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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인·싸] 의료기기 재평가·갱신제, 안전성 입증 적정한가설영수(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법규위원회 부위원장)

[라포르시안] 우리나라도 의료기기 ‘재평가·갱신제’가 도입돼 일부 시행되고 있다. 재평가는 인증을 받아 판매 가능한 의료기기 중 시판 후 정보 등에 의해 문제가 발생했거나 문제 발생 우려가 있는 경우 안전성·유효성을 다시 평가하는 것을 말한다.

오는 2025년부터 유통되는 모든 제품 대상으로 적용되는 갱신제는 의료기기 허가(인증·신고) 유효기간을 5년으로 정하고, 만료 전 허가를 갱신 받도록 한 제도다. 결론적으로 기존에 출시된 의료기기가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거나 혹은 원리상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최신 규격에 의한 안전성 검증을 다시 받도록 한 것이다.

의료기기업체가 신제품 개발을 하면서 가장 고민하는 점은 임상적 유용성이다. 해당 의료기기를 사용해 어떠한 임상적 가치와 효과가 있는지에 따라 수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이 각종 인허가를 위한 안전성 입증을 설계하게 된다. 필요하다면 해당 품목이 정한 각종 기준규격 시험을 의뢰해 제품 안전성을 입증할 방법을 구상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상당한 비용이 소요된다.

의료기기 재평가에서 의미하는 안전성 입증 과정이란 상당히 오랜 기간 시장에서 사용되던 제품이라도 어느 시점에서 새로운 과학적 방법에 따라 설정된 최신기준 규격에 따라 시험을 하고 입증자료를 다시 제출해 심사를 받으라는 의미다. 이는 안전한 제품 인증을 위한 사회적 문제가 생기거나 환경 변화에 따른 요구가 생긴다면 기존 제품의 사용 이력과는 무관하게 새로운 기준에 의한 입증을 받아야하는 것이다.

특히 의료기기산업계 입장에서는 의료기기 재평가나 갱신제에 대해 억울한 측면이 있다. 수십 년을 아무런 문제없이 사용되던 제품을 어느날 수천 혹은 수억 원을 들여 새로운 안전규정에 따라 입증을 하라고 하면 이에 대한 부당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최근 논란이 되는 재평가에 대한 여러 입장을 보면, 정부와 산업계·학계 그리고 국민 관점에서 어떠한 합의점이 가장 합리적인가에 대한 고민을 읽을 수 있다.

앞서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재평가를 시행하며 최신기준 규격을 공지하고 일정을 정해 신청하도록 했다. 문제는 의료기기업체들은 수십 년간 판매해온 제품에 대한 최신 규격 입증을 위한 자료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모든 제품이 의료기기 재평가를 위해 국내 시험기관에 몰릴 수밖에 없다.

때문에 시험기관은 검사할 수 있는 능력의 한계를 벗어나게 될 뿐만 아니라 임상에 들어가는 검사대상물조차 구하기 어렵게 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더욱이 시장 상황을 고려할 때 감당할 수 없는 정도의 비용이 예상돼 대부분 경쟁력이 없는 제품은 자연스럽게 정리되는 수순을 밟게 된다.

여기까지의 논리는 간단하다. 시장성이 있는 제품에 관한 판단여부는 개별 기업의 결정이기 때문에 정책입안자 관점에서 더는 고민할 여지가 없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안전한 의료기기이므로 당연히 안전성에 대한 입증여부가 불확실하다면 시장에서 도태되는 것이 공공성 측면에서 합당할 것이다. 더욱이 시장 논리에 의해 시장성이 있는 제품만 살아남게 된다면 결국 국민 선택의 폭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의료기기 특성상 허가에 수년이 소요되기 때문에 진입장벽이 높아 과점 상태의 제품이 어떠한 이유로 사라지게 되면 이를 대체하는 시간과 비용이 상당하며, 결국 그로 인한 손해는 국민에게 전가된다. 

우리는 이미 과거 위내시경에 사용되는 과점상태의 소모품과 일부 희귀의료기기에 대한 공급 중단으로 귀중한 생명과 국민 건강권에 심각한 위협을 느낀 경험이 있다. 의료기기가 어려운 점은 시장 논리에 의해 움직이지만 불가역적인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제품인 만큼 공공재로써 다뤄야하는 가치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살펴 본 바 두 가지 논리가 대립 점에 있다. 바로 시장성에 의한 선택과 과점에 의한 불안감이다. 여기에 부가해 수입업과 제조업 견해 차이로 인해 대부분의 시장지배력이 낮은 제조업이 포기하게 된다면 수입 의존도가 높아지고 장기적으로 국내 의료기기산업 불균형을 초래할 수도 있다.

물론 의료기기 재평가와 갱신제는 세계적인 추세다. 정부는 높아진 국민 눈높이와 맞춰 환자에게 사용되는 의료기기 안전성 확보를 위해 가장 높은 단계의 기준을 적용해야한다. 다만 지난 수십 년간 사용된 제품은 이미 시장에서 안전성을 확보했다. 특히 의료기기 대부분은 전문가에 의해 사용되므로 오·남용 우려가 상대적으로 낮다. 즉 문제가 생기거나 부작용이 있는 제품은 이미 시장에서 퇴출당했다는 의미다. 이렇게 오랜 기간 입증된 제품에 대해 허가 수준의 잣대를 적용할 필요가 있는가에 대한 질문과 함께 결국 비용은 제품가격에 적용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의료비 상승을 가져올 것이고, 애초의 정책 목표와는 다른 나비효과와 같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의료기기 안전에 대한 국민적 기대, 과점으로 인한 피해, 무역수지 불균형, 국내 제조사 부담, 의료비 증가 등 예상 가능한 모든 요인을 고려한다면 최선의 선택은 감당 가능한 정도의 안전성 입증일 것이다. 현재와 허가 수준의 중간 단계에서 기준을 정하고 안전성을 입증하게 한다면 앞서 제기한 모든 문제점과 고려사항에 대한 적절한 반영을 통한 합리적인 선택이 가능하다.

우리나라 의료기기시장은 세계 10위권에 진입했고 이제 7위를 목표로 발전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최우순 가치는 당연히 국민의 안전성이며 산업은 그 이후다. 하지만 세계적인 다국적기업과 경쟁해야 하는 국내 의료기기제조사 처지에서는 일단 싹을 틔울 수 있는 최소한의 양분이 보장돼야 열매를 맺고 나무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의료기기산업계가 바라는 점은 업체가 감당 가능한 적정 수준의 안전성 입증을 통해 산업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달라는 것이다. 모두가 어려운 이때 어려운 선택이겠지만 업계 입장에서의 바람을 전한다.

<헬스인·싸>는 각종 행사와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트렌드를 잘 쫓아가며 주목받는 사람을 지칭하는 '인사이더(insider)'와 통찰력을 의미하는 '인사이트(Insight)'를 결합한 단어입니다. 
앞으로 <헬스인·싸>는 의료기기 인허가, 보험급여, 신의료기술평가, 유통구조, 공정경쟁 등 다양한 이슈에 대한 오피니언 리더들의 폭넓은 안목과 통찰력을 공유해 균형 잡힌 시각으로 의료기기 제도·정책을 살펴보고, 나아가 의료기기업계 정부 의료계 간 소통과 상생을 위한 합리적 여론 형성의 장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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