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발효 따라 가능성 제기돼…"투자자가 원하면 ISD 제소할 수 있어"

▲ 한미 FTA 협상 당시 양국 협상대표단.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에 따라 미국계 보험회사들이 투자에 불리할 경우 ISD(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을 통해 당연지정제 폐지와 의료기관에 대한 진료비 심사권한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보험연구원 이창우 연구위원은 지난 3일 '한미자유무역협정과 민영의료보험시장의 변화'라는 보고서에서 한미 FTA가 민영의료보험시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으로 ▲국민건강보험의 요양기관에 대한 당연지정제 ▲보험사의 요양기관에 대한 심사권한 도입을 꼽았다. 

한미FTA 협정상 '공적퇴직연금제도 또는 법정사회보장제도의 일부를 구성하는 활동이나 서비스에 대해서는 한미 FTA가 적용되지 않는다(제 13.1조 3)'라는 유보조항이 있다.

하지만 당사국이 자국의 금융기관에 대해 공공기관 또는 금융기관간 경쟁을 하도록 허용한 경우에는 예외적용을 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어 국내에 진출한 미국계 금융회사가 취급하는 퇴직연금·건강보험·산재보험은 FTA의 적용범위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연구위원은 "당연지정제가 ISD 제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는 있으나 법정사회보장제도를 구성하는 활동이나 서비스가 유보조항에 포함돼 있어 당연지정제가 무너질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문제는 유보조항의 예외규정으로 인해 요양기관에 대한 심사권한을 요구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라며 “현재 보험사는 의료제공자에 대한 심사권한이 없어 의료서비스 공급 비용을 통제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 미국계 보험사가 이 점을 ISD 대상으로 물고 늘어지면 병원 등 의료제공자에 대한 심사권 제도에 변화가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 4일 국회입법조사처도 ‘한미 FTA 체결에 따른 주요 정책 및 입법과제’ 보고서를 내고 한미 FTA가 건강보험제도의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을 언급했다.  

김주경 보건복지여성팀 입법조사관은 “건강보험제도가 (간접수용으로 인해) ISD의 제소 대상이 될 수있는가의 쟁점이 핵심이다. 이는 부속서 11-나에 근거해 원칙적으로는 제외돼 있다”며 하지만 “한국 정부의 동의 없이 투자자가 독자적으로 제소할 수 있으므로, 미국계 보험사 등 투자자가 원하면 제소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밝혔다.

앞으로는 민간보험사들이 수익 창출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요양기관에 대한 심사권한 요구가 강해질 것으로 전망됐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우리나라 어느 법에도 민영보험이 보건의료서비스라고 규정돼 있지 않다”며 “이는 보건의료 부문이 ISD 제소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한들 소용이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 실장은 “특히 지금까지 미국계 보험사들은 시장 지분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의료공급자나 소비자들에게 후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수익을 내기 위해 보험지급율을 줄이려 할 것이고 이 과정에서 어떻게든 병원 심사권을 요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병원 심사권이 미국계 보험사들에게 일부 인정될 경우 파급효과는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우 실장은 “미국의 민간보험사 지급율 목표는 80% 수준으로 우리나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비교할 수 있겠냐”며 “그만큼 의사들의 진료 자율권은 침해될 것이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이 부분에 대한 대책을 보건복지부나 의사협회 차원에서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민간보험사, 진료비 지불 조정기전에 목매반면 국내 미국계 보험사들은 한미 FTA 발효에 따른 병원 심사권 요구에 대해 아직까지 특별한 움직임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생명보험협회 관계자는 “현재 국내에 진출한 메트라이프, 라이나 등 미국계 보험사들이 한미 FTA와 관련해 국내 연구자료를 꼼꼼히 분석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ISD 제소 등 구체적인 대응에 나섰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국내 민간보험사들은 의료기관에 대한 심사권한을 갖기 위해 주력하고 있다.  

국내 S보험사 관계자는 “민간의료보험에 제3자 지불제를  도입하는 부분은 국내 민간보험사들에게 주요 관심사 중 하나"라며 "제3자를 통해서라도 심사권한을 보장 받고 싶고 지불 조정기전을 갖고 싶은 게 보험사들의 공통된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런 측면에서 미국계 보험사들이 한미 FTA 발효 이후 병원에 대한 심사권을 갖기 위해 ISD를 활용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이용하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미국계 보험사들이 한미 FTA 협의 채널을 이용해 ISD 제소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송기호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외교통상위원장)는 “미국계 보험사들의 ISD 제소 가능성은 있다”며 “하지만 보험사들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고 해서 무턱대고 제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외교부에서 추진 중인 보험작업반 등 협의 채널 등을 통해 충분히 의견 조율을 할 것”이라고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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