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건강연구소> 보건의료 노동운동의 ‘정치적 파업’은 계속되어야 한다

[라포르시안] 보건의료노조가 이틀간의 총파업을 종료했다. 민주노총 산하 타 노조와 한국노총은 물론, 시민사회단체, 진보정당 등 각계각층에서 연달아 지지를 표한 총파업이었다. 정부는 무시하기와 흠집내기 전략으로 일관했다. 대통령의 ‘불법 정치파업에 굴복 않겠다’는 메시지가 나오기 무섭게 노동부 장관과 복지부 장관이 같은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권력투쟁이라는 본질상 모든 파업은 정치적이다. 하물며 노동환경 개선과 시민의 건강보장을 위해 의료공공성 강화를 요구하는 산별총파업이다. 당연히 정치적이고, 정치적이어야 한다. 복지부 장관이 외면하는 의료공공성을 요구하는 노동자에게, 노동부 장관이 국민경제를 운운하며 단속하겠다 으름장을 놓는다. 무언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지 않은가?

정부가 ‘불법’으로 규정하는 ‘정치파업’은 정부에 요구하는 파업이다. 그 범위로 한정하더라도, 보건의료노조가 연초부터 밝혀온 총파업 핵심요구는 2021년 타결된 ‘9.2 노정합의’의 이행이었다. 합의문에 포함된 간호간병통합서비스 확대, 간호사 당 환자 수와 직종별 적정인력 기준 마련에 대해 수차례 중앙교섭을 진행했지만, 사용자 측은 ‘정부 승인 없이 수용 불가’를 고수했다. 정작 복지부는 노동조합법에 따른 합법적 쟁의행위에 대해 ‘업무개시 명령 검토’ 운운할 뿐, 노조와의 대화는 중단한 채 사용자 측인 병원장들과만 ‘긴급 상황점검회의’를 개최했다. 파업을 막을 책임의 방기를 넘어, 파업을 유도한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들 지경이다. 

이번 보건의료노조 총파업의 의미를 제대로 짚기 위해서는 역사적, 사회정치적 맥락을 살펴야 한다. 보건의료노조의 이번 총파업은 2004년 총파업 이후 19년 만에 열린 역대 최대 규모의 산별총파업이다. 보건의료노조는 한국 노동조합 역사상 최초로 1998년 기업별 노조 연맹에서 산별노조로 전환했고, 2004년에는 최초의 산별교섭을 타결했다. 2004년 당시 13일간 이어진 산별총파업은 사용자 측의 불성실 교섭으로 교착상태에 있던 산별교섭 타결에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한편 2021년 ‘9.2 노정합의’는 보건의료노조가 23년 역사상 최초로 쟁취한 노정교섭이다. 노정합의 타결에 따라 당시 미리 예고된 산별총파업을 막을 수 있었다. 

보건의료노조의 지난 역사에서 교섭과 파업 등 운동 전략의 공과에 대해서는 여러 평가가 있겠지만, 오늘 이 논평은 좀 더 원론적인 주제로 돌아간다. 보건의료 노동운동의 ‘정치적 파업’이 갖는 의미다.

두 가지 ‘비교’가 필요하다. 하나는 의사파업에 대한 정부 대응과의 간극이다. 지난 5월 간호법 반대를 내걸었던 의사협회의 집단휴진은 윤석열 대통령의 간호법 제정안 거부권 행사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나아가 지난 2020년 여름 의대정원 확대를 반대하는 수련의와 전공의 주도로 시작한 의사파업은 ‘9.4 의정합의’로 마무리되었고, 이를 이행하기 위한 정부와 의사협회 간 정책협의는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의정협의체’에서 ‘의료현안협의체’로 이름만 바꾼 채 지속되고 있다. 정부가 ‘공공의료 강화’ 대신 ‘필수의료 강화’를 정책 기조로 내세우면서 의사들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반면 ‘9.2 노정합의’의 경우 현 정부 출범 후 좀처럼 진척되지 않았다는 것이 노조 측의 평가다. 간호등급 차등제를 ‘간호사 1인당 실제 환자 수 기준’으로 개편하기로 한 내용, 간호간병통합서비스에 대해 참여를 희망하는 300병상 이상 급성기 병원에 전면 확대하기로 한 내용이 대표적이다. 이미 작년에 마련했어야 할 구체적인 로드맵을 2023년 7월 현재까지 내놓지 않으면서, 지난 4월 말 간호법 제정 무마를 위해 서둘러 발표한 <제2차 간호인력 종합 지원대책>에는 구체적인 추진계획도, 예산도 없이 이미 ‘9.2 노정합의’에서 규정한 방향성만 반복했다.

우리는 충분한 명분이 있다면 의사들도 단체행동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다만 명분과 명분이 대립한다면, 그것은 사회적 평가를 받아야 한다. 간호법 제정 반대, 의사인력 확충 반대라는 의사들의 명분이 간호인력 확충, 간호간병통합서비스 확대라는 보건의료 노동자의 명분보다 시민들로부터 더 후한 평가를 받을 리 없다. 정부 대응은 정확히 그 반대방향이라는 점에서 기존 권력불평등을 반영하고 또 강화하며, 민주주의에 위배된다.

다른 하나는 2004년부터 2023년까지, 산별총파업을 통해 보건의료노조가 요구하고 또 쟁취해 온 의제들의 지향이다. 먼저 이번 보건의료노조 총파업의 7대 핵심요구를 살펴보자.

1. 병원비보다 비싼 간병비 해결을 위해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전면 확대 
2. 직종별 적정인력기준 마련 및 업무 범위 명확화
3. 근무조별 간호사 대 환자 수 1:5로 환자 안전 보장
4. 의사인력 확충, 불법의료 근절
5. 공공의료 확충, 공익적자 및 회복기 지원 확대, 의료민영화 중단
6. 코로나19 영웅들에게 정당한 보상과 ‘9.2 노정합의’ 이행 
7. 노동개악 중단, 노동시간 특례업종 폐기

하나같이 개별 병원 노사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는, 산별교섭, 나아가 대정부, 사회적 교섭으로만 풀 수 있는 문제들이다. 노동환경 개선의 문제이자 시민의 건강보장 문제라는 점도 한결같다. 19년 전 총파업이 쟁취한 요구도 마찬가지다. 

1. 산별노조로서 처음으로 산별기본협약 체결
2. 환자권리장전·적정병실 확보·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노사정위원회 설치를 통해 의료공공성 강화 발판 마련
3. 보건의료산업의 주5일제 쟁취
4.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차별 철폐
5. 보건의료산업 최저임금제
6. 보건연대기금 설치
7.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고용안정대책

사용자가 아닌 정부를 대상으로 했을 때는 다를까? 2021년 ‘9.2 노정합의’에 담긴 ‘공공의료 강화’와 ‘보건의료인력 확충’이라는 두 축은 2021년 당시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공공병원과 보건의료 노동자가 처한 절박한 현실뿐 아니라, 의료공공성 강화를 통한 사회공공성 강화라는 보건의료 노동운동의 역사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보건의료만큼 노동자와 시민의 이해관계가 긴밀하게 연결된 영역도 그리 많지 않다. 그러므로 보건의료의 공공성 강화는 노동과 시민사회의 공동의 사안이며 민주적 공공성이 충만한 사람 중심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한 중요한 방향이다. 그리고 보건의료 노동운동의 ‘정치적 파업’은 이를 위한 선제적 외침이다.

정치경제적 기득권력이 기존 불평등 구조를 고착화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할 때, 노동운동은 집합적 권력을 통해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을 효과적으로 견제해 왔다. 하물며 건강, 생명, 안전, 삶의 질과 같이 인간 삶의 본질적 측면, 사회의 지속가능성과 관련된 문제라면 노동운동은 시민사회와 연대하여 이 문제를 보다 적극적으로 정치화하여야 한다.

건강과 보건의료를 둘러싼 ‘정치적 파업’이 여전히 중요하고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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