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숙(가명, 평양의대 졸업. 소화기내과 의사 출신 새터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은 지난 11일 ‘통일의학센터’를 개소하고 ‘통일한국 의료통합 현황과 발전방안’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통일을 대비해 북한의료의 현실을 파악하고 통일 이후 남북한 의료 현실의 차이를 줄여나가기 위한 방안이 논의됐다 특히 이날 심포지엄 참석자 중에는 북한 소화기내과 의사 출신 새터민인 최용숙씨(여. 57년생)가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올해 초 실시된 의사국가고시(필기시험)에 당당히 합격했다. 그를 만나 북한의 의료 현실과 국내 의료환경에 적응하는데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이야기를 들어봤다.


▲ (인터뷰이의 요청에 의해 얼굴 부분은 모자이크 처리했음을 알려드립니다.)
-탈북을 결심하게 된 배경은.

“원래는 북한 평양의대를 졸업하고 소화기내과 의사로 30여년간 진료활동을 했다. 남한에는 지난 2009년 12월에 내려왔다. 실은 아들이 먼저 내려왔고 이후 따라 내려오게 됐다. 박사인 남편은 원래 고혈압이 있었는데 내려오기 전 뇌경색으로 사망했다. 남편의 마지막 유언은 자식 옆에 가서 성공하라는 것이었다. 남편의 장례를 치르고 유언에 따라 아들을 찾아 오게 됐다.”

-현재 어떤 일을 하고 있나.

“지난 1월 의사국가고시에 합격했다. 북한에서 내려올 때 가져온 학사증과 논문이 통일부로부터 학력 인정을 받아 현재 서울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실기시험을 준비 중이다.”

-의사국시를 준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처음에 남한에 와서 의사국시 시험을 준비할 때 다들 힘들 것이라고 했다. 이유는 교과서가 대부분 영어로 돼 있기 때문이었다. 북한에 있을 때는 러시아로 공부했었다. 시험준비를 하기 위해 ‘퍼시픽’과 ‘해리슨’ 등 내과 교과서를 접했는데 전부 영어로 돼 있어 무슨 의미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당시 서울대 의과대학 학생들이 많이 도와줬다. 학생들이 나에게 교과서를 전부 번역한 파일을 보내줘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너무 고마웠다. 또 힘든 것은 북한은 의사시험은 주관식인데 남한은 객관식이라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첫 시험때는 아는 문제도 마킹을 잘 못해서 틀리는 경우도 많았다. 다행히 가정의학과 박상민 교수와 의학교육연구실 강석훈 교수가 모의고사를 볼 수 있게 도와줘 시험에 합격하는데 큰 힘이 됐다.”

-시험을 준비하면서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적은 없었나.

“물론 지난 30년간 하던 진료활동을 없는 셈치고 식당에서 그릇닦기나 하면서 생활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북한에 있을 때도 남들보다 더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었다. 북에서 남편은 박사였고 나는 준박사(우리나라의 석사)였다. 논문도 많이 썼다. 이런 노력을 전부 쓸모없는 것으로 만든다는 것이 너무 아까웠다. 나 자신을 위한 측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통일의료에 디딤돌이 되고 싶었다. 스스로 남한과 북한의 의료 모두를 잘 이해한다고 믿기 때문에 의사가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 의사 출신 새터민 가운데 실제 의사로서 활동하는 이는 극히 일부에 불과한 것으로 알고 있다. 역시 비슷한 문제 때문일 것 같다. 

“현재 새터민 중 북한에서 의사경력이 있는 이들이 무려 50명에 달한다. 경력과 나이는 다를 수 있지만 어쨌든 북한에서 의대를 졸업했고 남한에서 의사시험에 도전하는 이들도 많이 늘고 있다. 북한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하면 6급의사로 일할 수 있게 되며 3년마다 한번씩 급수시험을 보게 되는데 일정 기간과 업적이 있어야 진급할 수 있다. 내과, 소아과, 외과, 산부인과 등 전문적인 과목에서 독립적인 진료를 하려면 적어도 4급 이상이 돼야 한다. 비록 남한처럼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은 없으나 그와 맞먹는 수련과정을 거쳐야 기본과에서 독립적으로 진료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남한으로 내려와 의사시험에 합격해도 전문의 인정이 안된다. 이들에게 전문의 과정을 거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북한에서 온 의사중 임상경력이 20~30년이고 남한의 의사면허에 합격한 경우라면 단기간의 전문의 수련과정을 거친 후 전문의 시험에 합격하면 전문의로 인정해주는 시스템이 마련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면허 취득 후 일반의로도 활동할 수 있으나 향후 통일에 대비한 준비차원에서 이같은 방법도 효과적일 것으로 생각한다.”

-남북한 의료현실의 차를 줄여나가기 위한 목적으로 통일의학센터가 문을 열었다.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는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가정의학교실 박상민 교수로부터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 몹시 설레었다. 통일 이후 남북한의 의료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 것이 기뻤다. 현재 남한과 북한의 의학용어 및 시스템 등은 많은 차이가 있다. 통일의학센터를 통해 향후 통일에 대비한 의료통일의 모든 방안이 제시되고 행동 지침들이 생길 것으로 본다.”

-현재 북한의 의료상황은 어떤가.

“북한 의료현실의 심각성은 이미 여러 북한 지원단체를 통해 알려져 있다. 일반적 의료비품인 주사기, 거즈, 소독솜, 테이프와 수액제제는 물론 의료소모품인 X-Ray 필름 등의 공급체계는 붕괴돼 있고 특히 전력과 물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기존 보조진단기구 사용에도 어려움이 있다. 사실상 거의 모든 의료체계가 붕되돼 있다.”

-북한의 의료제도와 의사들의 현실은.

“북한이 자랑하는 사회주의 체제의 우수성 중 하나가 무상의료다. 아픈 주민이 아무런 부담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는데다 담당구역 의사들로부터 체계적이고 전면적인 건강관리를 받을 수 있는 의사담당 구역제를 고려한다면 북한 의료정책은 상당한 장점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무상치료제 실시를 위해 북한에서는 의료시설을 국가가 소유 및 관리․운영하며 지난 1946년 북조선인민위원회에서 채택한 ‘사회보험법’에 근거해 전염성 질환 환자 및 빈민에 대해서도 무상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의사들의 월급조차 제대로 지급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북한에서 의사들이 받는 월급은 쌀 1kg을 구입하기 어려울 정도인데 그나마 제 때 지급받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 때문에 환자들에게 요구를 많이 하게 된다. 예를 들어 환자들이 건어물이나 술, 담배 등을 가져오면 의사들이 그것을 장에 내다팔아 식량으로 바꾼다. 협조해 준 환자들에게는 항생제나 수액제제 등을 일차적으로 투여해준다. 원래는 무상으로 진료를 하게끔 돼 있으나 어려운 환경 때문에 의사나 병원이 어쩔 수 없이 환자와 이같은 관계를 유지할 수 밖에 없다. 이처럼 열악한 환경은 의사들로 하여금 병원을 이탈하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 앞으로 계획은.

“실기시험을 통과해 의사가 되면 진료활동을 하면서 통일의학센터에서 연구에 몰두하고 싶다. 남북한간 진정한 통일의 의미는 양쪽 지역 주민들이 하나의 공동체로서 높은 수준의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데 있고 이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사회통합이 필수적이다. 이중 보건․복지 부문은 제도적 통합을 완성할 때 가능하다고 본다. 이를 위해 평양의대 출신으로서 북한의 보건의료 상황을 파악하고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 통일 이후 건강보장 제도의 재정비 방향에 대한 논의의 기초를 마련하고자 한다. 사업 주체는 서울대 의과대학이지만 향후 서울대 의대와 평양의대가 함께 추진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통일 이후 의료제도 정착에 있어 시행착오를 최소화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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