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응급의학과 전문의입니다. 그것도 불과 4년 전까지 광역시의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전공의로서 환자를 진료하며 응급의료의 현실을 몸소 겪었고, 현재도 남들이 쉬는 야간과 공휴일에 쉬지 못하고 환자를 직접 진료하고 있는 젊은 전문의입니다.

올해 8월부터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개정령’이 강제로 시행됩니다. 이 개정안은 진료과목별 전문의(교수 혹은 펠로우) 또는 3년차 이상의 레지던트가 환자를 직접 진료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응급실은 전공의 3~4년차, 전문의가 직접 진료를 해야 하는 시스템으로 바뀌게 됩니다.

과연 개정령대로 하면 365일 동안 당직을 전공의 3~4년차, 펠로우(전임의), 교수가 사이좋게 나눠 설 수 있을까요? 대학병원에서 수련 받았던 전공의들이라면 교수들이 전공의들을 위해 당직을 똑같이 나눠 서 줄 것이라는 상상은 절대 하지 않을 것입니다. 3년차 이상 전공의들이 당직근무를 독박쓰게 되는 건 너무 당연합니다.

군대보다 엄격한 규율을 가지는 전공의 수련 시스템 특성상 3년차 이상 선배가 당직을 서는데 1~2년차를 집에 보내주겠습니까? 결국 현재 1~2년차는 3년차 이상 전공의의 눈치를 보고 매일 같이 당직을 서야만 할 것이고, 3~4년차가 되면 법에 의해 강제로 당직을 서게 됩니다. 

‘3년차 이상 전공의의 연간 당직일수는 해당 진료과목의 연간 당직일수의 1/3을 초과해서는 아니 된다’라는 규정이 있으니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요? 그럼 나머지 365일의 2/3인 244일을 교수와 펠로우, 전공의들이 당직을 나눠 설까요? 아니겠지요. 우리 고매한 교수님들은 응급실에서 직접 진료하는 일은 하지 않거나 못 하실 테니 244일은 펠로우가 독박 쓰게 될 겁니다. 대부분의 진료과는 보유하고 있는 펠로우가 1~2명입니다. 그럼 그 펠로우들은 5년간 대학병원에서 전공의 생활을 한 것으로 모자라 30대 중후반의 나이에 122~244일 동안 집에 못가고 당직 근무를 서야 하는 일도 벌어질 수 있다는 겁니다.

사실 교수님들도 피곤해집니다. 흉부외과, 산부인과 등 전공의들을 많이 보유하지 못한 비인기과 교수님들은 자동으로 매일 연속당직을 서야할 것입니다. 그럼 전공의들을 많이 보유한 인기과 교수님들은 지금처럼 편안하게 주무실 수 있을까요? 개정령에는 ‘직접’ 진료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즉 집에서 전화로 환자 상태 보고 받고 원격진료하면 불법이란 말입니다. 결국 자기 당직 날에는 콜이 오면 직접 한밤중에 응급실에 나와서 진료보고 ‘describe’하고 ‘consult’보고 해야 합니다.

환자들에게는 좋을 것 같습니까? 저렇게 잠도 못자고 제대로 된 보상도 못 받고 희생을 강요당해 독이 오를 대로 오른 의사들에게 양심적이고 성의 있는 진료를 받을 수 있을까요? 10바늘 꿰매야 하는 상처는 5바늘 정도 꿰매고 잠자기 바쁠 테지요. 내 가족들을 저런 의사들에게 맡길 수 있겠습니까? 

대한전공의협의회에서 2010년 전국 수련병원을 대상으로 전공의 평균임금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전공의의 평균연봉은 3,680만원, 주당 근무시간은 111시간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주5일 40시간을 근무하는 복지부 공무원 입장에서는 주당 111시간이 얼마나 사람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것인지 모를 것입니다.

주당 111시간을 일하려면 주 6일을 근무한다고 가정하면 하루에 평균 18시간을, 주 7일을 근무한다면 하루 16시간을 일해야 합니다. 4년 전 제가 수련 받을 당시 대부분의 1~2년차 전공의들은 하루에 20시간 정도 근무를 한 뒤 다음날도 오프가 주어지지 않고 6~7일간 연속근무를 하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시급으로 계산해보면 2012년 최저시급인 4,580원보다 훨씬 낮습니다. 그렇게 공무원들이 비교하기 좋아하는 OECD 국가들은 주 60~80시간을 넘지 않고 하루 당직을 서면 다음 날 적정한 수면 시간을 보장해주며 시급도 한국보다 훨씬 좋습니다. 전공의 하루 밤 당직비가 얼마인지 아십니까? 5,000원~2만원입니다. 오후 5시 30분에서 다음날 아침 9시 30분까지 16시간 야간근무를 하고 저 돈 받으면 시급이 312원~1,250원입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해도 야간에는 시급 6,000원 줍니다.

의사라면 초중고 12년 동안 하루 4~5시간 자고 공부하고, 수능 상위 1%를 뚫고 의대 들어와서 6년간 다른 과의 2~3배가 넘는 학비를 내고 수십 배가 넘는 양의 공부를 했습니다. 또 5년 간 대학병원에서 최저시급도 안 되는 돈을 받으면서 전공의 생활을 하며, 남들 22개월 가는 군대를 39개월간 다녀오고, 마지막으로 펠로우 1~2년 이상을 하는 등 약 30년 동안 자기 돈과 자기 시간을 들여서 전문의가 됩니다.

그렇게 장기간 전공의 생활하는 동안 의사들은 자신이 전공의가 된 것도 모른 채 그렇게 산화돼 갑니다. 병원에서 실제로 환자를 진료해보지도 않은 복지부 공무원들의 터무니없는 탁상공론에 의해 계속 산화될 작정인가요. 전공의, 펠로우, 교수 모두 한 배를 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니 제발 권리를 찾기 위해 한목소리를 내야 할 때란 걸 강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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