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협 "대형병원과 일부 기업 의료독점 초래할 수도"

[라포르시안]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정부가 원격의료 제도화 논의에 착수한 가운데 의료계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22일 성명을 내고 정부의 원격의료 제도화 논의에 깊은 우려를 펴명했다.

대전협은 "최근 정부의 원격의료 확대 사업은 우리가 배운 의학의 기초이자 치료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며 "원격의료 확대 사업을 통해 정부가 기대하는 것이 정말 환자들을 위한 ‘인술’인지 미지의 산업기반을 위한 ‘상술’인지 묻는다"고 했다.

정부는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한시적으로 전화상담 · 처방을 허용한데 이어 코로나 재유행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비대면 진료체계(원격의료) 구축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전화상담·처방건수는 시행초기에는 한달 동안 2만여 건에 그쳤지만 이후 가파르게 늘면서 5월 5일을 기준으로 총 22만 2000건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를 근거로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등 경제부처가 나서 원격의료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전협은 "더는 안전한 장소에서 치료할 수 없을 정도로 환자 수가 많아지자 정부는 환자 일부에 한해 원격의료 시행을 허가하는 유권해석을 내렸으나 이는 의료계와 합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채 내놓은 미봉책에 불과했다"며 "의료진은 원격의료가 위험한 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 초유의 재난으로부터 한 명의 국민을, 나아가 우리나라를 구하기 위해 참고 참았다"고 토로했다.

이들은 "고육지책으로 시행했던 한시적인 형태의 원격의료를 보고서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전 정부에서도 지겹게 들어왔던 단어들을 갖다 붙이며 원격의료를 정당화했다"며 "현장에서 땀 흘리며 누구보다 국민을 위해 일한 의료진의 노력으로 정부의 모순을 급급히 감추며 마치 국민을 위한 양 원격의료를 만병통치약으로 둔갑시켰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주장처럼 제한된 형태로 원격의료를 시행하더라도 결국엔 전면적인 확대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전협은 "의료계와의 합의와 충분한 숙의 없이 시작하는 원격의료라면 다음 빗장을 여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을 것"이라며 "원격의료를 도입할 수 있는 자원을 가진 이들만 살아남을 것이며 원격의료의 부작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여력조차 없는 의원들은 문을 닫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원격의료 도입 추진이 초대형 병원과 일부 기업의 의료 독점으로 이어져 또 다른 재난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전협은 "우리는 숫자로 환산된 수많은 검사결과로 환자를 진료하지 않는다. 의학은 수치를 해석하는 일을 넘어 사람에 관한 일이기 때문"이라며 "정부가 주장하는 원격의료가 인술인가, 상술인가"라고 반문했다.

한편 최근 대법원은 대면진료를 시행한 적이 없는 환자에게 전화 통화만으로 전문의약품을 처방하는 것이 신뢰할만한 환자 상태를 토대로 한 진료가 아니기 때문에 의료법 위반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와 관련 박지현 대전협 회장은 “진찰 과정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전문가의 말을 무시하고 원격의료를 시행했을 때 환자 안전에 문제가 되는 상황을 책임질 수 있는가"라며 "합병증이나 사고 발생 시 그 몫은 오롯이 환자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의사에게 돌아간다. 그런 상황에서 이제 어떤 의사가 생명을 다루는 과를 선택해 환자를 보겠다고 할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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