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편집국에서
[편집국에서] '히포크라테스 신화'에 갇힌 의료윤리
  • 김상기 편집부국장
  • 승인 2012.08.17 10:45
  • 댓글 0

최근 연이어 의사가 직접 연루된 강력범죄 사건이 신문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의약품 리베이트 수뢰와 보험사기에 연루된 의사부터 만삭의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의사, 최근에는 ‘시신 유기’ 혐의로 구속된 의사 사건마저 터졌다. 작년에는 의대생들의 동기 여학생 집단 성추행 사건이 불거져 사회적 지탄을 받았다.

극히 일부의 잘못이지만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사람들의 입길에 끊임없이 오르내리면서 마치 의사집단 전반이 비윤리적인 것처럼 일반화되고 있다. 당연히 의료윤리가 땅에 떨어졌다는 비난이 쏟아진다. ‘히포크라테스 정신’은 어디로 사라졌냐는 말도 나온다.

그에 맞춰 의사집단을 향한 법적 제재가 강화되고 있다. 의료계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여론의 지지를 받아 '리베이트 쌍벌제’가 시행됐다. 지난 2일부터는 일명 ‘도가니법’이라고 불리며 성범죄 경력자의 취업제한 직종에 의료인을 추가한 개정 ‘아동·청소년 성보호법’이 시행에 들어갔다. 여기에 더해 살인과 시신유기 같은 중범죄를 저지를 의사의 면허를 영구 박탈해야 한다는 의료법 개정안마저 국회에 제출됐다. 의사사회 스스로 자정 능력을 상실했다는 판단에 따라 법적인 제재를 통해 강제적인 의료윤리 확립의 필요성이 힘을 얻고 있다.

의사들은 물론 이런 논리에 공감하지 않는다. 왜 유독 의사에게만 고도의 윤리의식을 요구하는 것도 모자라 이중처벌을 가하느냐며 반발한다. 다른 전문직의 비윤리적 행위에 대해서는 관대하면서 유독 의사에게만 완벽에 가까운 윤리의식을 요구하는지 모르겠다며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그만큼 피해의식도 강하다. 의사가 비윤리적 행위를 했을 경우 사회적으로 쏟아지는 비난의 강도가 다른 어느 직업군보다 높다는 인식이다. 

그래서인지 의사들에게 있어서 의료윤리란 단어가 주는 뉘앙스는 상당히 까칠하다. 전문가로서 의사는 당연히 윤리적이어야 하며, 의사라면 응당 의료윤리를 갖춰야 한다는 식으로 규정되기 때문에 일종의 족쇄처럼 여긴다. 더욱이 의사가 수익을 추구하는 것조차 비윤리적인 것으로 매도하는 탓에 의료윤리에 대한 피해의식도 강하다. 의료환경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지만 의사들은 여전히 2500년 전 ‘히포크라테스의 신화’에 갇혀 있다.  

엄밀히 말해 의료윤리란 전문가로서 직업윤리이자 행동규범이다. 의사의 직업윤리가 중요한 이유는 의료행위 그 자체에 배타적 독점권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현행 의료법상 의사 면허가 없다면 어떠한 의료행위도 용납되지 않는다. 의사 면허 없이 의료행위를 할 경우 불법으로 간주되고 처벌을 받게 된다. 게다가 다른 어떤 직업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고도의 전문지식을 요한다. 그래서 수많은 전문직 가운데 최고의 프로페셔널리티를 인정받는 직업이 바로 의사다. 의료행위에 대한 배타적 독점권이 주어졌으니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높은 의료윤리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 사회 일반의 요구다.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 사회는 의료윤리를 법으로 강제하려는 쪽으로 향하고 있다. 윤리란 자율적일 때 그 의미를 지닌다. 법으로 강제하는 윤리는 이미 윤리가 아니라고 본다. 문제는 지금까지 의사집단 내부적으로 자율적인 의료윤리 확립에 상당히 소홀했다는 점이다. 인면수심의 성범죄를 저지를 의사에 대해서도 동료의식에 얽매여 강력한 제재를 가하는데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보니 의사 개개인의 비도덕적 행위에 대해서도 의료윤리 부재와 자정능력 상실이라는 비난을 자처하고 법적인 제재가 파고들 여지를 줬다.

전문가 집단의 권위와 신뢰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전문성에 부합하는 직업윤리와 그에 따른 자정능력을 갖췄느냐가 관건이다. 전문가의 전문성은 고도의 지식을 통해 그 가치를 인정받지만, 잘못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자율적인 정화 능력을 갖췄는가에 의해서도 인정받는다. 지금 의사사회 내부적으로 의료윤리 확립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의사사회 내부의 고도의 의료윤리 확립은 족쇄를 차는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채워진 족쇄를 스스로 푸는 것이 아닐까 싶다. 또한 우리 사회도 '히포크라테스 신화'에 갇혀 의료환경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모순된 의료윤리를 더 이상 강요해선 안된다. 2500년 전, 히포크라테스도 미처 '한정된 의료자원의 정의로운 분배'가 의료시스템과 의료윤리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테니 말이다.

김상기 편집부국장  bus19@rapportian.com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상기 편집부국장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