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과실 분만사고에도 보상금 재원 30% 부담… "모순된 법제도" 강력 반발

무과실 분만사고에 따른 보상금 재원의 일부를 의료기관 개설자가 떠안도록 한 의료분쟁조정법 시행령이 확정됨에 따라 의료계의 반발이 예상된다.   정부는 지난 3일 국무회의를 열고 분만시 발생한 무과실 의료사고 보상금을 국가와 분만실적이 있는 의료기관 개설자가 7대 3의 비율로 분담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조정법’ 시행령을 의결, 이달 8일부터 시행에 들어간다.

다만 분만 의료사고와 관련된 시행령은 1년 간의 유예기간을 둬 내년 4월 8일부터 시행된다.

내년 4월 이전에 발생하는 분만 의료사고는 다른 의료사고와 동일하게 의료사고 감정과 조정절차를 통해 중재절차 합의를 유도하되 불가항력적 분만 의료사고에 따른 보상은 의료기관 개설자가 책임지지 않는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무과실 분만사고에 대한 보상금 재원 부담 비율을 국가와 의료기관 개설자간 5대 5에서 7대 3으로 조정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그동안 요구해왔던 ▲무과실 피해보상 재원 국가 전액부담 ▲산과 무과실 보상범위 확대 ▲조정절차 시행 전 혹은 시행 중 환자 난동 방지 법안 ▲조정신청 이후 개별적 협상 행위 금지 등의 개선 요구사항이 시행령에 반영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산부인과의사회 김재연 법제이사는 “무과실 산과사고 보상 재원을 국가와 의료기관 개설자가 7대 3으로 부담키로 한 배경에는 산부인과의사회의 지속적인 주장과 노력이 있었다”라며 “그러나 학회 회원들은 정부의 시행령 의결에 강한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집행부의 사퇴 요구는 물론 박노준 회장에 대한 탄핵론까지 제기되고 있는 분위기다.

경기도에서 M산부인과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L원장은 “무과실 사고에 대해 몇 퍼센트를 의료기관 개설자가 부담하게 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라며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를 의사가 책임지게 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주장했다.

L원장은 “무과실이라는 것은 민법에서조차 배상의 책임이 없다”며 “무과실 산과사고 보상을 의사가 부담토록 한다는 것은 기존의 법조항을 넘어서는 특별법으로 의사들을 규제하겠다라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그는 “이는 분만 의사입장에서 분만 자체가 마치 범죄를 저지르는 행위라는 인식을 갖게 한다”며 “과실이 없어도 사고가 벌어질 수 밖에 없는 의료현장에서 의사의 책임을 논하는 것은 억울하다”고 말했다.

전남의 E산부인과의원 K원장은 “의료분쟁조정법 시행령은 환자에게만 유리한 법안”이라며 “의료분쟁조정은 법률적인 재판부의 판결과 달리 합의라는 형태이기 때문에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공정하고 합리적인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은 분만 의료사고의 관련법 시행이 내년 4월인만큼 남은 기간동안 구체적 내용을 만들어가겠다는 입장이다.

의료분쟁조정중재원 김소연 주무관은 “시행령이 의결되기는 했지만 재원 마련 등을 비롯해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중재원은 분만 의료사고 보상에 대한 예산을 연 41억원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이중 국가가 29억원을 부담하고 나머지 12억원을 분만실적이 있는 의료기관 개설자가 부담토록 할 방침이다.

김 주무관은 “그러나 아직까지 추계일 뿐 구체적인 예산편성이 이뤄진 상태는 아니고 재원을 담당할 소관부처로 정해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과태료 부과기준에 대한 보완도 과제로 남았다.

지난 3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시행령에 따르면 중재원 내 감정부의 출석요구 및 자료제출 요구, 소명요구에 정당한 사유없이 불응할 경우 횟수에 따라 최소 100만원에서 최고 500만원까지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그러나 ‘정당한 사유’에 대한 구체적 내용은 아직 규정되지 않은 상태다.

김 주무관은 “과태료 부과는 운영상에 관한 부분인데 지금 단계에서 구체적으로 사례를 들기는 힘들다”며 “정당한 사유 규정에 대한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아직까지 논의가 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산부인과의사회 집행부는 회원들의 분위기를 감안해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산부인과의사회 김재연 법제이사는 “의료분쟁조정법 시행령 발표에 반대하는 성명서 초안이 이미 마련돼 있다”라며 “각과 개원의협의회 회장단을 비롯해 산부인과의사회, 산부인과학회, 타 학회 이사장들과의 공조를 통해 전 의료계가 단일화 된 공동 성명서를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 이사는 “준비 중인 성명서는 의료계 최초로 전체 의사회가 참여하는 최초의 공동성명서가 될 것”이라며 “그동안 산부인과의사회가 정부에 수없이 건의한 독소조항 삭제 등의 내용이 시행령에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것에 대한 유감과 함께 향후 조정중재원 구성을 비롯해 의료분쟁조정절차 등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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