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윤리 딜레마 다룬 '누구 먼저 살려야 할까' 출간
윤리적 딜레마 79개 난제 제시 해결법과 고려할 문제 제시

[라포르시안] #. 영국이 코로나 치료제와 백신 개발을 위해 바이러스를 인체에 고의로 노출하는 임상시험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런 임상시험은 윤리적으로 타당할까.

#. 중범죄를 저지른 의사 면허를 취소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발표되자 의사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면허를 취소할 만큼의 중대 범죄는 어떤 기준으로 정해야 할까.

코로나 바이러스 유행 이후 의료윤리에 관한 대중의 민감도 역시 크게 높아졌다. 특히 의학기술 발전으로 의료 분야에서 기존에는 없던 새로운 딜레마가 속출하고 있다. 

지난해 종교시설을 중심으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확산하자 방역당국은 대면예배 중단 조치를 취했다. 그러자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이 제기되기도 했다. 집회금지를 위한 방역조치와 '집회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가 충돌하는 양상이다. 

최근에는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놓고 “어떻게 배분하는 게 가장 정의로울까?” “백신을 거부할 권리는 없을까?” “정상인을 감염시켜 백신을 개발하는 실험은 윤리적일까?”라는 의료윤리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관련 기사: 코로나 백신 접종 우선순위와 의료자원 분배적 정의...누구에게 먼저?>

감염병 유행이 아니더라도 사회적 갈등 상황에서 의료윤리 문제는 자주 접하게 된다. 50일 넘는 장기간에 걸친 단식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해고 노동자를 대할 때 의사는 단식을 중단토록 해야할까, 아니면 단식투쟁자의 자율성 존중을 더 우선해야 할까. <관련 기사: 53일째 고공단식 삼성 해고노동자, 의료윤리상 더는 개입할 수 없는 의사>

1991년 11월 열린 세계의사회의 제43차 총회에서 채택된 '단식투쟁자에 대한 몰타선언'은 단식투쟁자 스스로 의료적 조치와 물을 섭취하는 것조차 거부하는 상태에서 의사가 단식투쟁을 중지시키기 위해 개입하는 것은 의료윤리에 반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고 장기간 단식으로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단식투쟁자를 그대로 지켜보는 게 전적으로 타당한 행위일까. 

1932년 시작해 1972년까지 40년간 진행된 '터스키기 매독 연구'(Tuskegee Syphilis Study)는 의학 역사상 최악의 임상시험으로 꼽힌다. 이 임상연구는 미국 남부의 앨라배마주 터스키기 인근에거주하는 400명의 가난한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대상으로 진행된 매독의 자연적 진행경과와 치료에 관한 것이었다.

문제는 임상시험 과정에서 연구진은 피험자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했고, 특히 연구가 진행되는 단계에서 매독을 치료할 수 있는 페니실린이 개발됐지만 이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 심지어 피험자들의 치료를 의도적으로 방해했다. 그 대신 매독의 치명적인 경과를 관찰하기 위해 많은 환자들에게 가짜 치료(placebo treatment)를 처방했다. <관련 기사: 매독, 거짓말, 그리고 플라시보 효과…‘헬싱키선언’의 고민>

이 연구가 종료될 무렵, 400여명의 피험자 중 74명만이 생존해 있었다. 28명은 매독으로, 100명은 관련된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남자 피험자의 부인 중 40명이 매독에 감염되었고, 그들의 자녀 중 19명이 선천적으로 매독에 걸린 채 태어났다. 결국 1997년 빌 클린턴 대통령이 정부를 대신해 피해자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최근 들어 진료실에서 의사가 환자로부터 폭행을 당하거나 심지어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사망하는 사건이 잇따르자 국회에서 의사가 환자 진료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의료법에 명시하는 입법이 추진돼 사회적 논란이 되기로 했다. 이 사안은 의사의 진료거부금지를 의무화한 직업윤리와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다. <관련 기사: '의료인 진료거부권' 보장 법개정 추진 논란 <관련 기사: '의료인 진료거부권' 보장 법개정 추진 논란>

최근 출간된 '누구 먼저 살려야 할까 (부제 - 깐깐한 의사 제이콥의 슬기로운 의학윤리 상담소, 한빛비즈)'라는 책은 제목처럼 ‘생명’과 ‘정의’에 관한 79개 딜레마를 담아냈다.

‘바이러스 보균자를 강제 격리해야 할까’와 같은 익숙한 문제에서부터 ‘가망 없어 보이는 환자에게서 인공호흡기를 떼어내야 할까' 등 인간 존엄의 문제에까지 지금 시대상황에서 고민해봐야 할 중요한 이슈를 다룬다. <관련 기사: 암이지만 알 필요 없어?...'환자 알권리와 자기결정권'을 묻다>
 
 『평상시 진료 과정에서는 대개 ‘먼저 온 환자 먼저’를 기준으로 인공호흡기를 사용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앞으로 독감 대유행이 일어났을 때 이 방식을 적용하면 안 된다고 하나같이 입을 모은다. 오히려 우리는 그런 재앙 같은 상황에 적합한 인공호흡기 적용 및 배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이때 윤리적 논쟁이 벌어지는 문제는 환자 중증도 분류를 해야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중증도 분류는 기정사실로 보인다), 구체적으로 누구를 배제해야 하느냐다.』 <'누구 먼저 살려야 할까' 본문 중에서>

이 책의 저자 제이콥 M. 애펠은 컬럼비아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생명윤리학자이자 정신과 의사다. 하버드 법학전문대학원에서 법학박사 학위도 받았다.

컬럼비아대학교, 뉴욕대학교 등에서 20년 가까이 “중범죄 경력이 있는 사람에게 의사 면허를 줘야 할까?”, “사형수에게 심장을 이식받을 자격이 있을까?” 등 다양한 의료윤리 관련 문제를 찾아내고 강의를 해왔다.

이런  의료윤리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의사와 환자, 보호자로서 생각해볼 문제를 꾸준히 수집해 일반 독자의 눈높이에 맞게끔 가다듬었다. 이 책에서 실제 어떻게 의료윤리 해결됐고,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도 함께 실었다. 
 
이 책에 소개된 79개 난제는 ‘현장의 의사들이 고민하는 문제들’, ‘개인과 공공 사이의 문제들’, ‘현대의학이 마주한 문제들’, ‘수술과 관련한 문제들’, ‘임신과 출산에 얽힌 문제들’, ‘죽음을 둘러싼 문제들’로 나뉜다. 각 난제 뒤에는 생각을 돕는 해설을 함께 실었고, 저명한 생명윤리학자와 임상의, 정책 입안자들이 비슷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소개한다.

궁극적으로 ‘기술과 윤리’ ‘생명과 정의’의 문제로 수렴되는 질문으로, 저자는 생명윤리학자이자 법학을 전공한 박사로서 최대한 균형 잡힌 관점을 유지하려 애썼다. 

저자는 "(책에 제시된 난제들 가운데) 당신이 실제로 맞닥뜨릴 난제가 있을지도 모르니, 어떤 쟁점이 있는지 미리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며 "당신이 마침내 어떤 결론에 다다르든, 바라건대 이 물음들을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보고, 선의를 지닌 똑똑한 사람들이 서로 다른 결론에 이르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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