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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보건의료인 비례대표 공천 성적 저조한 이유는?<전경수의 의료와 사회>

바야흐로 ‘스토리텔링’의 시대다. 과거 산업화 시대의 대중은 기능이 뛰어난 상품을 선호했고 경력이 화려한 인물들이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탈산업화 시대로 접어들게 된 후에는 이미 뛰어난 제품이나 경력이 화려한 인물은 넘치고 또 넘쳐나게 된다. 이때부터 대중의 지갑을 열게 하고 누군가에 대한 열혈 지지자를 자처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스토리 텔링(story-telling)’이다.

특별한 기능도 없는 루이비통 가방에 그 많은 사람들이 흔쾌히 지갑을 여는 것은 그 가방이 중저가의 가방보다 기능성이나 디자인이 그만큼 탁월해서가 아니다. 매년 11월 11일에 수많은 사람들이 '빼빼로'로 사먹는 것은 그 과자가 특별히 맛있어서가 아니다. 바로 그 상품에 부여된 어떤 의미, 즉 스토리 때문이다.

사실 정치인으로서의 역량에 대한 제대론 된 검증도 이뤄진 바 없는 안철수 교수가 지지율 1위의 대선 주자로 등극하게 된 것은 ‘의사 출신이 보장된 미래를 버리고 IT업계에 도전해 성공하고 그 이익의 상당 부분을 사회에 환원했다’는 한 문장의 스토리 때문인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비례대표를 통해 정계 진출을 시도한 보건의료계 인사들 중 당선 안정권 내에 배치된 후보는 새누리당 신의진 교수와 민주통합당 김용익 교수, 자유선진당의 문정림 대변인 정도이다. 그런데 이번 비례대표 공천 신청자들 중에는 그 어느 해보다 보건의료계 인사들이 많았다는 점, 그리고 신의진 교수와 김용익 교수 역시 보건의료계를 대표하기 보다는 각 분야에서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인물들이란 점을 감안할 때 보건의료계로서는 매우 저조한 성적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공천을 신청한 보건의료계 인사들의 이력만 두고 보자면 충분히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서의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많다. 단체장이나 명망 있는 학자는 물론이고 학벌, 업적 등 공천을 받은 사람들에 비해 결코 부족한 이력이 아니다. 그러나 공천을 받은 후보들과 이들 보건의료계 인사들과의 차이점은 이력이나 경력이 아니라 바로 ‘스토리텔링’이다.

힘든 환경을 이겨내고 각자의 분야에서 입지전적인 성공 신화를 그려냈거나,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았거나, 국가의 발전과 국민의 행복을 위해 기여할 수 있다는 확실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는 등 무언가 유권자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스토리가 없었던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는 그런 스토리를 가지고 있더라도 그것을 충분히 대중에게 어필하지 못했던 것이다.

후보자들의 숨겨진 역량을 발견해내지 못했다고 정치권을 질타하고 있을 일이 아니다. 정치는 대중의 의식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맞춰 변화하는 분야이므로 스토리텔링을 중시하는 시대에 발맞춰 변화를 모색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경력과 인맥만 믿고 정치에 뛰어드는 시대는 끝났다. 대중의 눈높이에 서서 대중에게 호소하고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인물이 점점 더 많이 정치권에 진출하게 될 것이다.

물론 플라톤이 철인정치와 시인추방론을 펼치면서 감정적으로 선동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정치인들을 혐오했듯이 스토리텔러가 지배하는 사회가 반드시 바람직한 사회라고 볼 수는 없다. 역으로 권위로 똘똘 뭉친 오만한 엘리트가 대중을 가르치려는 자세로 그들의 눈높이를 무시하고 펼치는 정치는 그보다 더 시대착오적이다. 만약 정치 참여를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열망을 가진 사람이라면 대중과 눈을 맞추고 자기만의 스토리를 어필할 수 있는 과감한 변화의 노력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전경수는?

고려대학교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보건학석사, 서울시립대에서 행정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의료전문지 기자와 고경화 국회의원 보좌관을 거쳐 현재 한나라당 이애주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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