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료 개혁안 적극 추진…지역 개원의 중심 컨소시움서 보건의료 예산 집행

영국 NHS 개혁에 반대하는 시민단체 시위 장면.

지난 3월 영국 정부는 그동안 사회적으로 논란이 많았던 '공공의료 개혁안'(Health and Social Care Act)을 통과시켰다.

국민의 세금으로 무상의료를 시행해 온 NHS(National Health Services)의 개혁이 시작된 것이다. 

개혁안의 골자는 오는 2013년 4월까지 NHS 산하 10개의 대진료권을 관리하는 전략보건당국(Strategic Health Authority)과 152개의 중진료권을 관리하는 일차의료 트러스트(Primary Care Trust)를 모두 폐지하고, 그 역할을 지역 개원의 중심 컨소시움인 'CCGs'(clinical commissioning groups)에 맡긴 것이다.

기존에는 NHS 전체 예산의 80%인 800억 파운드(약 142조원)가 일차의료 트러스트로 배분되고, 일차의료 트러스트가 해당 지역의 지역보건사업과 각 개원의들과 병원을 대상으로 재원을 집행해왔다.

그런데 내년부터는 CCGs가 일차의료 트러스트 대신 600억 파운드(약 107조원)의 보건의료 예산을 운영하게 된다.

240여개 지역 조직으로 구성된 CCGs는 1차의료는 물론 2~3차병원으로의 연계 서비스도 제공하면서 사실상 지역 보건의료를 책임진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CCGs는 물리치료나 발병치료를 비롯해 무릎 및 고관절수술 등 비급성기 치료도 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영국 의료계와 시민단체들은 NHS의 개혁 방안을 '민영화'로 규정하고 의료의 질이 하락할 것을 우려하는 분위기가 높다.

영국 정부의 관리를 벗어나 있는 CCGs는 민간의료기관 성격 상 이윤을 추구할 것이란 판단 때문이다.

영국 정부는 NHS 대신 국가위원회(Nationa Board)를 설립해 보건의료예산을 배분하고 CCGs를 통제하는 기능을 부여하겠다고 하지만 그 실효성에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윤태호 교수(예방의학교실)는 “CCGs는 엄연히 민간기관이고 이들은 실적에 따라 평가를 받게 될 것”이라며 “예산 받은 것을 다 쓰지 않고 이윤을 추구하려 할 것이고, 그만큼 경영적인 요소가 강조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영국 보건의료시스템 개혁 전후 비교.

또 NHS 개혁은 병원들이 자유경쟁체제에 돌입하는 시발점이 된다는 점에서 지역의료의 공백 등 의료의 질 하락과 의료비 상승을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영국 언론보도에 따르면 영국 의사 10명 중 6명은 CCGs의 출범이 환자 케어 향상에 기여하겠냐는 질문에 ‘부정적’으로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윤태호 교수는 “국가 관리 체제에서 민간의료부문으로 넘어가면 장기적으로 의료비는 더 상승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공중보건의료 영역의 수준도 떨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개혁안이 시행되면 이전에 일차의료 트러스트가 수행한 공중보건의료 영역은 지방 정부로 이전된다. 지방 정부는 일차의료크러스트 일부 인원을 흡수해 비만, 알콜, 흡연 등을 관리하는 지역 건강서비스를 제공한다.    윤 교수는 “예산집행을 총괄하는 CCGs가 얼마나 공중보건의료에 관심이 있을 지는 미지수”라며 “지방 정부와 CCGs와의 협조가 공중보건의료 활성화에 관건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긴축재정 압박이 NHS 개혁의 주요인그렇다면 오랫동안 지속해 온 국가 주도의 보건의료체계를 대대적으로 개혁하고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영국 정부의 긴축재정 기조가 반영된 부분도 크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영국 정부는 2015년까지 보건의료예산 중 200억 파운드(약 36조원)을 감축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결국 이번 공공의료개혁에 따라 한해 140만명을 고용하고 있는 NHS 몸집을 줄여 예산 절감 계획을 달성하겠다는 얘기다.

영국 의료개혁의 또 하나 다른 배경은 정당간 정치 대결 구도에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윤 교수는 "과거 노동당이 NHS 예산을 늘리는 과정에서 병원 부문 등의 민자유치사업(Private Finance Initiative, PFI), 민간의료기관들의 NHS 참여를 위한 인센티브, 공공병원에 대한 규제 완화 등 각종 시장화 정책들을 펼쳐왔으나 그게 NHS 제도의 큰 위협으로 인식됐다"며 "이는 보수당으로 정권교체가 된 이후 급진적인 NHS 개혁의 빌미를 제공하는 계기가 됐다"고 분석했다. 한편 영국의 NHS는 국내 건강보험제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쳐왔다.

특히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기반으로 한 무상의료 도입을 주장해온 시민사회단체와 정치권에서 있어서 영국 NHS는 벤치마킹 모델로 제시돼 왔다.

총액계약제나 포괄수가제 등 진료비 지불제도 개편의 필요성을 언급할 때 영국 NHS가 그 근거로 자주 인용됐다.

사실상 NHS 포기선언이나 다름없는 영국의 보건의료개혁이 국내 의료환경이나 제도 변화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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