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만 중 의료과실 혐의로 체포된 의사…'분만 붕괴' 참담한 현실 각인시켜

오는 4월 의료분쟁조정법 시행을 앞두고 산부인과를 중심으로 의료계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의료분쟁조정법은 무려 23년간에 걸친 오랜 입법 논의 끝에 비로소 작년 3년 국회를 통과해 빛을 보게 됐다. 의료계 역시 의료분쟁조정법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법제정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데 막상 법이 제정된 후 마련된 하위법령이 의료계의 부아를 돋게 만들었다. 의료분쟁조정법 하위법령은 분만시 의료과실이 없더라도 그에 따른 보상 재원 부담의 절반을 의사가 책임지도록 했다. 또한 의료분쟁 발생시 조정 절차 과정에서 의사에 대한 강제출석과 현지실사 조항도 포함돼 있다.

이를 두고 의료계는 "의료분쟁조정법은 원래의 목적과 달리 오히려 의료분쟁을 조장하고 의사들의 일방적인 희생만 강제하고 있다"며 “23년간 진통 끝에 모습을 드러낸 의료분쟁조정법은 '의료분쟁조장법'이라는 오명을 얻었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의료분쟁조정법이 개선되지 않을 경우 법제도 자체를 전면 거부하겠다는 강경한 태세다.

본지는 지난 2006년 일본에서 발생한 ‘오노병원 산부인과 의사 체포 사건’을 소개하고자 한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더 극심한 저출산과 함께 산부인과의 분만 기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오노병원 사건’은 일본 산부인과 의료계가 왜 분만을 기피하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하나의 일화다.(이 기사는 당시 일본 언론의 관련 기사와 법원 판결문 등을 참고해 작성됐습니다.)


일본 후쿠시마현에 위치한 오노병원 전경.

일본 후쿠시마 현립 오노병원의 산부인과 의사 체포 사건의 시발점은 2004년 12월 17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후쿠시마현 후타바군에 위치한 현립 오노병원 산부인과에 근무하던 의사 카이씨는 그날 오후 산전 검사를 통해 전치태반 진단을 받은 한 산모의 제왕절개 수술을 앞두고 있었다. 수술 전 카이씨는 그 산모에게 전치태반에 따른 수술의 위험성을 설명하고 가급적 대학병원에서 분만 할 것을 추천했다. 하지만 "대학병원이 너무 멀어 불편하다“며 오노병원에서 출산을 희망한 산모의 요청에 따라 결국 제왕절개 시술을 맡게 됐다.

그날 오후 2시26분부터 시작된 수술에는 산부인과 전문의인 카이씨와 외과 및 마취과 의사 각 1명, 간호사 4명 등이 참여했다. 수술을 시작하고 11분쯤 지난 뒤에 체중 3kg의 여아를 성공적으로 분만했다. 이후 카이씨는 산모의 자궁 속에 남아 있는 태반 박리를 시도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산모가 질 출혈을 했다. 박리 후 자궁 수축이나 압박 등으로 지혈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한 카이씨는 태반 박리를 계속 진행했다. 그런데 태반 박리 중에 출혈이 증가하고 환자의 혈압이 떨어지는 상황이 벌어졌다. 긴급 수혈을 하면서 장장 3시간에 걸친 시술 끝에 결국 자궁을 적출했다. 문제는 그 다음에 벌어졌다. 자궁 적출을 완료하고 30분쯤 경과한 후 산모의 혈압이 뚝 떨어졌고, 다급하게 응급조치를 취했지만 결국 산모는 1시간 뒤 사망하고 말았다.

산모 사망 사건이 발생하자 후쿠시마현 차원에서 사고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조사위원회에는 다른 현립 병원과 민간병원의 의사, 후쿠시마 현립 의대 산부인과 교수 등이 위원으로 참여했다. 위원회는 3개월가량의 조사를 거쳐 2005년 3월 최종 보고서를 현에 제출했다. 그 보고서는 ‘태반유착’을 제때 판단하지 못한 집도의의 실수를 인정하고 태반 박리 과정에서의 부적절한 시술 등을 지적했다.

후쿠시마현 조사위원회 보고서가 외부로 알려지면서 이를 계기로 언론이 대대적으로 오노병원의 의료사고를 다뤘다. 결국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그리고 약 1년여가 지난 2006년 2월 18일 후쿠시마현 경찰은 수술을 집도한 카이씨를 업무상 과실치사와 원인불명의 죽음에 대해 의무적으로 신고토록 한 관련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체포했다. 카이씨는 결국 그해 3월 10일 동일한 혐의로 검찰에 의해 기소됐다.

당시 카이씨를 기소한 검찰은 “산모의 대량 출혈은 예견할 수 있는 것이고, 무리하게 태반을 박리한 것이 잘못이었다”고 기소 이유를 밝혔다. 검찰은 “또한 그 산모는 의사를 신뢰하고 있었는데 마취 상태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세상을 떠났다”고 언급했다. 이후 진행된 재판에서 검찰은 카이씨에게 징역 1년, 벌금 10만엔을 구형했다. 산모의 유족 측도 카이씨에게 사망한 임산부의 무덤을 찾아가 석고대죄할 것을 요구하며 “변명을 하지 말고 실수를 인정하라”고 강력하게 요구했다.

그러나 2년 5개월 뒤인 2008년 8월 20일, 법원은 피고인 카이씨에게 무죄 판결을 선고했다. 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카이씨에게 적용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와 관련 “검찰의 주장은 의학 서적의 일부 견해에 의존하고 있지만, 실제 임상에서 그러한 견해가 일반적으로 입증되지는 않는다”고 판단했다. 또한 “검찰은 또 태반 박리의 지속적인 위험·환자 사망의 개연성이 높다는 점을 들어 피고인에게 태반 박리 중지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의료 행위의 결과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밝혔다.

법원은 “따라서 의료행위를 중지하는 의무가 있다고 하기 위해서는 검찰은 해당 의료행위가 위험하다는 입증 외에 해당 의료행위를 중지하지 않을 경우의 위험을 밝히고 더 나은 의료 행위가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판단을 근거로 법원은 태반 박리를 지속적으로 시도한 카이씨의 의료행위를 임상 표준에 따른 적절한 의료 조치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원인불명의 죽음을 신고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서도 “수술 중에 발견된 해당 질병을 원인으로 하는 과실도 없는 의료행위로, 피할 수없는 결과이기 때문에 관련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며 이 역시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의 판결 이후 후쿠시마 지방검찰청은 항소를 포기하고 판결을 받아들였다. 반면 산모의 유족 측은 강력한 유감을 표명하며 “앞으로 의료계에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계속 진실을 추구하겠다”며 법원의 판결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후 카이씨는 오노병원에 복직했다.

‘오노병원 사건’은 일본 사회와 의료계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왔다. 이 사건이 외부로 알려진 후 일본 언론들은 후쿠시마현 의료사고조사위원회의 보고서 등을 근거로 "산부인과 의사가 의료 과오를 저질렀다“고 단정하는 보도를 내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법원의 판결 이후 일부 언론은 "이번 사건에서 의사를 구속 기소한 것은 무리가 있었다. 경찰의 수사는 의사 고유의 재량에까지 과실 책임의 죄를 묻는 무리수를 뒀다“는 식으로 경찰의 무리한 수사 관행을 지적하는 여론이 형성됐다. 특히 이를 계기로 언론과 정치권에서 산부인과 분만 의료시스템 붕괴의 심각함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오노병원 사건이 발생하자 일본 산부인과학회와 산부인과의사회 등은 경찰이 카이씨를 체포한 것에 대해 “좌시할 수 없다"고 강력히 항의하는 성명을 냈다. 일본 산부인과학회는 2006년 3월 성명을 통해 “태반유착은 수술 전 진단이 매우 어렵고, 치료 난이도가 가장 높은 사례이며 상당한 시설을 갖춘 의료기관에서도 대응이 매우 곤란하다. 또한 본건은 산부인과 의사 부족이라는 현 의료 체계의 문제점에서 기인한 것으로, 과중한 업무 부담을 참아가며 헌신한 의사 개인에게 책임을 추궁하는 것이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일부 의사단체는 “이런 사례로 의사를 체포하는 것은 산부인과 의료, 특히 지역의 산부인과 의료를 붕괴시키고 있다"며 ”수술 치료 결과에 따라서만 형사 책임이 추궁된다면 앞으로 의료 현장에서 수술을 기피하는 움직임을 초래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 우려처럼 지금 일본은 산부인과 의사 지원 기피와 병원들의 분만 기피가 맞물려 이른바 ‘출산 난민’ 현상을 겪고 있다. 다른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카이씨의 사례처럼 숱한 의료분쟁에 시달려야 한다는 것도 분만 기피의 주된 이유다. 일본 대법원 조사 자료에 따르면 2009년 6월 말 기준으로 진료과별 의료사고로 입건된 의사 수는 산부인과가 의사가 1,000명당 16.8명으로 다른 진료과의 5~7배에 달했다.

결과적으로, 일본 사회는 오노병원 사건을 겪으면서 힘든 상황에서도 의료서비스 제공을 위해 헌신하는 의사들의 의욕을 저하시킨 것은 물론 의료 활동 자체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고민을 떠안게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작년 3월 국회를 통과한 의료분쟁조정법이 1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오는 4월부터 시행에 들어간다. 시행까지 불과 보름여 남았다. 하지만 산부인과 의사들은 ‘의료분쟁조장법’이라고 비유하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그들이 무엇을 걱정하고 고민하는지 이웃 일본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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