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건강연구소> 연구개발 예산 삭감, ‘긴축 체제’의 신호탄인가?

[라포르시안] 사상 최초로 국가 연구개발 예산을 줄인다고 한다. 비판과 반발이 이어지는 중에도 예상보다는 강도가 약한 것 같다. 해당 분야에서는 신진 연구자와 대학원생 지원이 끊긴다고 난리지만, 공적 재원으로 겨우 버티던 다른 분야 사업 중에는 아예 없어지는 것도 한둘이 아니다. 다들 곁을 돌아볼 여력이 없으니 저항의 연대도 쉽지 않은, 뼈아픈 모멸의 시대다.

관심은 누가 의도한 것처럼 좋지 않은 경제 사정으로 향한다. 연구개발 예산을 줄일 만큼 국가 재정 사정이 좋지 않나? 재정을 통한 ‘통치’는 여기부터 시작한다. 재정 건전성을 두고, 코로나, 복지 지출, 중국 경제 핑계에 전 정권 탓도 빠지지 않는다. 

경제가 나쁘니 세금을 걷을 기반이 취약하다는 것이 핵심 논리다. 이미 오류로 밝혀진 여러 경제 이론이 등장한다. 하지만 번지수가 틀렸다. 무엇을 설명하든, 지금 국가 재정 이야기는 정책과 경제가 아니라 정치이자 통치이다. 복잡하고 방대한 숫자와 지표가 등장하지만, 이것부터 ‘과학’이라는 인상을 심기 위한 정치적 행위다. 

재정 건전성이 진짜 문제라면 이럴 수가 없다. 세금을 거두기 어렵다면서 뻔뻔하고도 담대하게 세금을 깎아 주는 이율배반이 어떻게 가능한가. 이 정권의 감세는 아예 특정인이나 특정 세력의 민원을 해결하려는 목적이 아닐까 의심할 정도다. 법인세, 소득세, 종부세, 가업상속공제 등을 통한 감세 기조는 급기야 자녀 결혼 자금에 매기는 증여세까지 완화하려 한다. 전형적인 부자 감세와 계급 감세다. 

결국 재정 그 자체는 초점이 아니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국가 연구개발 예산안은 ‘긴축 재정’을 넘어 ‘긴축 경제’, 나아가 ‘긴축 사회’로 가기 위한 정치적 정지 작업이라는 것이 우리의 해석이다. 1990년대 말 IMF 경제 위기 이후 국가 연구개발 투자는 한국 경제의 성장 전략이자 한국민의 발전과 성장 욕망에 부응하는 통치 전략의 핵심이었다. 그런 연구개발 투자를 줄인다는 정책에 정치적 고려가 없다면 그것이 더 이상하다. 

대다수 국민이 지지했고 지금도 그런(이 또한 그동안의 국가 통치이자 그 결과라 할 수 있다) 연구개발 투자에 손을 대는 일대 ‘사건’의 효과는 무엇일까? 첫째, 다른 무엇보다 큰 정치적 효과는 그 어떤 예산 항목도 절대성을 주장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점이다. 재정 당국은 국가 재정에 대한 권력 독점을 완성하게 되었다.

국가 경제의 앞날을 좌우할 국가 연구개발 예산도 ‘낭비’와 ‘비효율’을 줄이고 집중하겠다는데, 어떤 예산이 칼날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는가. 예를 들어, 공공병원을 확충하는 데 예산을 달라?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 이런 예산을 확보하는 일은 더 힘들어질 것이다. 기존 예산을 ‘과감하게’ 삭감하는 일도 마찬가지, 전에 볼 수 없던 후퇴와 위축이 빈번해질 것이다. 

둘째, 재정의 효율성과 효과성이라는 가치가 더욱 강조될 것으로 예상한다. 무엇을 위한 효과성과 효율성인지는 뻔하다. 지금까지도 경제와 산업 효과 일변도였지만, 그 정도가 더욱 심해질 터. 예를 들어 공공성이 강조되어야 할 문화, 교육, 교통, 지역 등은 그야말로 ‘경제화’의 진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국가 자원 배분의 핵심 원리인 민주주의와 형평성은 명목조차 유지하지 못한다. 

재정을 명분 삼아 여러 형태의 민영화를 시도하고 촉진할 가능성도 크다. 가장 직접적으로는 국가 재산을 매각하는 것부터, 민간 위탁이나 공공-민간 협력과 같은 ‘은밀한 민영화’ ‘사실상 민영화’ ‘준 민영화’ ‘수동적 민영화’까지. 국가 재정이 개입해 민영화를 밀고 가는 가장 큰 기회가 바로 긴축이다. 

세 번째 ‘효과’는 복지 비용 등 사회적 지출의 감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다. 그 어떤 나라의 예산이든 재정 건전성을 앞세우는 한, 사실상 초점은 사회적 지출의 축소에 맞춰질 수밖에 없다. 정부의 재정 지출을 줄이는 것이 긴축의 목표라면, 보건, 복지, 교육, 문화 등 공적 지출을 빼고 무엇을 줄일 수 있다는 말인가. 

모두가 아는 공공연한 사실 한 가지. 연금과 건강보험 등 공적, 사회적 지출을 줄이는 것이 한국 자본주의 체제의 ‘숙원’이라는 점. 고령화가 진전됨에 따라 자본, 그리고 자본을 대변하는 국가권력의 불안은 이제 공포로 바뀌는 단계인 것처럼 보인다. 노인 소득과 돌봄 등에 필요한 사회적 지출을 어떻게 할 것인가? 긴축은 사회적 지출을 줄이는 데에 가장 중요한 기회일 수 있다. 

아마도 국가는 이제, 그리고 앞으로 긴축 기조를 정당화하고 이에 따른 재정 운용을 당연한 책임으로 ‘자연화’할 것이다. 세계 금융위기와 경제 위기 이후 서구 나라들에서 나타났던 ‘긴축 체제’를 구축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공적 지출의 증감과 그 폭은 영역별로 들쭉날쭉하겠지만, ‘일반적’ 경향은 장담하건대 축소와 정체, 그리고 이에 따른 민간 이전이라는 길을 갈 것이다.

다만, 어떤 사회가 사회적 지출 축소, 더 크게는 긴축에 대응하는 방향은 외길이 아니라는 점을 되새기고 싶다(☞관련 기사: <긴축은 죽음의 처방전인가> 서평). 그 때문에 다시 통치와 재정 정치, 그것에 대한 대응으로서의 시민정치를 생각한다. 그것은 권력의 관계이며, 어떤 정치공동체가 어디로 갈 것인지를 둘러싼 경쟁과 투쟁이다. 

적어도 지금은 경제 논리를 벗어난 사회적 지출이 설 자리는 그리 넓어 보이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사회권력의 힘이 그만큼 약하다는 뜻일 것이다. 단기간으로는, 그나마 조금 진전했던 사회적 지출이 정체하거나 일부 후퇴하고, 그만큼 공간은 민영보험 등 시장과 시장 원리가 채울 공산이 크다. 

위험하고도 좁은 길이 길게 남았다. 스스로 다짐하자면, 국가 연구개발 투자와 긴축을 둘러싼 국가 재정 문제를 특정 정치세력이나 개인 차원의 일로 보지 않으려 한다. 우연한 사건도 아니다. 사건에서 ‘국면(conjuncture)’으로, 지금 우리는 가능한 미래로서 긴축의 정치를 읽어내야 한다. 물론, 대대적 준비와 대항으로 연결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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