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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경제전쟁과 애국, 그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시민건강연구소 서리풀 논평] 경제전쟁과 애국, 그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라포르시안] 한국에서 일본 문제는 민감하다. 이 문제만큼은 ‘애국주의’인가 ‘세계시민주의’인가를 논쟁할 겨를도 없이 사회와 개인에 영향을 미치는, 그런 점에서 실재하는 현실이다. 마음과 감정도 어떤 변화를 부르는 힘이 있다는 것을 다시 깨닫는다.

이 문제의 근원과 이유, 경과, 해결 방법은 달리 다루어야 할 일이니 더 들어가지 않는다. 우리의 일차 관심은 일본이 경제를 무기로 삼았다는 데 있다. 어떤 이가 표현한 대로 경제 ‘전쟁’을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무기와 전쟁은 본래부터 경제였지만(군산복합체라는 말!), 이제 경제가 그 자체로 무기가 되었다.

그 경제란 어떤 경제인가? 왜 애꿎은 반도체를 물고 늘어지나, 이렇게 묻는 것은 소용이 없을 뿐 아니라 그런 경제 메커니즘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에 수요공급의 법칙과 생산자의 경쟁 논리가 끼어들 틈은 없다.

이번 사태를 두고 얻어야 할 역설적 교훈은 경제가 지극히 정치적이라는 사실이 아닌가 한다. 군수산업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이번에는 경제가 무기가 되는 바람에 경제를 활용하는 정치가 그대로 드러났다. 그에 대한 대응도 불가피하게 마찬가지다. 일본 상품을 사지 말자는 운동도 결국 경제를 통해 정치에 영향을 미치자는 것, 그 경제 또한 정치적 경제를 벗어나지 못한다.

정치적 경제는 돌고 돌아 경제적 정치로 이어진다. 자주, 때로는 무심코 쓰는 ‘정치경제’라는 말은 정치와 경제를 합쳤다기보다는 정치적 경제와 경제적 정치를 의미하는 것일 터, 사실 이렇게 나누기도 힘들 정도로 경제와 정치는 한 몸이다. 일본이 촉발한 이 시끄러운 분란이야말로 이런 정치경제의 전형이라 할 수 있겠다.

시작도 그렇다. 근원은 밀어두자고 했지만, 오늘 이 사태도 모든 것의 ‘경제화’에서 출발했다고 본다. 식민지배, 성노예와 착취, 강제징용과 강제노동을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것. 보상과 배상은 책임의 한 가지 방식에 지나지 않지만, 어느새 모든 책임을 ‘일원화’하고야 말았다. 우리가 “그것으로 어느 정도 되었다”라고 말하면 일본발 경제적 정치가 성공한 셈이다.

새삼 확인해야 할 관점의 문제. 하필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아서 기분이 나쁜 것이 아니다. 다른 어느 나라도 아닌 바로 일본이 성노예화와 강제징용의 책임자라 해서 마음이 분한 것이 아니다. 식민지배와 억압, 성노예화, 강제노동은 반인륜적이고 반인권적 범죄다.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중국, 그 어떤 나라가 했더라도 마찬가지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처벌과 책임도 이에 맞추어야 한다.

한일 경제전쟁의 정치경제는 복잡하고 다면적이나 지금 우리의 관심은 일종의 2차 효과, 국내 정치가 노골적으로 국내 경제를 동원하는 일이다. 이에 뒤질까 경제가 정치를 동원하는 것도 마찬가지. 청와대의 수석비서관이 계속해서 ‘전쟁’을 말하고 ‘이적’과 ‘친일’을 동원하는 것은 ‘통치’ 목적의 노골적 정치 행위라고 치자(관련 기사 바로 가기). 이번 기회에 모든 숙원사업을 해결하자는 국가권력과 경제권력의 경제화한 정치는 더 교묘하다.

“대표적 조치는 일본 수출 규제로 타격을 입은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부품 업종에 대한 특별연장근로 허용이다.....신속한 기술개발이 필요한 핵심 R&D 과제의 경우 예비타당성조사가 면제된다.” (관련 기사 바로 가기)

제목부터 지극히 정치적이다. ‘극일대책 총동원’이라니, 이에 반대하면 ‘친일’이라는 의미가 아닌가. 일본의 소재 수출 제한과 연장근로 허용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묻고 싶다. 예비타당성조사는 또 무슨 관계가 있는가. 기업과 자본의 숙원사업을 해결하려는 정치적 경제와 그래도 뭔가 대책을 내놨다고 하고 싶은 경제적 정치의 합작이다.

“업계에서는 세계 자동차 시장 위축과 중국 시장 판매 부진, 일본산 부품 수급 차질 가능성 등이 겹친 상황에서 노조가 파업에 나서면 치명상을 입을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련 기사 바로 가기)

여기도 정치적 제목이 붙었다. “이 와중에...”. 이제 모든 노동자의 요구는, 그것이 아무리 정당해도 친일과 반애국이 될 판이다. 곧 전쟁의 은유까지 동원될까 무섭다. 세계시장이라는 전장(戰場)에서, 기업이 애국 전사면, 내 몫을 요구하는 노동자는 뭐가 되는가.

경제전쟁과 극일 프레임을 활용(또는 편승)하려는 움직임까지 거세다. ‘기-승-전-일본’의 정서와 분위기가 급조한 논리 끝에는 급기야 전기료 감면과 세제 혜택 요구가 등장한다. 조만간 애국 마케팅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업계에서는 폴리실리콘 등 태양광 산업에 대한 전기료 감면이나 각종 세제 혜택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최근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관련 수출 규제에서 보듯이 핵심 소재와 관련한 높은 해외 의존도는 언제든 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바로 가기)

장담한다. 이번 사태가 조금만 더 지속하면 모든 논의와 정책은 ‘기-승-전-일본’이 굳어질 것이다. 일본의 수출 규제는 경제전쟁이 되고, 그리하여 ‘이 와중’은 소득, 불평등, 일자리, 혁신성장, 규제완화, 이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리라 예상한다.

그 토대는 진작부터 튼튼했으니, 어떤 이는 이번을 기회로 여길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예. 지난 4월에 식약처장이 국회에서 답변한 내용이다. 지금이라면 어떻게 말했을까?

“이러한 진료를 일본에서는 다 오픈을 하고 허용을 해 주고 있어서 1년에 1만 명 정도가 일본에 이런 줄기세포시술을 하러 원정을 가고 있습니다. 그거는 국익의 낭비이기도 하고, 우리나라 첨단바이오의약품의 신약개발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이런 시행착오가 다소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계속 전진해서 할 수 있어야,...” (관련 기사 바로 가기)

기왕 전쟁의 은유가 동원되었으니 이렇게 묻자. 이 전쟁의 진정한 승자와 패자는 누구일 것인가? 전쟁의 부담은 누가 지고 전과는 누가 가질 것인가? 모든 전쟁은 ‘총동원체제’를 주장하고 요구하며 강제하지만, 삼성과 평범한 시민은 부담, 피해, 전공, 결과의 모든 것이 다르다. 여행도 바꾸고 맥주와 과자까지 피하는 ‘애국 시민’에게 이 전쟁은 어떤 전쟁이고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혹시 부담은 사회화하고 편익은 사유화하지나 않을지 걱정스럽다.

직접적인 답이 되지는 않을 것 같으나, 다음과 같은 월러스타인의 말에서 교훈을 찾고자 한다. 조슈아 코언과 마사 누스바움이 편집한 책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 (오인영 옮김, 삼인 펴냄)에 포함된 글에서 따왔다.

“교육적으로 필요한 것은, 우리가 세계 시민이라는 것이 아니라 불평등한 세계에서 특별한 위치를 점하고 있음을 배우는 것이다. 또 공평무사하고 세계적으로 되는 것과 자신의 협소한 이익을 옹호하는 것은 서로 대립되는 태도가 아니라 복잡한 방식으로 결합되어 있는 태도임을 배우는 것이다.”

우리 각자가 “불평등한 세계에서 특별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부분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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