전문의 시스템이 자리잡으면서 척추 분야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척추 분야는 1990년부터 본격적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척추는 뇌종양, 뇌출혈처럼 시간을 다투는 분야는 아니다. 예전에는 내시경 장비가 없어서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못했지만 요즘 후배들은 좀 더 체계적으로 내시경 공부를 하는 것 같다. 그런 부분은 예전 진료환경과 많이 달라진 것 같다.”

- 환자를 오랫동안 진료하면서 갖게 된 원칙과 철학이 있다면.

“의사는 환자와 충분한 대화를 가져야 한다. 보통 의사들은 X-레이와 MRI를 찍고 수술 여부를 결정한다. 그러나 모든 환자가 다 똑같진 않다. 중요한 것은 그 환자에 맞는 맞춤치료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X-레이만 보고 판단하면 뜬구름 잡는 치료를 할 수 있다. 한 마디 수술할 것을 여러 마디 수술하는 과오를 벌일 수도 있다. 수술은 환자와 충분한 진료 시간을 두고 결정해도 늦지 않다. 척추 환자는 위급한 교통사고 환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 반드시 허리 수술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면.

“모든 척추병원의 공통점은 비수술 요법을 권장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신경 증상이 심해 스테로이드 주사를 투여해도 통증이 가라앉지 않으면 수술을 검토해야 한다. 수술은 매뉴얼에 따라 진행하면 된다. 신경조직이 눌러서 마비가 오면 빨리 수술해야 한다. 목은 중추신경이 지나가기 때문에 한번 상하면 돌아오지 않는다. 디스크가 터져 나와 X-레이 상으로는 상태가 심한데, 신경 마비가 없는 경우가 있다. 그건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흡수 될 수 있기 때문에 수술은 안 해도 된다.”

- 100세 시대 척추 건강관리 방법이 있다면.

“네발로 걸어 다닌 동물은 디스크가 거의 없다. 최근 반려동물 애견가들이 늘면서 집에서 강아지가 예쁘다고 두발로 걷게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다 보면 반려동물도 디스크 현상이 늘어난다. 척추 건강법은 꾸준한 허리 복부근육 강화이다. 여기에 비만이 되면 그 무게가 모두 허리로 온다. 체중 조절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50여 년간 진료해 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다면.

“1973년 레지던트 1년차 때다. 한 환자가 3살짜리 딸과 함께 교통사고로 거의 식물인간으로 상태로 들어왔다. 그 환자는 불행하게도 결국 사망했다. 그 당시 3살이던 딸이 지난 2010년 37년 만에 분당서울대병원으로 찾아왔다. 당시 환자의 어머니가 그때를 잊지 못하고 나중에라도 선생님을 찾아뵙고 감사의 인사를 전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때 눈물이 울컥했다. 현재 그 딸은 경기도 용인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더 고마운 게 그 딸이 올해 5월 정년퇴직을 한다고 하니, 마지막으로 인사드린다고 다시 찾아왔다. 정말 마음이 찡했다. 평생 이 환자 가족을 잊지 못할 것 같다.”

- 어떤 의사로 남고 싶은가.

"어릴 때 꿈은 왕진 가방을 들고 다니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전문의 시스템이 안착되다 보니 이런 꿈을 이룰 수 없었다. 지금도 왕진 다니는 따뜻한 의사가 되고 싶은 마음은 변함이 없다."

조필현 기자  chop23@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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