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찰 과정서 아기 안고있던 엄마와 신체접촉 이유로 고소당하기도…“취업제한 조치는 의료법서 별도 규정해야”

[라포르시안] 이혼남인 의사 A씨는 2011년 초 병원 근처 바에서 술을 마시다 아르바이트 여직원 B씨를 알게 됐다. 두 사람은 가게 밖에서도 만나 식사를 같이하고 서로의 고민을 얘기하는 사이로 발전했다.

그러던 어느날 A씨는 B씨에게 돈을 빌려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B씨의 어려운 사정을 알고 있던 터라 선뜻 180만원을 빌려줬지만, B씨는 돈을 갚지 못했다.

급기가 B씨는 A씨가 혼자 사는 아파트에서 가사도우미 역할이라도 하겠다고 자청했고, A씨가 이를 수락했다. 2011년 10월경 평소 B씨에게 호감을 갖고 있던 A씨는 집안일을 하는 B씨를 껴안고 키스를 시도했다. 하지만 B씨는 A씨를 뿌리쳤다. A씨는 당황했지만 B씨의 거절 의사를 받아들였다.

그 일이 있은 지 얼마후 A씨는 B씨가 자신을 고소했다는 사실을 통보받았다. 심한 배신감을 느낀 A씨는 B씨와 합의하지 않고 2012년 11월경 법원의 약식명령 벌금 300만원을 받아들였다.

이후 A씨는 의료기관을 개원하기 위해 보건소에 개설 신고를 했으나 보건소로부터 거절당했다. '아동청소년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의료기관 개설이 제한된 것이다. 아청법을 위반한 의료인은 10년간 의료기관 개설 및 취업이 제한된다.

▲ 2013년 의료인을 성범죄자 취업제한 직종에 추가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에 반발해 전국의사총연합이 환자로부터 성추행 오해를 피하기 위해 사용하자고 제안한 3M 길이의 청진기 모습.

위의 사례는 지난 30일 열린 경기도의사회 학술대회에서 장성환 변호사(법무법인 청파)가 소개한 내용이다. 장 변호사는 이날 '아청법 및 리베이트 쌍벌제의 덫'이라는 주제의 강연을 통해 아청법의 덫에 걸린 의사들의 사례를 소개해 관심을 끌었다.

응급실에 근무하고 있는 의사 C씨는 너무 바쁜 나머지 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진단을 위해 수차례 청진을 하다가 강제추행죄로 형사 고소를 당해 재판을 받고 있다.

이비인후과 개업의인 D원장은 이경을 이용해 아기의 귀를 진찰하던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아이를 안고 있던 엄마와 신체접촉을 하게 됐다. 그런데 아기 엄마는 D원장을 강제추행 혐의로 고소했다.

D원장은 재판에 넘겨졌으나 법원에서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처럼 아청법 시행 후 진료 현장에서는 본의 아니게 성추행범으로 몰려 취업제한 등의 불이익을 당하는 의료인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장성환 변호사는 "아청법의 입법 목적은 아동, 청소년을 성범죄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취업제한 대상 기관은 유치원, 학교, 어린이집 등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이었고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직접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 업무를 제한하는 것이었다"면서 "그런데 의대생 집단 성추행 사건과 진료실 성추행 사건 등으로 의료인에 대해 좋지 않은 여론이 일자 2012년 2월 법개정 과정에서 의료기관이 취업대상에 포함됐다"고 지적했다.

장 변호사는 "아동·청소년과 직접 관련성이 없는 의료인의 성범죄로 인한 의료기관 개설 및 취업제한 조치는 아청법의 입법 목적과 직접 관련성이 없고, 오히려 의료인의 자격 및 지위에 관한 사항이므로 의료법에서 규율하는 것이 법체계에 부합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의료인의 취업제한 조치는 의료법에서 별도로 규정하는 것이 타당하고, 취업제한이 적용되는 성범죄를 성인 대상 성폭력 범죄로 제한하고 그 대상도 분명히 해야 한다"면서 "특히 실무적으로 강제추행이 일반 성추행과 구분이 모호한 측면이 있으므로 악용의 소지를 고려해 강간 등 강력 성범죄로만 제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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