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병원 적자의 주요인…"적정수가 보장 안돼 병원들 경영악화로 내몰려"

#. 부산의 A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B교수는 쌍둥이 출산을 앞두고 있는 산모 B씨(34세)를 생각하면 걱정부터 앞선다. 미숙아 출산이 예상돼 집중치료가 필요한데 병원에는 신생아중환자실(NICU)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현재 집중치료 병상이 한 자리라도 비어있고, 인공호흡기 여분이 있는 병원을 찾아 하루빨리 옮겨야 하는 상황이다.

#. 서울의 C대학병원 D원장은 작년 오픈한 신생아중환자실의 병상 축소 여부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1분기 적자만 8억여원 수준이어서 이대로 가다간 전체 병원 수익률을 마이너스로 떨어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간호등급을 유지해야 수가를 좀 더 받는데 추가 인력채용 자체가 버겁기도 하다. 병원 경영진들은 일단 병상을 줄여 수익을 보전하자고 하루에도 몇 번씩 재촉해온다.      이처럼 우리나라 신생아 치료는 고질적인 병상부족과 저수가로 인해 살얼음 위를 걷고 있는 형국이다.

국내 NICU 규모는 작년 기준(2011.12)으로 전국에 1,344개. 이마저도 서울 475개, 경기ㆍ인천 289개로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NICU가 운영되는 의료기관도 90여 곳에 불과하다.

하지만 NICU 병상 1곳당 연간 적자 수준이 최대 1억원을 기록할 정도여서 대부분의 병원들이 병상 유지를 놓고 심각한 딜레마에 빠져 있다. 어린이병원에서 생기는 적자의 상당 부분은 바로 이 NICU에서 발생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실제로 대한신생아학회가 지난 2월 보건복지부에 제출한 ‘2011년 전국 중요 병원 신생아중환자실 경영 수지분석’ 자료에 따르면 주요 병원 6곳의 병상당 연간 평균 적자 규모는 5,700여만원으로 조사됐다.

50병상 규모의 신생아중환자실을 운영하는 A대학병원의 경우 1년동안 약 47억4,400만원의 적자를 기록했고, 병상당 9,400만원의 적자가 났다. 

이들 병원은 인건비가 수익을 초과하는 구조로 A대학병원은 3개월간 수익은 13억5,000만원을 기록했는데 인건비는 15억2,000만원이 투입됐다. B대학병원도 11억3,000만원 수익에 인건비 지출 규모만 13억1,000만원에 달했다.

결국 대부분의 병원의 인건비가 수익을 초과하거나 못미치는 것으로 나타나 사실상 운영하면 할수록 적자의 늪으로 빠질 수밖에 없는 여건이다.

NICU의 적자 원인은 무엇보다 비현실적인 입원료에 있다.

NICU 하루 입원료는 현재 14~16만원 수준이다. 하지만 병원협회가 2009년 NICU 입원료 원가 산정을 진행한 결과, 적정 입원료가 22~23만원으로 나왔다. 2011년 신생아학회가 조사한 주요 병원 6곳의 NICU 적정 입원료는 이보다 훨씬 높은 평균 57만원으로 추산됐다.

대한신생아학회 배종우 회장은 “병상이 많은 병원일수록 병상당 연간 적자가 많은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대형병원일 수록 신생아 환자의 중증도가 높아 이에 필요한 추가적인 인력과 장비의 비용에 의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현 수가에서 추가 인상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배 회장은 “적절한 입원료 등 수가가 보장되지 않아 병원들이 경영악화로 내몰리고 있다”며 “결국 인력 투자가 어려워 NICU가 폐쇄되고 NICU 부족 현상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수가 보전이 더딜 경우 신생아들에 대한 의료서비스의 질도 그만큼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서울대병원 김한석 교수(소아청소년과)는 “낮은 수가로 인해 양질의 치료를 받을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특히 의약품에 있어서 연령 제한 때문에 급여로 인정 되지 않은 약물들이 아직 많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NICU를 운영하고 있는 병원은 결국 수익성 때문에 적은 의료인력(의사, 간호사)과 보다 저렴한 가격의 의료 설비로 치료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특히 미숙아 등의 고위험 신생아의 치료 수가 인상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신생아나 소아중환자실을 돌볼 의료인력도 점점 부족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양산부산대병원 이형두 교수(소아청소년과)는 “소아청소년과는 수련기간 동안 중한 환자들로 인해 몹시 힘든 과정을 거치지만, 낮은 수가와 출산율 감소로 인한 낮은 장래 수익기대감으로 인해 점점 지원자가 줄고 있다”며 “올해 전공의 모집의 경우 부산대학교어린이병원과 부산대병원을 비롯한 많은 병원들이 전공의를 다 채우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섬세한 진료를 할 수 있는 우수전문의는 고사하고 적정수의 전문의도 확보하게 되지 못할 날이 멀지 않았다”며 “신생아와 소아의 진료행위를 위해서는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하고 간단한 정맥주사부터 심도자술같은 심장검사 등 모든 시술의 난이도가 성인에 비해 훨씬 높지만 이에 대한 배려는 미미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복지부는 5년전 부터 NICU 설치운영 지원사업을 진행 중이다. 올해까지 전국적으로 약 150병상을 지원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 신생아학회 배종우 회장은 “정부가 병상 수 늘리기를 지원해왔지만 NICU는 계속 줄고 있다. 이는 적정 입원료조차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병상 수만 늘리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격”이라며 “NICU 관리를 위해 정부 주도로 등록에서부터 전원까지 포괄적인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하고 신생아나 소아중증질환 지원을 위한 로드맵을 새로 짜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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