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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일본 경제보복 대응 편승한 반노동·규제완화 경계해야[시민건강연구소 서리풀 논평] 누가 왜 ‘경제위기론’에 편승하는가

[라포르시안] ‘위기’ 담론은 언제나 힘이 있다. 경영자를 가르치는 컨설턴트의 금과옥조 한 가지는 구성원에게 늘 위기임을 강조하라는 것이라고 한다. 실제 위기인지 아닌지는 둘째 문제, 위기라고 인식하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위기론’이 무엇인가를 바꾸거나 누르는 힘이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일본발 ‘경제전쟁’ 그리고 이에 기댄 경제 위기론이 온 사회를 뒤덮었다. 그야말로 기-승-전-일본이라 할 정도니, 우리는 오히려 이 사태가 진정한 위기라고 판단한다. 노동에 대한 억압이 대표적 사례다. 언론 보도의 첫머리에 ‘이 와중에’라는 이유가 점점 더 늘더니, 급기야 ‘이 와중에 임금인상 요구’ 또는 ‘이 와중에 파업’까지 확대되었다(관련 기사 바로 가기). 

정말 위기인지, 위기라면 어떤 행동이 필요한지는 오늘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것이 정말 중요한 문제면 이미 정부가 내놓은 조치와 대책에 상당 부분 들어 있을 것으로 믿는다. 일부 사람들이 진단하는 대로 무슨 뾰족한 수가 없으면 더구나 말할 것이 없다.

문제는 이 ‘위기론’이 일부의 이익에 따라 왜곡되고, 남용 또는 악용된다는 점이다. 위기론이 만들어내는 다른 의미의 위기가 우리의 관심이라면, 이 새로운 위기의 원인은 분명하다. 일부 힘 있는 자들은 현재 상황을 활용하여 온갖 숙원사업을 관철하려 할 뿐 아니라 그나마 힘들여 이룬 약간의 사회적 성과조차 무력화하려 한다.

당장 나타난 압력은 그 유명한 숙원사업, ‘규제 완화’ 요구다. 승산이 충분하다고 판단했는지 모르지만, 안전과 관계가 있는 화학물질에 대한 규제를 풀라는 용감한 요구가 거세다(가습기 살균제의 피해자는 아직 눈물도 닦지 못한 상태다). 이에 질세라 대기업 집단에 대한 규제도 바로 뒤따라 나온다.

소재산업 육성의 발목을 잡아왔던 화학물질등록평가법(화평법),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상 각종 인허가와  심사 기간을 단축하기로 했다. 대기업·중소기업 상생협력모델의 경우, 현재 수도권정비계획법상 특별물량을 배정받아야 하는 수도권 공장 신설을 우선 지원하기로 했다. 또 재량근로제와 특별연장근로제를 허용하는 등 노동규제도 풀어주기로 했다. (관련 기사 바로 가기)

정부가 독자적인 소재·부품·장비 공급망 구축을 위해 대기업 계열사 간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완화한다. 대기업이 계열사에서 관련 품목을 조달하는 경우 규제 대상에서 제외한다. 6일 공정거래위원회는 정부의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대책' 일환으로 계열사간 내부거래를 대폭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관련 기사 바로 가기)

불거진 문제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합리적 인과관계를 알 수 없다. 드러난 문제의 원인과 큰 관계가 없고 앞으로의 대책이 되기도 어렵다. 화학물질 규제는 환경부부터 ‘규제 망국론’을 반박하지 않았던가. 과학적 근거가 없는 정치적 액션, 그것도 한 방향으로 편향된 보여주기에 지나지 않는다.
 
단기 대응도 그렇지만 장기 ‘준비론’은 좀 더 교묘하다. 일본의 수출규제를 명분으로 국제적 경제활동에는 전부 위기론이 등장하고 이에 대비한 준비는 전혀 새롭지 않다. 1998년 경제위기 이후 나왔던 갖가지 위기론, 특히 국가경쟁력과 성장동력 담론의 완벽한 재판이다.

여당 핵심 관계자는 "보건의료 분야 특성상 당장 일본 경제보복 여파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의 행보가 가을까지 갈 수 있다는 점에서 의약품과 의료기기 대체품에 대한 수가체계 개선과 함께 국산화 지원방안 등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 바로 가기)

재계 관계자는 "삼성의 주력 분야인 반도체가 중국 업체들의 추격과 일본의 수출규제로 적신호가 켜진 상황에서 차세대 먹거리 사업 또한 차질을 빚게 될 경우 한국경제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며 "시대착오적인 규제와 정치적인 이유로 혁신의 발목을 잡기보다는 삼성이 국내 경제에 기여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 바로 가기)

위기에 대한 규정을 그대로 인정한다 하더라도 상황과 공론을 장악한 지금의 위기 극복론이야말로 시대착오적이다. 주류는 노동과 안전과 보건에 대한 규제를 더 풀고 대기업과 재벌에 의존한 과거 경제성장 전략을 한층 더 강화하자고 말한다. 재계가 요구한다는 그 혁신의 요체 또한 몇 십 년째 거의 그대로다. 차이라면 노골적으로 국가 지원(주로 연구개발과 세금 혜택)을 요구하는 것이라 할까. 

지난 20년이 그랬던 것처럼(!) 구구절절 지나간 방책뿐이면 또 다른 위기, 혹은 더 큰 위기가 닥칠 공산이 크다. 일본이 수출규제로 한국 경제를 압박할 수 있는 핵심 이유 한 가지가 바로 한국 기업 생태계의 불공정성과 불평등 때문이라는 진단에는 무엇이라 답할 것인가. 국내용으로 안전과 건강 기준을 삼으면 그게 무슨 국제경쟁력이며 어떤 수입 대체란 말인가. 

새로운 경제 환경과 그에 따른 새로운 위기 가능성은 더구나 어떤 성찰도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 사회의 구조적 위기에 대한 감각은 하나도 없다는 뜻이리라. 현재 상황, 국제적 노동기준을 지키지 않아 교역에 제재를 받으면 그때는 또 무엇의 위기라 할 것인가?

EU(유럽연합)가 4일 한국 정부에 대해 ILO(국제노동기구)의 4개 원칙을 지키지 않고,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충분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며 '전문가 패널 소집'을 공식 요청했다....이는 FTA 상의 분쟁 해결 절차를 기존 '정부간 협의'에서 한 단계 격상한 것으로...전문가 패널의 권고 내용 여하에 따라서는 공식·비공식적인 무역 제재도 우려된다. (관련 기사 바로 가기)

위기는 서로 다른 권력이 충돌하고 힘을 겨루는 시간이며 공간이다. 환경과 조건이 바뀌지 않고 기존 질서를 위협하지 않으면 당초 위기라 부를 리 없다. 위기를 촉발하는(또는 규정하는)  환경, 조건, 질서가 정치적이니, 위기와 그 원인을 어떻게 규정하는지, 그리고 대안과 대응을 어떻게 설계하는지도 당연히 정치적이다. 그리고 권력의 (불)균형이 필연적이다. 

정치적으로, 일본의 수출규제로 촉발된 경제위기를 계기로 기존의 경제권력이 과거의 영화(?)를 회복하기 위해, 또는 최소한 지위를 유지하려고 온 힘을 다한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권력을 총동원한다고나 할까. 구체적으로는 규제완화를 필두로 전통적인 경제성장, 성장동력, 혁신성장론을 주류화하는 것이 목표라고 본다.

성공하지도 못한 소득주도성장, 공정경제, 노동권 보호, 건강과 안전, 공공성, 정의와 형평은 목소리가 더 낮아지고 힘이 빠질 것이다. 무력해지고 주류에서 더 멀어지는 것. 그런 의미에서 이 위기는 바로 더 나은 삶과 공동체를 지향하는 ‘가치의 위기’라 불러야 한다.

더 큰 문제는 지금 드러나는 방식으로는 새로운 위기가 나타나고 또한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유럽연합의 압박도 그러하지만, 노동의 위기, 불평등의 위기, 인권의 위기가 곧 경제의 위기인 시기가 코앞에 와 있다. 경제로 한정해도 새로운 위기를 피하기 어렵다. 

과거 모델의 미봉책으로는 위기를 막을 수 없다. 국가권력은, 또한 권력의 주체는 다시 당장의 피해와 대책을 앞세워 정치적 책임을 모면할 셈인가? 사람들의 말을 듣고 지혜를 모으되, 새로운 전망과 설득을 보태 당장의 이해관계를 극복해야 한다. ‘정략’으론 못하는 일, 좋은 정치가 해야 할 마땅한 역할이다.    

[알립니다] 본지에서는 시민건강연구소의 '서리풀 논평'을 매주 게재합니다. 시민건강연구소는 '건강과 보건의료에서 최선, 최고의 대안을 제시하는 싱크탱크' '진보적 연구자와 활동가를 배출하는 연구공동체'를 비전으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시민건강연구소 홈페이지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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