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부 5년간 의료민영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최근엔 바통을 이어받아 차기 정부에서 의료민영화를 추진할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엄밀히 따져 우리는 이미 오래 전부터 민영화된 의료공급 시스템 속에서 지내왔다. 현재 국내 의료기관 중 90% 이상이 민간의 자본으로 설립·운영되는 민간병원이다. 전체 국민의료비 재원구성에서 차지하는 정부 부담률은 1/10을 조금 넘는다. 공공병원 비율과 국민의료비에서 차지하는 정부 부담만 따져보면 민간의료보험과 영리병원이 활성화된 미국보다 오히려 더 '민영화'됐다.

최근 확정된 2013년도 보건복지부 예산을 살펴보면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이해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의 올해 예산(기금 포함)은 총 41조673억원이다. 지난해 예산 36조6,928억원과 비교하면 11.9% 증가한 규모이다. 특히 올해 복지·보건·노동 예산은 99조3000억원으로 전체 국가 예산의 28.9%가량을 차지한다. 그래서 복지 분야 예산이 100조원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호들갑이다. 

그러나 전체 복지 예산 중 보건의료 부문의 예산만 놓고 보면 한심하기 그지없다. 올해 복지부 전체 예산 가운데 사회복지 분야의 예산은 총 32조6,205억원에 달한다. 나머지가 보건의료 분야 예산이다. 계산하면 8조4,468억이다. 전년도 예산 7조5,955억원과 비교하면 11.2% 증가한 수치이다.

그나마 보건의료 예산에서 6조5,131억원은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지원금이다. 사실 이 예산도 매년 제대로 지원된 적 없지만. 건강보험 국고지원금을 제외한 순수한 보건의료 부문 예산은 1조9,337억원뿐이다. 올해 국가 전체의 복지 예산을 100조원이라고 볼 때 보건의료 부문의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2%에도 못 미친다. 이 예산을 갖고 각종 공공의료 인프라 확충을 해야 하는 것이다. 1조9,000억원이 조금 넘는 예산의 사용처를 보면 보건의료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과 무책임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불요불급한 예산 편성이 적지 않다. 용처도 불분명한 뷰티산업(?) 해외진출 지원사업 명목으로 7억5,000만원의 예산이 편성됐다. 의료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한 글로벌 헬스케어 활성화 명목으로 63억4,800만원의 예산이 책정됐다.

한의약산업을 육성한다는 취지로 한방산업진흥센터를 신규 설립하는 데 84억5,100만원이 지원된다. 한의약의 세계화 추진(2013 산청 세계전통의약 엑스포 추가 지원) 명목으로 지난해 75억원에 이어 올해 또 81억원이 추가로 지원된다.

이밖에 의료산업 생태계 발전형 의료시스템 수출, 보건산업 기술이전 및 산업체 활성화 지원 등 의료서비스 활성화와 일자리 확대 등을 이유로 총 154억6,000만원의 예산이 짜였다. 사실 현 정부에서 해외환자 유치사업과 의료서비스 일자리 창출 사업의 실효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의문이 제기돼 왔음에도 불구하고 매년 관련 예산이 증액되고 있다.

 

반면 공공의료 확충과 의료공공성 확보를 위한 예산은 감액됐다. 특히 올해 의료급여 예산은 총 4조2,478억원으로 지난해 3조9,812억원보다 약 2,666억원이 늘었지만 당초 정부안 4조5,302억원에 비해 2,824억원이 삭감됐다. 이에 따라 올해도 하반기 쯤 의료급여 미지급 사태가 되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예산 항목의 중요도를 놓고 볼 때 형평성 차원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편성도 적지 않다. 올해 분만취약지 지원 사업 예산으로 40억원이 책정됐지만 한방산업진흥센터 건립비(84억원)나 산청 세계전통의약 엑스포 추가 지원(75억원) 예산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과연 분만취약지 지원 사업이 한의약 육성보다 덜 중요한 일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보호자 없는 병원 시범사업 지원 예산으로 100억원이 신규 책정된 것과 지역거점병원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예산이 당초 정부안(502억9,500만원)보다 12억원 증액된 514억9,500만원으로 책정된 것이 오히려 기적같다.

올해 발표된 OECD 국민의료비 통계(OECD Health Data 2012)에 따르면 국민의료비에서 건강보험 등을 포함한 공적재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 58.2%로 OECD 국가 평균(72.2%)보다 많이 뒤쳐진다. 국민의료비 대비 공적재원 지출이 우리나라보다 낮은 국가는 칠레, 멕시코, 미국(50% 이하) 등에 불과하다. 특히 국민의료비 재원구성에서 OECD 국가들의 정부 부담률은 2009년 기준으로 35.6%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정부부담률이 13.5%에 불과하다. 사실상 보건의료체계에서 정부가 무임승차를 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과 같은 보건의료 예산 수준이라면 보건의료 시스템 내에서 정부는 방관자 역할일 수밖에 없다. 의료민영화 논란이 제기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사실상 국내 의료기관의 90% 이상이 민간병원인 상황에서 의료민영화란 표현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꼬집기도 한다. 그 말도 틀리지 않다. 보건의료 예산이 지금과 같은 수준을 지속한다면 우리는 공공의료가 없는 민영의료시스템에 계속 의존할 수밖에 없다.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